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7000원, 비빔밥 1만 원. 외식 물가가 고공행진을 하는 중이다. 외식을 하면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낀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외식물가지수는 115.45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 올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 기준으로 비빔밥 평균이 올해 1만 원대를 기록했다. 칼국수는 8500원, 김치찌개는 7500원을 넘었다. 김밥은 2021년까지 2712원에서 올해 3100원이 됐다.

시장 근처에는 저렴한 식당이 많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남문시장을 보자. 못골시장, 영동시장, 지동시장 등 여러 재래시장을 통틀어 남문시장이라고 부른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남문’(팔달문)에 모여있어서다.

이곳에는 가성비 좋은 식당이 많다. 대부분 식당에서 칼국수를 4000원대에 판매했다. 통계자료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순대국밥과 같은 음식은 7000~8,000원대였다.

영동시장의 ‘장터집’ 식당은 더 싸다. 기자가 3월 10일 갔더니 주방에서 빨간색 주방 모자를 쓴 사장이 나와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했다.

▲ 장터집 식당
▲ 장터집 식당

가게에는 4인용 식탁이 3줄로 놓여있었다. 오후 4시쯤 방문한 가게에는 중년 남성 1명이 있었다. 뒤이어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자주 온 손님인 듯 했다. 사장이 “뭐 드릴까?”라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국밥이지 뭐!”라고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콩나물 비빔밥을 3000원, 국밥을 4000원에 판다. 잔치 국수는 3000원, 열무국수는 4000원이다. 지인과 함께 식당을 찾은 장수용 씨(68)는 “지나가다가 가격을 보고 와 봤는데, 다른 식당이랑 맛이 다를 게 없더라”라고 말했다.

기자는 가장 저렴한 콩나물비빔밥을 주문했다. 5분이 안 돼서 나왔다. “무채도 같이 비벼 드셔야 더 맛있어요.” 사장이 음식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콩나물과 김 가루가 올라간 공기밥, 무채와 국물. 그리고 고추장과 깨가 가득한 간장이 쟁반에 놓였다.

고추장과 간장을 한 숟갈씩 넣고 밥을 비볐다. 무채도 한 젓가락 넣었다. 비빌수록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거의 비울 때쯤, 주인이 다가와 “부족하면 더 줄까요?”라고 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문구가 벽에 보였다. ‘음식이 부족하면 말씀해주세요.’

▲ 콩나물비빔밥
▲ 콩나물비빔밥

식사를 끝낸 할아버지가 쟁반을 들고 주방 앞 선반으로 향했다. 그 위에는 ‘식사 후 빈 그릇은 이곳에 놓아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라고 적혔다.

“혼자 하니까 유지하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월세도 못 낼 정도예요. 요새는 진짜 말도 못 해.” 공공요금 인상으로 가격 유지가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사장 이모예 씨(74)는 “장사를 7년째 하는데, 6년째에 어쩔 수 없이 1000원 올렸어요. 가스비, 자재비가 다 올라서”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전에는 하루 손님이 70~80명 정도라고 했다. “(혼자 해도) 인건비도 안 나와. 전에는 서빙하는 사람을 따로 썼는데, 인건비로 다 나가서 지금은 혼자 해요.” 이 씨는 시장에 와서 간단히 식사하는 손님이 주로 찾는다고 했다.

50대 후반인 김태형 씨(환경미화원)는 혼자 와서 국밥을 시켰다. 시장을 오가다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른 저녁을 여기서 해결했다. 주로 새벽에 일해서 식사 시간대가 다르다고 했다.

송기환 씨(66)는 이곳을 안 지 5년째다. 주변에 이런 식당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도 혼자 왔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렇게 해서 이윤도 안 남을 텐데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장에게 시에서 지원받느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그런 거 전혀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남는 것도 없겠다고 (생각) 했어요.”

이모예 씨는 다른 식탁을 치우다가 송 씨의 비빔밥을 보고, “밥 짜시겠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곤 밥을 더 덜어서 줬다. 송 씨는 가방에서 음료수를 꺼내 사장에게 건넸다.

장사를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냥 하는 거지, 돈 생각하면 할 수 없어요. 그냥 나이 먹고 계속하던 거니까. 용돈 정도 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렴한 가격은 그의 부지런함에서 왔다. “아침에 오면, 한 바퀴를 삥 돌아서 최대한 저렴한 것으로 구입해요.” 다양한 시장이 식당 가까이에 있어서 가능하다. 식당 일을 30대 초반부터 해서 요령도 많다. 손님이 많아도 혼자 할 수 있는 비결이다.

이 씨가 8살 때 일이었다. 엄마와 함께 식당을 따라갔다가, 밥솥을 보곤 밥을 손으로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맏딸로 자랐기에 형제 생각에 그런 행동을 했었다. “오빠도 주고 동생도 줘야지, 그런 마음에 그랬었어요.”

자기 경험을 떠올리며 ‘배고픈 사람들도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꿈꿨다. “예전에는 제가 (꿈을) 실천하지 못했어요.” 일도 오래 하고, 시장도 가까운 덕에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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