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다인 씨(30)는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출소를 앞둔 2020년 10월쯤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담안선교회’로 올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담안선교회는 범죄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민간 갱생 보호시설이다. 김 씨는 당시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 알림e’를 처음 보고 놀랐다. 성범죄자 주소가 집과 가까워서 골목을 지날 때마다 불안했다.

상습 성폭행범 등 흉악범이 출소하면 거주지로 알려진 지역의 주민이 반발한다. 2022년 10월엔 김동근 경기 의정부시장과 정명근 화성시장이 경기 과천시의 법무부 청사를 항의 방문했다.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한 김근식(54)과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40)를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에서다.

이에 법무부는 ‘2023년 정부 업무보고’에서 “고위험 성범죄자의 출소로 국민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도록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추진한다”고 1월 26일 밝혔다. 성범죄자가 학교와 보육시설(어린이집, 유치원)로부터 500m 이내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대상은 반복적 성범죄자와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로 한정했다.

성범죄자 알림e를 봤더니 법원으로부터 신상 공개 명령을 선고받은 성범죄자 45명(2023년 2월 15일 기준)이 서울 중랑구에 산다. 서울 자치구 중에서 가장 많다. 중랑구에는 유치원과 초중고가 79곳 있다. 주민이 불안해 하는 이유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담안선교회 입구
▲서울 중랑구 면목동 담안선교회 입구

담안선교회 근처의 카페에서 2월 8일 만난 중학생 2명은 “학교 근처에 범죄자들을 못살게 하면 훨씬 덜 불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둘은 중랑구에 10년째 산다. 평소 부모로부터 “항상 조심하라”, “되도록 큰길로 다녀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담안선교회는 범죄자가 사는 곳이니 밤에는 그 쪽으로 다니지 말라는 말도 부모가 했다고 한다.

중랑구 망우동에 사는 노선형 씨(24)는 “(한국형 제시카법 같은) 그런 법이 생긴다면 덜 불안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법이 서울만 보호한다면 다른 지역에는 불공평하며, 그런 법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법무부가 최대 거주 제한 거리로 정한 500m는 이 법을 2005년 처음 도입한 미국 플로리다주의 1000피트(약 300m)보다 길다. 인구가 밀집한 국내 대도시 환경을 감안하면 사실상 성범죄자는 수도권에서 살 수 없다는 얘기다.

▲ 서울 중랑구의 성범죄자 거주지(빨간색)는 학교 및 보육시설(노란색 파란색 녹색)과 매우 가깝다. (출처=구글 마이맵스)
▲ 서울 중랑구의 성범죄자 거주지(빨간색)는 학교 및 보육시설(노란색 파란색 녹색)과 매우 가깝다. (출처=구글 마이맵스)

한민경 경찰대 교수(행정학과)는 서면 인터뷰에서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 지역에는 사실상 성범죄자의 거주가 제한된다”면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거주 제한을 두는 것 자체가 성범죄자는 일반인과 굉장히 다른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타자화하는 것이다. 성범죄 발생 원인과 대응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안이하게 만든다.”

한 교수는 거주를 제한해야 한다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보다 훨씬 더 높은 빈도와 더 중한 강도로 발생하는 성인 여성 대상 성범죄를 우선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예를 들어 연쇄 성폭행범 박병화의 경우 피해자 8명 중 7명이 20대였다. 그는 경기 화성시 수원대 후문으로부터 약 130m 떨어진 원룸 밀집 지역에 산다. 한국형 제시카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20~30대 여성 1인 가구는 보호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재범률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허경미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과)가 2019년 ‘한국공안행정학회보’에 게재한 논문(미국의 성범죄자 등록·공개·취업제한 제도에 대한 비판적 쟁점)에 그런 내용이 담겼다.

논문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집행 유예 또는 가석방 중인 성범죄자 1600명을 5년간 추적조사했는데,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범죄자의 재범 가능성이 일정한 범죄자에 비해 4배 이상 높았다. 캘리포니아주는 학교 공원 등으로부터 2000피트(약 600m) 반경에 성범죄자 거주를 제한하는 법을 2006년 도입했다.

허 교수는 형기를 이미 마친 사람의 취업이나 거주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사회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면서 “사회와 단절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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