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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420억 원.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2022년,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의 규모다. 역대 최고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한 해에만 각각 600억 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받았다. 정의당도 약 100억 원을 수령했다. 정당을 보호 및 육성하고자 1980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정부가 국고보조금을 지급한 결과다.
최근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당 대표 출마 공약으로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를 내걸었다. “정당 국고보조금이 본래 취지를 벗어나 정당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권자인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 과연 잘 관리되고 있을까? 이 제도를 유지하는 게 맞을까?
취재팀은 정당 국고보조금의 도입 배경, 변천사, 문제점 등을 점검해볼 예정이다. 또 미국, 독일, 일본 등 해외 국가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의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정당 국고보조금> 기획 1편에서는 정당 국고보조금의 개괄적인 내용을 전한다. 취재 과정에서 이화여대 유성진 교수(스크랜튼학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를 인터뷰했다. 참고한 자료로는 ▲정치자금법 ▲중앙선관위 공고와 연구용역보고서 「해외 국가의 국고보조금 제도의 현황에 관한 연구」,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의 「각국의 정당·정치자금제도 비교연구」 ▲책 『한국 정치제도의 진화경로』 (심지연·김민전) ▲논문 「국고보조금 제도의 법적 문제점과 개선방안」 (이부하) 등이 있다.

 

▲국고보조금의 변천사

국고보조금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로,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국가로부터 보조받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제3조 6호는 국가가 정당을 보호 및 육성하기 위해 금전이나 유가증권을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고보조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매년 지급되는 ‘경상보조금’이 있다. 정당을 조직해 기본적인 정치활동을 하고 당원들을 관리하는 데 쓰이는 자금이다. 두 번째로 ‘선거보조금’이 있다.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등 공직선거에 정당이 후보자를 추천할 때 받는 보조금이다. 공직선거가 있을 때마다 받을 수 있기에 한 해에 여러 번 지급되기도 한다. 작년엔 제20대 대통령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져 선거보조금이 두 번 지급됐다. 마지막으로 ‘추천보조금’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시도의회 의원 선거 등에서 정당이 일정 비율의 여성·장애인·청년 후보자를 추천할 때 지급된다. 공천 과정에서 정당이 소수자를 정치인으로 발굴하고 양성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제도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자금에 대한 규정은 1946년 제정됐다. 당시엔 당원 외의 사람에게 기부나 원조를 합법적으로 수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 제7조 3항에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가 명시되며 국고보조금이 처음 법률에 등장했다. 당시에도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보호 및 육성을 위한 자금’으로 정의됐지만, 전두환 정권의 군사독재 시절이었던 만큼 정치자금으로 야당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현대 사회에서 국고보조금 제도는 국제적 추세다. 중앙선관위 선거연수원에서 발표한 「각국의 정당·정치자금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2021년 OECD 회원국 37개국 가운데 36개국이 어떤 형태로든 국고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다양한 국가에서 국고보조금 제도는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정치 활동을 활성화하는 민주적 역할을 한다. 공적 기금으로 사적 경제력의 영향을 줄여 누구나 정당을 만들고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시에 국고보조금 제도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국가로부터 자금을 받기에 정당이 정부에 종속될 위험이 있어서다. 국고보조금 제도가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성진 교수는 “국고보조금이 역설적으로 유권자인 국민이 아닌 정부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향성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정치활동에만 쓸 수 있는 국고보조금

정당은 국고보조금을 “정치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해야 한다. 정치자금법에는 용도 제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인건비 ▲사무용 비품 및 소모품비 ▲사무소 설치·운영비 ▲정책개발비 ▲당원 교육훈련비 ▲조직활동비 ▲선거 관계 비용 등이 있다.

