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운서동의 이글종합물류. 1500평 창고에 ‘Aid-Material/Turkiye(구호물품/튀르키예)’라고 적힌 박스가 가득했다. 2월 6일 규모 7.8 강진을 겪은 튀르키예에 보낼 구호품이다.

벽에는 ‘구호물품 접수처’라고 적힌 종이가 보였다. 전국에서 보낸 기부 물품이 모이는 곳이다.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이 지정했다. 이곳에서 분류 작업을 하면 터키항공이 비행기에 실어 튀르키예로 보낸다.

▲ 인천시 중구의 이글종합물류
▲ 인천시 중구의 이글종합물류

기자가 2월 15일 이곳에 갔다. 봉사자가 오전 9시부터 하나둘 나타났다. 대부분은 튀르키예인과 한국인이다. 사흘째 봉사 중인 엘리프 메셰 씨(26)가 봉사자에게 목장갑과 테이프를 나눠줬다. 디지레 김 씨(28)는 핫팩을 배부했다. 평균기온 2.5도. 바람이 많이 불었다. 첫 트럭이 들어오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트럭 적재함이 열리면 봉사자는 구호품 박스를 내린다. 20박스씩 깔판에 쌓고 테이프로 고정한다. 뜯어진 박스는 테이프로 붙인다. 봉사자와 업체 직원 30명 정도가 일하면 15분 만에 트럭 1대분 작업이 끝난다. 이렇게 쌓은 구호품을 지게차가 공항으로 가는 트럭에 옮긴다.

구호품은 하루 평균 75t 들어온다. 이글종합물류 관계자는 하루에 5t 트럭 5대, 1t 트럭 50대 정도가 드나든다고 설명했다. 작업시간은 8시간. 한 시간에 트럭 약 6대, 10분에 1대가 들어오는 셈이다.

터키항공이 수송 가능한 물량은 하루에 15t. 을지종합물류 관계자는 “구호품 약 200t이 쌓여 있다”며 “해운으로 보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 봉사자가 트럭에서 구호품을 내리는 모습
▲ 봉사자가 트럭에서 구호품을 내리는 모습

일부 기부자는 차를 몰고 온다. 이미선 씨(57)는 승용차에 박스 3개를 싣고 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고, 또 여성으로서 생리대와 겨울옷이 모자라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 박스에는 생리대 옷 보온병을 담았다.”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지역센터에서도 구호품을 모아왔다. 고재화 씨(62)는 진접읍에서 모인 구호품이 320박스라고 했다. 구호품이 올때마다 튀르키예인들은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기부자들은 “수고하십니다”라고 답했다. 어느 기부자는 봉사자를 위해 커피를 갖고 왔다.

▲ 분류된 중고 물품
▲ 분류된 중고 물품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은 2월 14일 언론 보도를 통해 중고품은 보내지 말라고 부탁했다. 튀르키예대사관 관계자는 “위생 문제로 인해 중고품은 사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중고품이 많았다. 봉사자가 골라내지만 모두 분류하진 못했다. 택배 박스의 물품은 그대로 보냈다. 부세 귈레츠 씨(26)는 “박스가 많이 오는데 빨리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다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패딩(왼쪽)은 구호품으로 보내고 얇은 옷(오른쪽)은 버린다.
▲ 패딩(왼쪽)은 구호품으로 보내고 얇은 옷(오른쪽)은 버린다.

중고품이라고 다 버리지는 않는다. 겨울 점퍼는 구호품으로 보낸다. 대신 얼룩과 보풀 등 오염 여부를 살핀다. 얇은 티셔츠, 반팔 옷은 폐기 대상이다. 2월 평균 최저기온이 2.8도인 튀르키예 현지 날씨를 고려했다.

“이거 좋은 거!” 벨라미르 카라메세 씨(22)가 검정색 중고 패딩의 소매와 지퍼를 살피며 외쳤다. 빨간색 노스페이스 패딩, 갈색 털옷도 구호품으로 분류했다. 소매에 얼룩이 묻은 패딩, 보풀이 일어난 코트는 폐기됐다.

엘리프 씨는 구호품을 담은 비닐에서 긴 천을 꺼냈다. 보라색 목도리였다. 구석구석을 보더니 구호품 박스에 넣었다. 그는 “튀르키예 여성은 히잡을 많이 쓴다”며 “히잡은 구호품으로 잘 안 들어오기 때문에 최대한 보내는 게 좋다”고 말했다.

▲ 구호품으로 들어온 음식
▲ 구호품으로 들어온 음식

김, 견과류, 쌀과자 등 음식도 구호품에 포함됐다. 통조림 햄, 소시지 등은 빼냈다. 튀르키예인 99%가 무슬림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밀봉된 핸드크림은 상자에 담았다. 이미 개봉한 수분크림은 폐기했다. 엘리프 씨는 “튀르키예에서 일일이 소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중고품은 보내지 않는게 좋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오후 2시에야 점심을 먹었다. 식사 공간이 없어 물류센터 벽에 기대서 먹는다. 표정은 밝았다. 메뉴는 인도식 닭요리.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할랄 음식으로 주문한다. 30분간 밥을 먹고 작업이 다시 시작했다.

이날 봉사자는 모두 25명. 튀르키예인이 16명이었다. 대부분 봉사활동으로 처음 알게 된 사이다. 한국에서 거주한 기간과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고국을 돕기 위해 모였다.

중앙대 대학원생 부세 씨는 “지진 소식을 듣고 튀르키예를 도울 방법을 고민했다”며 “구호품을 들고 물류센터에 갔는데, 작업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세 씨를 비롯한 튀르키예인 봉사자 75명이 카카오톡 단체방에 모였다.

▲ 작업이 끝나고 봉사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작업이 끝나고 봉사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한국인 봉사자 9명도 함께했다. 이규환 씨(28)는 튀르키예인 아내 수헤일라 씨(27)와 함께 왔다. 아내가 SNS에서 모집 글을 보고 같이 왔다.

수헤일라 씨는 터키 서부 안탈리아 출신이다. 가족은 안전하지만 친구와 먼 친척 일부가 피해를 입었다. 이규환 씨는 “처음에는 피해 규모를 몰랐는데 뉴스를 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며 “아내는 지진이 난 이후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잘 못 잤다”고 말했다.

오후 2시까지 물류 작업을 도운 우미경 씨(41)는 “뉴스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안좋았다”며 “토요일에 물품을 전달하려고 왔는데 봉사활동 인력이 부족해 보여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봉사 활동이 더 홍보가 돼서 많은 분이 와주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업은 5시 30분 마무리됐다. 마지막 트럭이 싣고 온 박스까지 내리자 봉사자들은 박수를 쳤다. 팔과 다리를 주무르기도 했다. 작업이 끝나고 튀르키예인 봉사자 8명은 인천 중구 운서역 근처의 카페에 모였다. 이들은 한국에 오게 된 이유와 MBTI 등 다양한 주제로 밤 9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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