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차가 쉬면 6개월 동안 아예 안 씻는 분도 계셔요. 특히 여성분들은 시설에 있는 샤워장보다 혼자 씻는 목욕차가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서울 영등포구의 서울시립영등포보현희망지원센터에서 이동 목욕차를 관리하는 이충완 씨(50)의 말이다. 센터는 ‘찾아가는 이동 목욕 서비스’를 서울시에서 위탁받아 3년째 제공한다. 지난 겨울 동파 위험으로 중단했다가 올해 2월 15일 재개했다.

▲ 서울시립영등포보현희망지원센터의 이동 목욕차
▲ 서울시립영등포보현희망지원센터의 이동 목욕차

기자는 3월 10일 오후 1시 센터를 찾았다. 목욕차가 가동 준비를 하는지 덜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손님 4명이 보였다. 2명은 친분이 있는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찾아가는 이동 목욕차’라는 글자가 보였다. 화물차 짐칸을 샤워장으로 바꾼 형태다. 크기는 가로 3m, 세로 1.5m. 안에는 샤워기와 거울이 좌우에 각각 하나씩이다. 바닥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배수구가 있다. 어둡고 추울 때도 편히 씻도록 천장에 조명과 히터를 설치했다.

출입구 쪽 벽에는 수납공간(4칸)과 온수를 공급하는 보일러가 있다. 수납공간에는 1회용 칫솔과 치약, 비누, 수건이 있다. 양말과 속옷도 보인다. 모든 용품은 무료.

▲ 이동 목욕차의 샤워 공간(왼쪽)과 수납공간
▲ 이동 목욕차의 샤워 공간(왼쪽)과 수납공간

“삼촌, 여기 수건 2장!” 오후 3시 30분경 단골손님 김영미 씨(50)가 하얀색 목욕 바구니를 들고 왔다. 영등포구 쪽방촌에 산다.

그는 “아는 언니 소개로 3년째 매일 온다. 따뜻한 물을 이용할 수 있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 씨와 잠시 농담을 주고받고 목욕차에 들어갔다. 25분 뒤, 문을 열고 나온 김 씨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목욕차를 찾는 이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욕실이 없는 쪽방 주민도 있고,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인도 있다.

이 씨는 목욕하기 위해 여의도에서 센터까지 주기적으로 오는 노숙인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그분을 만난 건 강남구에서였어요. 목욕차를 소개했더니 여의도로 옮겨와 여기에 자주 오셔요.”

하루 이용객은 평균 10여 명. 춥거나 비가 내리는 궂은날에는 한산하지만 습하고 더운 여름철에는 20여 명이 기다리기도 한다. 기자가 찾은 날에는 남성 4명, 여성 6명이 다녀갔다. 목욕차는 월~금요일(공휴일 제외)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숙인 임시보호시설은 희망지원센터 등 7곳이다. 모두 샤워장과 세탁실을 갖췄다. 센터 안에도 공용 샤워장이 있다. 그런데도 목욕차를 따로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복지사인 박강수 희망지원센터 팀장은 다른 복지 서비스와의 연계 기능을 강조했다. 목욕차 이용객의 상태를 계속 관찰함으로써 다른 서비스를 제때 제공할 수 있다는 얘기. 목욕차는 오가는 사람의 눈에 쉽게 띄어 접근성이 좋고, 노숙인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도 쉽다.

센터는 목욕차에서 새 노숙인을 확인하거나, 기존 이용객이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정신 건강 및 의료 상담을 한다. 박 팀장은 “위생 상태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욕차에는) 거리 노숙인을 체크하고 상담을 진행해 사회 안전망 안으로 빨리 들어오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후 3시, 남성 노숙인이 “아이고, 아프다”고 신음하며 목욕차 앞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앉았다. 센터 직원들이 다가가 살폈다.

직원이 “오신 김에 목욕도 하고 가시라”고 권유하자 남성은 고개를 젓고는 유유히 걸어갔다. 이 씨는 “방금 오신 분은 몇 달간 목욕을 안 하셨다. (일부 이용객은) 직원과 친해져서 오시면 장난치고 투정도 한다”고 말했다.

▲ 서울시립영등포보현희망지원센터
▲ 서울시립영등포보현희망지원센터

이동 목욕차가 특히 필요한 대상은 여성 노숙인이다. 성폭력과 언어폭력에 노출되기 쉬워 혼자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경우도 많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노숙인 1700명을 면접 조사했더니 알코올‧약물 중독, 우울증 등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노숙인 비율은 여성이 42.1%, 남성이 15.8%였다.

여성 노숙인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커서 공동생활을 하는 복지 시설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이때 바깥에서 혼자 씻는 목욕차는 위생을 개선하고 입소를 유도하는 수단이 된다.

박 팀장은 “(목욕차의) 주요 타깃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여성이다. 여성은 안전에 민감해서 밖에서 지키는 사람이 있고 문을 잠그고 혼자 씻는 목욕차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을 앓는 여성 노숙인 이 모 씨가 이런 경우. 목욕차 이용을 계기로 센터에 들어가서 숙식을 해결한다. 겨울에는 목욕차를 쓰지 못했으나, 지난해 가을까지 이용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물이 나오고, 목욕용품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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