“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언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질문해 주세요.”

JTBC의 신예리 전 교양팩추얼본부장(현 자문역)이 2월 23일 이화여대 대학원별관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는 중앙일보 기자와 논설위원을 거쳐 JTBC에서 기자, 앵커, PD로 근무했다. JTBC 최초의 여성 임원.

그는 강연과 저서 집필을 통해 경험과 지식 공유에 힘쓴다. 이날 그는 윤세영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을 만났다. 기자는 3월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빌딩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신 전 본부장은 봄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났다.

▲ 3월 10일 JTBC 사옥에서 만난 신예리 교양팩추얼본부장
▲ 3월 10일 JTBC 사옥에서 만난 신예리 교양팩추얼본부장

“아무것도 없는 방송(JTBC)으로 간다는 게, 더구나 내가 방송을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로서는 큰 위험을 감수한 거죠.”

신 전 본부장은 중앙일보에서 20년간 기자로 근무하다 JTBC가 개국을 준비하던 2010년 태스크포스팀원으로 선발되면서 방송기자로 전업했다. 신문에서 방송으로의 전향을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앙일보 입사 면접에서 “당신은 방송으로 가야 하는데 왜 신문으로 왔냐”는 질문을 받았다. 왜 자신이 신문기자가 되고 싶은지 설명했는데, 임원은 “아니 말도 너무 잘하잖아, 더더욱 방송에 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면접에서 들은 말은 20년이 지나서 현실이 됐다. JTBC로 옮겨서 ‘JTBC 밤샘토론’, ‘신예리 강찬호의 직격토크’, ‘신예리의 대선톡톡’ 등의 프로그램에서 안정적인 진행 능력과 능숙한 인터뷰 실력으로 호평받았다.

방송 진행뿐만 아니라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등 중앙일보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계속했다. 3월까지는 교양팩추얼본부장 직책을 맡아 교양팀과 팩추얼팀을 총괄했다.

교양팀은 ‘차이나는 클라스’ 같은 교양 프로그램을, 팩추얼팀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에 기반한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기자가 아니죠.” 신 전 본부장의 부드러운 어조와 진행 방식은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JTBC 정선일 교양제작팀장은 신 전 본부장이 방송을 매우 편안하게 진행하고, 진솔한 마음을 잘 끌어낸다고 평가했다.

기자 혹은 인터뷰어로서 신 전 본부장이 던지는 질문은 종종 날카롭고, 정곡을 찌른다. ‘신예리와 강찬호의 직격토크’라는 인터뷰 프로그램을 하던 당시, 자신을 지켜보던 PD가 “웃으면서 막 칼을 던지네”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신 전 본부장은 부드러운 말투가 본래 대화 스타일이고, 방송에서 이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기자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처럼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살리는 동시에 기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자세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인터뷰어로서의 정체성을 살리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중앙일보에 입사하던 당시, 동기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기자가 근무하던 층에는 여자 화장실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남성중심적인 근무 환경에서 “자칫하면 내가 아닌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생겼다고 한다. 이때 그는 “어떻게 되든 간에 나는 나로 이 조직에서 버텨 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신 전 본부장이 오랜 시간 지켜온 ‘나다움’이란 타인을 배려하고 주변인을 잘 챙기는 여성적인 성격이다. 그는 이런 리더십을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었다. 예를 들어 JTBC 국제부장으로 근무할 때, 모든 부원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지인은 어떻게 평가할까. 유인경 전 경향신문 부국장은 “선배와 후배를 동시에 아우르는 여기자”라고 말했다. 유 전 부국장은 1990년대부터 신 전 본부장을 취재 현장에서 만나며 친분을 쌓았다.

JTBC의 김진일 헤이뉴스 팀장은 신 전 본부장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포용력을 꼽았다. “조직 구성원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이를 활용해서 잘 이끌어주는 리더다.”

신 전 본부장은 수습기자 때부터 지금까지 맞다고 생각하는 점을 항상 당당하게 표현했다. 수습 시절에 부장이 그를 ‘미스 신’이라 불렀다. 남성 기자는 ‘ㅇㅇ씨’라고 불렀다. 신 전 본부장은 부장에게 “제 이름은 미스 신이 아니라 신예리입니다. 앞으로는 신예리 씨라고 불러 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중앙일보 근무 시절, 직장 내 부조리에 대해 공개석상에서 상사에게 문제를 제기한 적도 있다. 이로 인해 인사고과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원하지 않던 부서로 발령이 났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다.

신 전 본부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사는 중앙일보 기획취재팀에서 2001년에 썼던 자폐인 시리즈. 당시는 자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부모의 무관심 때문에 발생하는 후천적 질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많았다. 이로 인한 낙인 효과를 걷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 자폐아를 다룬 기사(출처=중앙일보)
▲ 자폐아를 다룬 기사(출처=중앙일보)

그는 한달 동안 취재하면서 수많은 자폐인과 부모를 만났다. 취재원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하지만 한 달 내내 “울면서 다녔다”고 했다. 자폐인과 부모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보여서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는 질문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학생과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상사의 부당함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사회 전반적으로 봤을 때는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고…. 방송을 통해서 그걸 깨는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신 전 본부장은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를 기획했다. 쌍방향 소통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토론식 프로그램을 통해 질문에 소극적인 대한민국 사회 문화를 바꿔 보고 싶었다.

실제로 여러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수업 교재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학생이 질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큰 보람을 느꼈다.

대중의 궁금증을 채워야 방송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안다. 그럼에도 시청률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시청자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선택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일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지적한 내용, 5.18 또는 페미니즘을 다룬 내용은 시민이 ‘알아야 하는 것’을 전달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대중이 ‘알아야 하는 것’을 알리는 ‘차이나는 클라스’의 목표는 시청자의 니즈와 부합한다. 이 프로그램을 1회부터 시청한 직장인 문준현 씨(29)는 사람들이 평소에 전혀 관심 갖지 않았거나, 잘 모르는 주제를 더 자주 다루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스스로에 대해, 동료에 대해, 독자와 시청자에 대해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다면 성공한 언론인이죠.”

신 전 본부장은 언론인으로서 성공한 사람을 떳떳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최소한의 기준이지만, 이 기준을 충족한다면 성공한 언론인이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신문기자 시절 떳떳한 언론인이 되기 위해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사실대로 쓴다, 균형 잡히게 쓴다.” 이는 기본 원칙일 뿐 특별하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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