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는 아동복 거리가 있다. 한때 ‘아동복의 메카’로 불렸다. 명절이나 어린이날과 같은 대목을 앞두고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한산하다.

기자는 3월 16일과 23일, 아동복 거리를 찾았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 6번 출구를 나와 왼쪽으로 오르막길에 들어서니, 아동복 상점 30여 개가 빼곡했다. 임대로 내놓은 점포가 눈에 많이 띄었다. 시장을 찾은 손님이 많았지만 아동복 거리는 썰렁했다.

1980년대에 생긴 부르뎅 아동복과 포키 아동복, 크레용 아동복 등 대형 매장 건물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밖에서 봤을 때는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1평 남짓한 매장 60~70개가 있다.

매대에는 알록달록한 원피스부터 명품 로고가 박힌 모자가 가득하다. 가격대는 높지 않다. 세일 푯말 아래 걸린 티셔츠는 5000~8000원이다.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원피스도 4만 원을 넘지 않는다.

▲ 아동복 거리를 가리키는 표지판
▲ 아동복 거리를 가리키는 표지판

저렴한 아동복이 많지만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르뎅 아동복매장에 들어서자 상인들이 “티셔츠 5장, 만 원에 드릴게”, “전 품목 세일해요”라며 기자의 발길을 붙잡았다. 바깥쪽에 있는 일부 매장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없었다.

깊숙한 곳에 있는 상인은 옆 매장 상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상인 김덕순 씨(63)는 “코로나19가 끝나도 손님이 크게 늘지는 않고 있다. 장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업종으로 바꾸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야심 차게 문을 연 유아 전문 쇼핑몰 ‘클로버 캐슬’도 매한가지. 6개 층(180여 평) 규모의 이 쇼핑몰은 아동복과 장난감, 이유식 등을 판다.

들어가 보니 층마다 직원 두어 명이 앉아 휴대전화를 봤다. 모든 층을 들렀지만 지하 1층에서 장난감을 구경하는 일본인 관광객 가족이 유일한 손님이었다.

통계청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합계출산율)가 지난해 0.78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2월에 발표했다. 집계를 시작한 1970년(4.53명)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 아동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아동복 업계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아동 신발 판매장에서 일하는 50대 직원 유선이 씨는 저출생을 체감하냐는 질문에 “이곳의 모든 상인이 (저출생으로) 타격을 입고, 앞으로는 더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라고 답했다. 10년 넘게 장난감과 아동용 벨트를 파는 60대 상인 허인영 씨도 “요즘 외국인 손님은 조금 늘었지만, (저출생 탓에) 한참 전에 비하면 우리나라 손님은 확연히 줄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 썰렁한 아동복 거리(왼쪽)와 임대로 나온 점포
▲ 썰렁한 아동복 거리(왼쪽)와 임대로 나온 점포

트렌드가 고가 아동복과 온라인 쇼핑 중심으로 달라진 점도 아동복 거리에 영향을 준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패션 분야 중 아동복 매출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2022년 아동복 시장의 매출은 1년 전보다 6.8% 증가한 1조 2016억 원. 출생률이 떨어져도 고가 아동복 수요는 커졌다는 의미다.

연합회의 2022년 하반기 한국패션소비시장 지표조사를 봐도 아동복 시장은 브랜드 위주로 변했다. 지난해 상반기에 소비자 61.2%가 아동복을 백화점, 브랜드 매장 등 브랜드 전문 유통 채널을 통해 구매했다. 다음은 인터넷‧모바일(28.1%) 보세점 복합쇼핑몰 할인마트(25.5%)였다. 남대문시장 같은 재래시장 비중은 2.1%에 그쳤다.

이런 현상을 두고 중앙일보는 “아이 울음소리는 줄었지만, 자녀·손자·조카에게 지갑 열기를 아끼지 않는 ‘VIB(Very Important Baby)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3월 23일 보도했다.

6세 딸을 둔 직장인 김초희 씨(30)는 “(아동복 거리를) 알고는 있지만, 아이를 돌보느라 갈 시간도 없고 좋은 원단을 쓰는 고가 제품에 아무래도 눈이 더 간다. 주로 맘카페를 통해 정보를 얻어 온라인으로 산다”고 말했다.

아동복 거리 상인도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고자 온라인 판매를 시도한다. 거리를 돌아보니 상인이나 개인 판매자가 삼각대를 놓고 생방송을 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외국인 판매자도 눈에 띄었다. 어느 상점에서는 중국인 남성이 1시간 넘게 아동 내의를 시청자에게 소개하고 주문받았다. 그가 카탈로그에서 원하는 상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상점 점원은 부리나케 꺼내다 줬다.

▲ 아동복 거리에서 진행된 라이브 방송 장면(출처=그립)
▲ 아동복 거리에서 진행된 라이브 방송 장면(출처=그립)

“이 옷 너무 예쁘지 않아요? 가격도 2만 7000원밖에 안 해요. 125㎝에 26㎏이면 XXL 사이즈는 되어야죠.”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그립’을 통해 진행되는 남대문시장 아동복 쇼핑 방송.

시청자가 실시간 댓글 창으로 가격과 소재, 크기를 질문하자 판매자는 바로 답하며 구매를 유도했다. 시청자가 구매 의사를 밝히자 판매자는 상품명과 사이즈를 노트에 적었다.

아동복 거리 상인은 라이브 방송 외에도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입점하는 등 온라인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모두가 능숙하지는 않다. 특히 나이가 많은 상인은 적응하기 어렵다.

상인 허인영 씨는 “젊은 사람들이 다들 인터넷으로 옷을 사니까 (온라인 판매를) 시도를 안 할 수가 없다. 우리도 해보고는 있지만 복잡해서 따라가기 어렵고 잘되지도 않는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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