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초록불인데 오토바이는 왜 지나가?” 서울 강서구 공진초 옆의 마곡하늬공원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에 초록빛이 들어왔다. 아빠와 아이가 헬멧을 쓴 채 나란히 자전거를 끌고 첫발을 뗄 때였다. 배달 오토바이 1대가 휙 지나갔다.

이곳은 어린이보호구역일까,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부자가 섰던 횡단보도 옆의 과속방지턱을 지나야 어린이보호구역이 시작한다.

그런데 어린이보호구역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지점의 표지판 위치가 제각각이다. 강수철 도로교통공단 본부장은 2월 3일 ‘안전한 스쿨존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시점과 해제 표지는 대향 방향 일치, 즉 같은 선상에 위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사고 발생 위치에 따라 법률 적용이 달라져 분쟁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의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통합지침’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은 초등학교, 유치원 등 어린이 주 통학로에 교통안전시설물 및 도로부속물을 설치해 지정한다. 시설의 주 출입문을 중심으로 반경 300m 이내 도로의 일정 구간이 어린이보호구역이다. 필요하면 반경 500m 이내의 도로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정할 수 있다.

▲ 규격 시점표지와 해제표지
▲ 규격 시점표지와 해제표지

기자는 2월 23일~27일, 서울 11개 구의 어린이보호구역 20곳을 살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 따르면 2019년~2021년 서울의 스쿨존 내 어린이사고 다발지역은 20곳이다. 2021년 8곳, 2020년 2곳, 2019년 10곳이다. 사고다발 지역은 반경 300m내 12세 이하 어린이 대상사고 2건 이상 또는 사망사고가 일어난 지역이다.

TAAS에서 어린이보호구역 20곳의 지도를 출력했다. 도보, 자전거, 자동차를 이용해 20곳의 도로 85개 구간을 확인했다. 어린이보호구역 1곳은 인근 도로 1개~8개로 구간이 설정됐다.

“지금 여기가 어린이보호구역인가요?” 길거리에서 인터뷰를 요청하자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조연지 씨(35)가 되물었다.

조 씨는 “여기서부터 어린이보호구역인지 몰랐다”며 “시점과 해제표지가 크게 잘 보이는 위치에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씨의 딸 정세영 양(11)은 “차가 많을 때 불안하고 무섭다”고 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기의 아빠 최형인 씨(34)도 “여기가 어린이보호구역이냐”고 물었다. 최 씨는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다니니까 어린이보호구역인지 거의 모를 수가 없다”면서도 “걸어 다닐 때는 표지가 잘 안보여서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린이보호구역 시점과 해제표지는 대체로 잘 설치됐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되거나 나무와 시설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광진구 스타파크아파트 옆 해제표지는 도로가 아닌 건물을 향했다. 이 속도제한 해제표지는 밤에 빛을 내는데, 방향이 틀어져 글씨가 바로 옆 건물 외벽에 반사됐다. 두 딸의 엄마 박보화 씨(41)는 “시점표지와 해제표지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다”며 “아이들과 어린이보호구역을 걸을 때도 직접 운전하면서도 느낀다”고 말했다.

▲ 속도제한 해제표지가 건물에 반사된다.
▲ 속도제한 해제표지가 건물에 반사된다.

시점과 해제표지의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 어린이보호구역은 10곳이었다. 광진구 레미안파크 근처 광진초 어린이보호구역은 시점과 해제표지를 같은 전봇대에 설치했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이곳이 시점인지 종점인지 알 수 없었다.

은평구 갈현초 어린이보호구역도 비슷했다. 연서로 사거리 골목 앞, 시점표지 아래 30㎞ 속도 제한을 해제하는 표지가 있다. 표지를 지나 두 발자국 걷자 속도를 제한하는 30㎞ 노면표시가 나왔다. 속도제한 해제표지가 4개의 골목 중 어디를 향했는지 알기 어려웠다. 조 씨는 “표지를 보는 운전자가 헷갈릴 것 같다”며 “표지의 방향을 올바르게 조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시점표지와 해제표지를 나란히 설치했다.
▲ 시점표지와 해제표지를 나란히 설치했다.

노면표시는 시점, 해제표지와 더불어 운전자의 시인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다. 행정안전부는 노면표시가 시점표지보다 앞서 있으면 안 된다는 지침을 제시했다. 그러나 도봉구 신화초 부근 동성네스트 빌라 앞, 강북구 수유초 근처 청풍상회 앞 등 어린이보호구역 8곳의 노면표시는 시점표지보다 앞섰다.

노면표시 문구도 제각각이었다. 강 본부장은 노면표시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노면표시는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고 두 줄로, 속도제한 노면표시는 흰색 원형 바탕에 빨간색 테두리를 두르고 도로포장색으로 숫자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 노면표시가 제각각이다.
▲ 노면표시가 제각각이다.

글씨 일부가 지워졌거나 도로 재포장으로 아예 가려진 부분도 있었다. 반면, 기준에 맞게 글씨를 덧써 개선한 구역도 있었다.

서울시 도시교통실 보행안전팀에 전화해 노면표시, 시점표지, 해제표지 등 시설물 관리 주기와 방안을 물었다. 관계자는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주겠다”고 답했다. 이후 연락은 없었다.

▲ 노면표시 일부가 지워지고 가려졌다.
▲ 노면표시 일부가 지워지고 가려졌다.

어린이 안전 분야 전문가인 가천대의 허억 교수(행정학과)는 대면 인터뷰에서 “어린이보호구역의 시작과 끝은 운전자가 어린이보호구역을 인지하고 주의하는 방어 운전을 유도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시설물의 질적 수준 향상 및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설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정 위치에 설치해 아이들의 안전한 보행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호주에 있는 ‘용의 이빨’을 보자. 운전자가 용의 이빨 안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줘 경각심을 높인다. 또 허 교수는 “운전 중에는 시각적으로 무뎌진다”며 “도로에 홈을 파 울퉁불퉁하게 만드는 럼블스트립(Rumble Strip)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은평구 초등학교 앞에서 50년 넘게 철물점을 운영한 이영심 씨(74)는 “여기는 챠량 진입을 통제하는 구역이지만 가끔 차가 빠르게 지나 다닌다”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하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호주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용의 이빨(제공=허억 교수)
▲ 호주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용의 이빨(제공=허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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