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오후 1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저동고 앞. 정문에서 걸어서 30초가 걸리지 않는 사거리 횡단보도에 현수막 하나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고양시 병)이 매단 현수막에는 “치욕적 ‘강제동원 셀프배상’ 피해국이 왜 가해자를 대변합니까”라고 쓰였다.

같은 날, 일산 후곡 학원가가 시작되는 일산3동 행정복지센터 앞. 현수막 2개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국회의원(고양시 정)이 내걸었다. 문구는 “윤석열 정권 망국적 친일야합 독도까지 바칠텐가!”

국민의힘 김현아 당협위원장(고양시 정)의 현수막에는 “고양특례시-LH 업무협약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였다. 일산3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반경 500m 안에는 4개 학교(고양신일초 문화초 신일중 일산국제컨벤션고)가 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약 500m 떨어진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일산역의 상황도 비슷하다. 일산역 1번 출구 앞 횡단보도에는 “매국이 국익입니까?”라는 민주당 현수막과 김 당협위원장이 학원가에 설치한 것과 같은 현수막이 위아래로 있었다.

바로 옆에는 “서해 수호 55인 당신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국민의힘 현수막도 걸렸다. 일산역에서 반경 300m 안에는 일산초와 아파트 단지 6곳이 있다.

▲ 저동고 앞
▲ 저동고 앞

이렇게 정부나 다른 정당을 비난하는 현수막이 늘어나는 중이다. 대로변은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와 학교 및 학원가 앞에도 보인다.

일산의 또 다른 학원가인 백마 학원가에 이르자 양당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홍 의원은 마두동 성당 앞 횡단보도에 저동고 앞과 같은 현수막을 설치했다. 국민의힘 김종혁 당협위원장(고양시 병)은 길 건너 학원 건물 앞에 천안함 피격 13주기를 추모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정당 현수막은 학원가 주변 학교나 아파트 근처에도 많다. 백마 학원가에서 약 300미터 떨어진 백마고 앞 사거리에는 정부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백마마을 아파트 단지와 6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경의·중앙선 백마역 1번 출구 앞 횡단보도에도 정부가 추진한 69시간 근무제를 규탄하는 현수막이 있었다.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설치했다.

▲ 일산3동 행정복지센터 앞
▲ 일산3동 행정복지센터 앞

현수막을 접한 시민은 대체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학생이 자주 다니는 학교와 학원가 근처의 현수막 문구를 걱정했다.

일산3동 행정복지센터 건너편 상가에서 카페를 하는 배은수 씨(65)는 “아무래도 행정복지센터도 있고, 학원가도 있고, 은행도 있으니까 사거리 쪽에 많이 거는 것 같다”면서 “문구 자체가 조금 거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학생은 다들 똑똑해서 무슨 뜻인지 이해할 텐데, 서로 싸우는 것밖에 안 되는 거니깐 좋을 리가 있겠어요”라며 혀를 찼다.

후곡 학원가 인근의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정리 봉사를 하던 이순이 씨(75)는 선거기간이면 모르겠지만, 평상시는 이야기가 다르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저렇게 거친 말을 하면 되겠어요?” 현수막 문구가 학생에게 부적절한 만큼 철거가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의견도 없지는 않았다. 백마마을에 사는 대학생 신주형 씨(25)는 “학생도 현 정부든, 과거 정부든, 다음 정부든 항상 경각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면서 “이런 현수막이 학생의 비판적 사고를 길러줄 수 있으므로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 백마 학원가 마두동 성당 앞 사거리
▲ 백마 학원가 마두동 성당 앞 사거리

양당 관계자는 현수막에 문제가 없지만, 민원이 들어온다면 철거하거나 옮기겠다고 밝혔다. 이용우 의원의 지역 사무소 관계자는 학원가는 되도록 피하고, 가급적 행정복지센터 앞에 현수막을 달고 있다고 밝혔다.

현수막 문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고 지적하자 “100명의 주민 중 100%가 같은 의견이라면 잘못된 일이겠지만 주민 여론이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학원가 쪽 현수막에 대해서는 과격한 문구를 바로잡겠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천안함 피격 추모 현수막의 경우 중앙당 지침이 내려와 일괄적으로 설치했다고 밝혔다. 학원가와 아파트 단지 인근에 거는 이유를 묻자 “유동 인구가 많은 곳 위주로 자체적으로 건다”면서 “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이동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고양교육지원청은 학교 앞에 현수막이 있고, 문구가 거칠다는 비판이 있어도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밝혔다. 재무관리과 김예슬 주무관(관재담당)은 “학교 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현수막 내용도 교육 쪽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어서 직접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여야의 현수막 경쟁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촉발됐다. 전까지는 정당 현수막을 게시하려면 지자체 허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김민철 서영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책이나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고나 허가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다.

개수 제한도 없다. 정당은 최대 15일까지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다. 기간이 지나더라도 별도의 처벌 규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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