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아(정경이)가 세상에 있었더라면 불혹의 나이가 되었겠구나.” 고(故) 장정경 씨의 어머니 임연지 씨(63)는 작년 2·18합창단에 들어갔다. 유명한 성악가가 되겠다고 딸이 생전에 약속했는데, 딸이 서야 할 무대를 엄마가 섰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참사 당시 장 씨는 스무 살로, 계명대 성악과 1학년이었다. 합창 무대에 오른 임 씨는 왼손으로 마이크를 꼭 잡고 노래했다.

▲ 대구 중앙로역 추모공간에 걸린 고(故) 장정경 씨 사진
▲ 대구 중앙로역 추모공간에 걸린 고(故) 장정경 씨 사진

2•18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식이 대구 동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2월 18일 열렸다. 이 참사는 자기 처지를 비관한 50대 남성이 2003년에 지하철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발생했다.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마주 오던 열차에 불이 옮겨붙은데다 기관실에서 승객을 대피시키지 않아 인명 피해가 커졌다.

추모식은 참사가 발생했던 오전 9시 53분에 맞춰 시작했다. 안전테마파크 앞뜰에 회색 플라스틱 의자가 가로 16줄, 세로 9줄로 깔렸다. 어두운 옷차림의 추모객 200여 명이 하얀 종이꽃을 들고 나란히 앉았다.

행사 시작과 동시에 무거운 음악이 흘렀다. 소리 내서 우는 사람은 없었지만 추모객 몇 명이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앞만 보고 우는 유족도 있었다. 묵념곡이 나오자 다같이 머리를 숙였다.

▲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식
▲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추모식

행사는 묵념, 추도사, 추모 공연, 노래 제창, 인사말,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50m 떨어진 곳에서 반대 집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는 차량에 마이크를 설치해 트로트를 틀고 고성을 질렀다. 김남호 상가번영회장은 트렁크 위에 올라가 “테마파크는 안전 교육용이지 추모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상인은 10명 남짓이었다. 이들은 추모식 허가를 내준 대구시를 나무라며 단풍길 조성과 케이블카 설치를 촉구했다. “내년에는 이곳에서 절대 추모식을 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며 팔공산 일대를 방치한 대구시장은 나오라고 소리쳤다.

지금까지 대구 시장은 해마다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날 발언자 순서에도 홍준표 대구 시장이 첫 번째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작년 취임한 홍 시장은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전날 대구 중앙로역 추모벽을 찾아 헌화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추모식이 열린 안전테마파크는 참사를 계기로 5년 뒤인 2008년 문을 열었다. 추모공원 부지를 선정하던 2005년, 대구시는 대구 달성군 화원유원지를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과 문화재청 반대로 무산되고 지금 부지인 팔공산 용수동에 자리 잡았다.

이곳에 건물을 올릴 때, 대구시는 상인회에 도시개발을, 추모재단에는 추모공원과 추모비 건립을 약속했다. 상인회와 추모재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대구시를 비판했다.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는 “합의 당시 참석한 소방공무원이 추모공원을 조성해주겠다며 이면 합의를 제안했다. 계약서를 안 쓰는데 어떻게 믿냐고 따졌더니 우리는 불을 끄는 사람이고 불을 끌 때는 목숨을 건다. 약속은 불을 끄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득했다”라며 소방관 직업정신을 믿고 합의했는데 지켜진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이사는 추도사에서 “사회가 참사를 기억해야 되풀이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며 추모공원으로 인정해주도록 촉구했다. 이어 세월호와 이태원에서 반복된 재난이 더는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곳을 2·18기념공원으로 불러달라는 여러분과 세월호 기억공간을 지키려 싸운 유가족들, 서울 시청광장에서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이태원 유가족들을 기억하겠다”며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행사 막바지에 2·18합창단이 단상에 올랐다. 장정경 씨의 어머니 임 씨는 딸이 있는 곳까지 들릴 수 있게 노래하겠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2022년 7월 유가족과 대구 시민이 만들었다. 임 씨는 고민 끝에 단원이 됐다며 아픔을 가진 사람을 노래로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합창단은 검은 옷을 맞춰 입고 파란 목도리를 둘렀다. 추모객을 마주보고 두 곡을 불렀다.

추모식이 끝나고 헌화를 위해 추모비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추모비의 정확한 이름은 ‘안전상징조형물’이다. 회색 돌탑 아래로 참사 희생자 192명의 이름을 빼곡히 새겼다. 추모객 200여 명은 추모비 아닌 추모비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모자를 눌러 쓴 어느 유족이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눈물을 닦았다.

▲ 추모객이 헌화하는 모습
▲ 추모객이 헌화하는 모습

추모비 오른편에는 잔디공원이 있다. 희생자 32명의 유골이 묻혔다. 플라스틱 이름표와 꽃 화분이 언덕을 이뤘다. 상인회 반대로 묘비는 세우지 못했다. 유족은 언 땅에 종이꽃을 꽂았다. 고(故) 김민정 씨 유가족은 이름표에 대고 “내가 갈 때까지 잘 있어”라고 인사했다. 어느 여성은 겨우 걸음마 하는 딸에게 “이게 할아버지 이름이에요”라며 글씨를 가리켰다.

한편 사고가 발생했던 대구 중앙로역 역사에는 이날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다. 중앙로역 기억공간 안팎으로 유족이 들었던 종이꽃이 꽂혀 있었다. 1시간 가량 분향소에 머무르니 발길을 멈추는 시민들이 보였다. 중절모를 눌러 쓴 노인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까지 다양했다.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분향소 안 추모 공간에는 추모벽이 있다. 검은 외투의 남성이 벽을 한참 바라보다 고(故) 강연주 씨와 고(故) 서은경 씨 이름 사이에 국화꽃을 꽂았다. 벽 왼쪽 상단에는 대구 시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강혜수 씨(24)는 어릴 때부터 중앙로역을 지날 때마다 추모벽을 보았다며 “참사에 마음 아파하는 대구 사람들의 심정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 2월 18일 추모벽을 찾은 시민
▲ 2월 18일 추모벽을 찾은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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