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공무원의 유가족은 가족을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까. 사고가 생기면 언론은 유가족이 슬퍼하는 모습을 잠시 보여준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크게 다루지 않는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이런 유가족 이야기를 6부작 시리즈에 담았다. 관훈클럽이 주관한 관훈언론상(제40회) 수상작이다.

히어로콘텐츠팀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기념해 2020년 만들었다.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6부작 시리즈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히어로콘텐츠팀 5기인 8명이 만들었다. 지민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위은지 홍진환 김충민 이승건 기자. 작년 3월부터 8월까지 반년 가까이 취재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기자들이 3주 동안 10명 정도의 유가족과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한 달 만에 고(故) 이호현 소방교의 아버지(이광수 씨)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를 시작으로 고(故) 이영욱 소방경의 아내(이연숙 씨), 고(故) 허승민 소방위의 아내(박현숙 씨)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소정 기자는 “이 아이템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여 있을 때 취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관훈언론상을 받고 히어로콘텐츠팀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기욱 기자 제공)
▲ 관훈언론상을 받고 히어로콘텐츠팀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기욱 기자 제공)

‘산화’ 시리즈는 박 씨를 중심인물로 설정해 내러티브 형식으로 보도했다. 내러티브는 어떠한 사안을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형식이다. 취재팀은 유가족의 일상, 감정과 지인을 자세하게 보여주면 독자에게 더 효과적으로 유가족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소정 기자는 독자에게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기사를 읽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려는 이유도 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직접 취재한 순직 경찰관 추모식 현장을 한국의 유가족 돌봄·예우 제도와 비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자 곽혜선 씨(24)는 “기사를 읽고 미국은 순직의 의미에 맞는 유가족 대우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유가족에 대한 실질적인 대우보다 행사, 절차 등 보여주기를 중시하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신파를 지양하려고 했다. 지민구 기자는 “어떻게 보면 뻔한 주제였다. 유가족을 주제로 한 기존 보도물이 슬픔과 동정의 영역을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큰 목표였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슬픈 내용을 앞세워 유가족을 동정하게 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이기욱 기자는 취재원의 다양한 면을 보려고 최대한 자주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친구, 직장동료, 졸업한 학교 교수 등 30여 명을 만나 다양한 내용을 들으려 했다.

▲ 디지털 콘텐츠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 디지털 콘텐츠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산화’ 시리즈는 지면 기사와 디지털 기사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특히 온라인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와 함께 두 디지털 콘텐츠를 독자에게 제공했다. 순직 공무원 11명의 유품 사진과 이야기를 담은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에는 취재를 거부했던 유가족이 참여했다. 순직 공무원을 기억할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히며 설득한 결과다.

이기욱 기자는 유가족 11명의 집을 찾아가 사진을 찍었다.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은 음성과 영상을 이용해 실제 소방관이 출동하는 과정을 담았다. 실제 출동 장면을 담기 위해 소방서에서 대기하며 취재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이 보도로 관훈언론상에서 저널리즘 혁신 부문을 수상했다. “순직한 소방관, 경찰관 등 공무원들의 삶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심층 취재 보도했으며, 온라인에는 지면 기사를 웹에 옮겨온 수준을 넘어 멀티미디어로 특화했다. 고인에 대한 유가족의 추억을 사진과 음성으로 재구성했고, 119 소방차가 출동하는 순간을 사진들로 연결한 포토그래머트리 기술로 구현하는 등 혁신의 관점에서 가장 돋보였다.” 심사위원회의 평가다.

동아일보 보도는 소방관 유가족이 비영리단체 ‘소방가족 희망나눔’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 소방청 조인담 소방경은 유가족 모임을 처음 기획했다. 사회 인식이 개선돼야 순직자 처우와 예우가 나아진다는 믿음이 있어서 취재에 도움을 줬다.

조 소방경은 “사회는 남겨진 가족에게 큰 빚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회가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줬으면 한다. 이번 기사를 통해 유가족들이 스스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단체가 생겼으니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작년 12월 우미희망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순직 공무원 유가족을 위한 민관 종합 지원정책) 업무 협약을 맺었다. 남겨진 가족, 특히 미성년 자녀를 경제적으로 또 정서적으로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국가보훈처 신승민 사무관(복지정책과)은 ‘산화’ 시리즈에서 미국의 유가족 예우 사례를 보고 민관 합동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간 우리나라 보훈 정책이 생계 지원이나 보상금 등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 한 단계 더 발전시켜서 정서적 측면까지 민관 합동으로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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