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송정동. 지하철 2호선 성수역과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사이에 있다. 성수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갔더니 지은 지 40년이 넘었을 연립 주택이 나왔다. 붉은 벽돌 모양.

담은 허물어졌고. 마당에 화초가 있다. 벽에 이런 문구가 보인다. ‘1 EURO PROJECT 2023-2025(원유로 프로젝트 2023-2025).’ 국내 처음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도시 상생 프로젝트를 하는 코끼리 빌라다.

이곳에는 카페, 입욕제 판매점, 제로웨이스트 편집숍 등 브랜드 18개가 입점했다. 기자가 3월 13일 오후 2시 찾아갔을 때, 카페는 만석이었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이다. 연면적 163평. 3년 임대료는 1350원, 1유로다. 전용면적 10평인 건너편 상가는 보증금 5000만 원, 월세가 60만 원. 임대료 1350원은 어떻게 가능할까.

▲서울 성동구 송정동 코끼리 빌라
▲서울 성동구 송정동 코끼리 빌라

코끼리 빌라는 송정동의 대규모 재개발 예정지에 있다. 송정1 주택 재건축 사업 조사(2014년)에서 이 지역의 노후 불량 건축물은 73%였다. 코끼리 빌라 또한 마찬가지.

원유로 프로젝트를 추진한 ‘오래된 미래 공간연구소’의 최성욱 대표는 “서울 도심에는 비싼 땅값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빈 건물이 많다”며 “주인을 찾아가 아까운 공간을 비워두지 말고 재개발 전, 딱 3년만 1유로에 빌려줄 수 있냐 설득했다”고 말했다.

건물주는 3년 동안 1유로를 받고 건물을 빌려줬다. 그러자 연구소는 1유로에 임대를 주고 건물을 고쳤다. 빈 건물을 수리하고 상권을 활성화하며 건물주는 건물의 가치, 기능을 개선했고, 입주자는 월세를 아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됐다.

▲ 건물 수리 과정을 담은 사진
▲ 건물 수리 과정을 담은 사진

아이디어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169 클뤼스하위전 프로젝트’에서 따왔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서쪽 스팡언 지역은 오래전부터 마약과 매춘으로 악명이 높았다. 범죄율도 마찬가지.

로테르담시는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땅을 매입하고 시장에 내놨다. 사려는 사람이 좀체 나타나지 않아서 1유로에 팔기로 했다.

건물 개보수는 입주자가 직접 했다. 집과 동네를 나만의 스타일로 꾸민다는 컨셉은 성공적이었다. 3년이 지나자 이 동네는 건축가와 예술가 등 젊고 창의적인 거주자의 마을이 됐다. 학교와 공원 등 공공시설이 있따라 들어섰다. 시민 주도의 도시 재생이었다.

▲도시공생 프로젝트의 목표가 쓰여 있는 벽면
▲도시공생 프로젝트의 목표가 쓰여 있는 벽면

“좋은 세상은 좋은 도시들로 이뤄져 있고, 좋은 도시는 좋은 사람들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삶의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선순환적 세계관에 동참해주세요.”

건물 입구 벽에 쓰인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좋은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국내 브랜드가 모여 지역과 사회에 메시지를 던진다.

입점 요건은 명확하다. 사회에 전달하는 메시지가 명확한 브랜드, 주변 지역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 브랜드, 지역 커뮤니티를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브랜드. 입점하면 1년에 2번 이상 지역 사회를 위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한다.

1층 커피미업(Coffee Me Up)의 홍원준 매니저는 “임대료 1유로가 가장 큰 이점이었기에 임대 기한 3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며 “함께 입점한 브랜드와 상생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스페셜티 커피를 판매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앞세운 브랜드 모토를 알린다. 일반 커피는 재배 과정에서 자연을 파괴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는 생산부터 소비까지 산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지를 살피는 등 기준을 정해서 선정한다.

2층에 있는 수제 가죽 제품 브랜드 베데레(vedere)의 문정원 대표는 “코끼리 빌라 속 브랜드는 개별 브랜드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원하는 활동을 입점한 가게와 함께 기획할 수 있다”며 “온라인 브랜드를 유지할까 고민하던 중에 지원해 입점했는데, 좋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긍정적인 힘을 저부터 느낀다”고 전했다.

기자가 갔던 날에는 입점 브랜드 ‘런더풀’과 ‘베러 얼스’ 그리고 송정동 상인 19명이 플로깅을 했다. 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 이들은 코끼리 빌라 주변을 뛰며 쓰레기를 주웠다.

행사를 기획한 런더풀 안정은 대표는 “도시 재생은 원유로 프로젝트 입점 브랜드뿐만 아니라 송정동에 사는 이웃이 모두 공감하고 함께 실천해야 가능하다”며 “플로깅 활동을 통해 참여한 이웃과 더 빨리 가까워지고 유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