사용 비율이 정해진 항목도 있다. 경상보조금의 30% 이상은 정책연구소의 설치·운영에 사용해야 하고, 시·도당 배분·지급에 10% 이상, 여성 정치발전에 10% 이상, 그리고 청년 정치발전에 5% 이상을 사용해야 한다. 이외에도 공직선거 후보자·예비 후보자에게 지원할 수 있다.

 

▲소비자물가와 총선 유권자 수에 따라 바뀌는 국고보조금

중앙선관위는 최근 실시한 총선 유권자 수에 계상단가를 곱한 값으로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 예산을 책정한다. 여기서 계상단가는 전년도 계상단가에 지지난해와 비교한 지난해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을 적용해 정해진다.

매년 1월 말까지 중앙선관위는 다음 해에 적용할 계상단가를 발표한다. 지난해 1월 27일, 중앙선관위는 2021년도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2.5%)을 적용한 2023년도 계상단가를 공고했다. 올해 계상단가는 1,085원으로 2022년 1,058원에서 26원 올랐다. 이렇게 책정된 계상단가 1,085원에 제21대 총선 유권자 수를 곱한 값, 약 478억 3,376만 원이 2023년 한 해 지급될 경상보조금이다.

▲ 정당 국고보조금 계상단가 변동 과정
▲ 정당 국고보조금 계상단가 변동 과정

계상단가가 정액화된 것은 1989년 정치자금법 4차 개정법이 실시되고부터다. 이때 유권자 총수에 400원을 곱한 금액을 예산에 의무적으로 계상케 했다. 7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법률처럼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을 적용해 산정하게 된 것은 2008년 개정 이후부터다. 2008년 정해진 첫 계상단가에 매년 전국소비자물가변동률을 적용한 값이 현재의 1,085원이 된 것이다.

첫 계상단가는 어떤 기준으로, 얼마큼의 금액이 책정됐을까. 취재팀은 첫 계상단가를 알아내기 위해 중앙선관위 정책계에 문의했으나 “문서 보존기간(최근 5년)이 지나 폐기해 알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거대 양당에 유리한 배분 방식

  책정된 예산은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지급된다. 국회법 제33조에 따라 국회에 20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교섭단체가 된다. 현재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만이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 정치자금법 제27조 중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정당에 경상보조금 2%를 배분하는 사항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 정치자금법 제27조 중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정당에 경상보조금 2%를 배분하는 사항 (출처=국가법령정보센터)

정치자금법 제27조에 따른 2023년 경상보조금 배분 비율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보조금 전체의 50%를 정당별로 균등하게 배분한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보조금의 50% 중 25%씩 우선 배분받는다. 다음으로 5석 이상 20석 미만에 해당하는 정의당(6석)은 5%를 받는다.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의 정당에도 법률에서 정하는 사항에 해당하면 2%를 받는다. 민생당은 의석수는 없지만 제21대 총선에서 득표율 2%를 넘어 조건을 충족했다. 이후 남은 금액의 50%는 의석수 비율에 따라, 50%는 국회의원 선거 득표수 비율에 따라 나눈다.

▲ 2023년 경상보조금 배분 비율
▲ 2023년 경상보조금 배분 비율

올해 1분기 경상보조금의 경우, 91.05%를 국민의힘(115석)과 더불어민주당(169석)이 가져갔다. 각각 51억 5천만 원(43.16%), 57억 원(47.89%)이다. 무소속 의원 7명을 제외하고, 정의당(6석)은 약 8억 원, 기본소득당(1석) 약 9천만 원, 시대전환(1석) 약 8,800만 원, 민생당(0석) 약 2억 4천만 원을 수령했다. 이외의 정당은 의석수가 없으면서 지급 조건에 해당하지 않아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국고보조금의 대부분을 가져가다 보니 교섭단체를 구성한 거대 양당에 유리하게 배분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유 교수는 “교섭단체에 우선순위를 둔 배분 방식은 정당 난립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교섭단체 구성 기준이 의원 수 20명이라 진입장벽이 높다”며 교섭단체 구성 조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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