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인구가 100만이 넘었다는 둥 그거만 좋아하면 뭐 하나요? 애를 받아줄 수 있는 응급실이 없는데.” 엄수연 씨(45)는 24시간 소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고양시에 없어서 불만이다. 그는 고양시에서 9살 딸을 키운다.

기자는 3월 11일 밤 10시경, 고양시 덕양구의 명지병원 소아응급센터를 찾았다. 밤늦었지만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자동차 전조등과 구급차 경광등으로 입구 주변이 환했다.

우주선 모양의 출입구로 들어가니 근심 어린 표정의 부모와 어린 환자로 꽉 찼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부터 아빠 손을 잡은 초등생까지 연령대는 0세부터 13세 사이 정도로 보였다.

아이들은 복통, 화상, 고열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했다. 간호사가 창구에서 접수하고 환자 상태를 부지런히 살폈다. ‘통제구역’이라고 적힌 유리문 너머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2명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대기실 좌석은 12개뿐이라 대부분 보호자가 아이를 서서 안고 기다렸다.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부모는 아이 등을 계속 토닥였다. 부모가 함께 방문했으면 1명은 건물 외부에서 기다렸다. 대기실 밖에는 초조한 표정의 보호자가 많았다.

환자가 계속 들어왔지만, 나오는 환자는 15분에 1명꼴이었다. 밤 10시 기준으로 대기실에 환자 8명과 보호자 12명이 있었다. 밤 11시에는 환자가 12명, 보호자가 16명 정도. 어느 여성은 갓난아기를 업고 기다리다가 자녀 이름이 호명되자 “오빠, 우리 드디어 들어간대”라며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을 불렀다.

▲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소아응급센터
▲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소아응급센터

최진 씨(39)는 11살 아들의 고열로 진료를 받기 위해 90분을 기다렸다. 파주에서 고양시까지 택시를 30분 타고 왔다. “119에 전화하니 근처엔 이 시간에 소아 진료를 볼 수 있는 곳이 명지병원밖에 없었다.” 일반 소아과에서는 항상 기다리고, 큰 병원은 아예 이용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아들의 두드러기 증상으로 소아응급센터를 방문한 서대규 씨(43). 김포에서부터 운전해서 명지병원에 왔다. “119에 물어봤는데, 김포엔 소아의 피부 질환을 봐 줄 수 의사가 없다고 해서 고양시까지 왔다.”

고양시의 ‘빅5’ 종합병원이라 불리는 4곳(동국대학교일산병원, 명지병원, 일산병원, 일산 차병원)은 한정된 시간에만 소아 응급진료를 한다. 일산백병원은 중단한 상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2022년 실시한 전국 수련병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4시간 소아·청소년 응급진료가 가능한 곳은 전국 수련병원의 36%다.

▲ 고양시 ‘빅5’ 종합병원 소아응급진료 가능 시간
▲ 고양시 ‘빅5’ 종합병원 소아응급진료 가능 시간

병원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거나 운영시간을 부정확하게 기재하는 바람에 소아 응급진료를 받기는 더욱 불편하다. 고양시의 빅5 종합병원 중 소아 응급진료 운영시간을 정확하게 고지한 곳은 없다.

일산차병원 응급실 홈페이지에는 소아진료를 24시간 한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다. 일산병원과 동국대학교일산병원 홈페이지에는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한다고만 나오는데, 소아 응급진료를 한정된 시간에만 한다.

119 안내도 항상 정확하지는 않다. 엄수연 씨는 작년 11월 자정쯤에 딸이 구토해서 일산 차병원을 찾았다. 진료가 끝났다는 말을 듣고 119에 전화해서 가까운 병원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내받고 일산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퇴짜를 맞았다. 소아를 봐 줄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엄 씨는 40분간 운전해서 서울 은평구의 은평성모병원까지 가야 했다.

기자도 토요일인 3월 11일 밤 10시 40분경 119에 전화해 고양시에서 소아 응급진료를 하는 병원을 물었다. 명지병원과 일산병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산병원은 토요일에 오전 11시 30분까지만 한다.

가능 시간에 응급실을 가도 무조건 진료받지는 못한다. 증상이나 부상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차병원은 “소아응급의 경우 일반적인 내과 진료 정도만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 연도별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률(출처=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 연도별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률(출처=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떨어지면서 소아 의료체계의 위기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발표한 2023년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역대 최저인 16.6%였다.

연세대 원주의대 본과 4학년 김동영(25) 씨는 소아청소년과가 전공의 지원율이 거의 꼴찌라 앞으로 소아과 의사가 더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내외산소라 불리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는 수가제로 운영돼서 환자가 부족하면 적자가 나는 구조다. 그래도 내과와 외과는 노인인구가 늘어서 전공의 인원을 채우는데,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갈수록 낮아지는 출산율 때문에 인기가 떨어지는 것 같다.”

보건복지부는 소아진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2월 22일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4시간 소아전문 상담센터’ 시범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실시된다. 늦은 밤이나 휴일에 어린 자녀가 아플 때 부모가 대처하도록 의료인이 24시간 전화상담을 한다.

소아청소년과 인력 확충을 위한 고용 형태 다변화도 검토한다.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주 2~3회 한시 근무, 파트 타임 형태로도 채용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