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의 산업재해 보도는 지금까지 사망자에 주목했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24세 김용균 씨, 2021년 경기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사고로 사망한 23세 이선호 씨 등. 젊은 노동자의 사례는 산재 문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

한겨레신문은 산재 생존자를 집중적으로 다뤄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기획보도 부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보도상 대상을 받았다. 제목은 ‘살아남은 김용균들.’

기자협회 심사위원회는 이렇게 평가했다. “산재사고를 다룰 때, 사망자가 나와야 ‘이야기 되는’는 기사로 취급하는 언론 관행에서 벗어나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죽음과 맞먹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산재 기록과 삶을 진정성 있게 추적했다.”

첫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통계는 죽은 자와 산 자로만 재해자를 분류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 그 경계선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 삶이 있다.”

산재로 노동력을 완전히 잃은 20~30대는 일할 수 없는 몸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야 한다. ‘살아남은 김용균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2022년 7월 11일에서 20일까지 연재했다. 취재팀 장필수 김가윤 기자를 3월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 살아남은 김용균들 취재팀. 왼쪽 두 번째부터 장필수 정환봉 김가윤 기자(출처=한국기자협회)
▲ 살아남은 김용균들 취재팀. 왼쪽 두 번째부터 장필수 정환봉 김가윤 기자(출처=한국기자협회)

기획은 장 기자의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한겨레 탐사팀 옆자리에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 팀이 있다. 장 기자는 1392호 기사를 읽었다.

제목은 ‘다리를 잃었지만 희망을 들어올립니다.’ 20대 때 조선소에서 일하다 추락해 다리를 잃은 전나라수 씨 이야기였다. 최근 장애인 역도 선수로 활약한다는 내용.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 번째는 돈이었다. ‘연금으로 한 달에 58만 원이 나왔다. 최저임금을 받다 보니 연금도 딱 최저다.’ 최저임금을 받던 20대가 일하다 다치면, 평생을 최저 수준 연금으로 살아야 한다. 장 기자는 생각했다. “이게 과연 온당한가?”

두 번째는 ‘절단방’이다. 기사에서 전 씨가 소개한 카카오톡 단체방의 제목이다. 여기에는 신체 일부를 잃은 청년이 모였다. 장 기자는 곧장 전 씨에게 연락했다.

먼저 연금을 받는 기준(장해 등급)을 물었다. 자신은 무릎 아래를 잃어 4급을 받았으며, 중장해에 해당하는 1~3급 친구가 더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장 기자는 청년 중장해인 현황을 파악하고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현황 자료를 요청했다. 3개월을 기다려 받았다. 중장해인 1만 1533명(2022년 4월 기준) 중에서 20~30대는 187명이었다. 가장 어린 나이는 15살이었다. 오토바이 사고부터 기계 끼임 사고 등. 나이와 사고 경위를 정리해 2022년 7월 11일 신문 1면을 채웠다. 인터랙티브 페이지도 만들었다.

▲ 한겨레신문 2022년 7월 11일 1면
▲ 한겨레신문 2022년 7월 11일 1면

피해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산재 유형별로 3~4명씩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료에는 이름, 주소 같은 정보가 부족했다.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보받고 관련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에서는 지난 일을 왜 들추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김 기자는 “건설 산재라고 하면 사업장과 건설 노조에 이런 사고가 있었냐고 물어봤다”며 “사업장은 다 끝난 일이라며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는 취재를 거부했다. 김 기자는 “몇 사람은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다시 말을 꺼내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문을 두드렸다. 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전남 광양부터, 경남 진주까지. 장 기자는 “전화할 때보다,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니 취재원들의 마음이 열렸다”고 말했다.

약 두달간 청년 4명을 만났다. 제철소 일산화탄소 폭발 사고로 2살의 인지능력을 가진 이희성 씨(23·가명). KT 진주지사에서 인터넷을 수리하다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하정원 씨(34·가명). 다리 건설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김준혁 씨(33·가명). 견인차를 몰다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30대 정민수 씨(가명).

취재원 모두 가명을 썼다. 지인과 미래의 아이들이 내용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는 등의 이유가 있었다.

▲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장필수(왼쪽) 김가윤 기자
▲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장필수(왼쪽) 김가윤 기자

장 기자는 이 씨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전남 광양의 아파트에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정보는 없었다. 아파트 꼭대기 17층부터 내려오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한 집씩 찾아가서 ‘이희성 씨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다 14층에서 만났다.

이 씨가 문을 직접 열었다. 장 기자는 “서류상 기록을 봤을 때와 문을 열고 마주했을 때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인터뷰 전, 김 기자는 준비를 꼼꼼하게 했다. 여러 번 질문하지 않기 위해서다. 사고 기억을 여러 번 들춰내면 취재원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 기자는 “인터뷰하고 나서 어느 취재원은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한 적이 없었는데,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기사를 쓸 때는 감정을 덜어내려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취재원이 불쌍하게 보이면 안 된다고 믿었다. 수식어를 제외하고 인터뷰하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취재원 모두 산재를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김 기자는 “굳이 감정적으로 인터뷰하거나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도가 나가고 하 씨가 장 기자에게 연락했다. 하 씨는 “회사(KT)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처음 왔다. 당당하게 임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장 기자는 “기사가 취재원에게 힘이 됐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시리즈는 산재 가족의 어려움도 조명했다. 기사에서 산재 가족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최진수 노무사(노무법인 노동과 인권)는 “산재 가족의 어려움을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이 보도가 첫발을 내디딘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기사를 읽었다. 그는 산재 생존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했다.

“원래 생존자들의 어머니를 보면 그저 얼굴 보고, 만지고, 목소리 들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아남은 김용균들이 이렇게 힘들고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이사장은 산재 가족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 당사자를 옆에서 보살피는 가족에 대한 사회제도가 부족하다고 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