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속에 눈이 내리던 1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 주택가 골목. 그곳에서 20대의 패기로 국화빵 장사를 시작한 이정수(28) 이정은 씨(25) 자매를 만났다. 둘은 털 부츠와 털모자 차림이었다.

자매는 부모의 가게 옆 마당에서 장사를 한다. 가게 이름은 ‘연희동 국화빵(@yhd_kukhwabbang).’ 하얀 담장 위 국화빵이 그려진 연보라색 포스터가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브레이크타임이 오후 5시에 끝나면 자매는 가게 문을 다시 연다. 세련된 카페 분위기와 비슷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작고 귀여운 산타 모양 알전구가 번쩍인다. 이곳에서 나오는 빵 굽는 냄새가 골목에 들어선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손님이 많아질수록 자매의 손이 빨라진다. 언니는 리듬감 있게 국화빵을 쏙쏙 뒤집는다. 옆에서 동생이 빈 빵틀에 반죽을 척척 붓는다. 뒤집고 붓고 포장하는 손놀림이 일사불란하다.

▲국화빵을 만드는 이정수 이정은 자매(왼쪽). 손님들이 국화빵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국화빵을 만드는 이정수 이정은 자매(왼쪽). 손님들이 국화빵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정수 씨는 2년제 전문대학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했다. 졸업하고 양식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하는 일에 체력적 한계를 느꼈다.

 

일을 일찍 시작한 정수 씨는 놀고 여행 다니는 대학생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힘이 빠졌다. “내가 아직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데 여기서 썩고 있어야 되나? 나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뒀다.

퇴사 후에 정수 씨는 말 그대로 해보고 싶은 일을 다 했다. CGV 영화관과 롯데월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전공과 무관한 영화관 아르바이트는 재미있었다. 롯데월드에서 손님을 맞는 일도 즐거웠다. “20대 때 해볼 수 있는 거는 최대한 해보는 게 좋은 것 같더라고요. 20대 때 아니면 못 하잖아요.”

하고 싶은 길을 마음껏 걸어본 정수 씨는 디저트 카페에 취업했다. 4년간 일했다. 그리고 카페 창업을 목표로 퇴사하고, 창업 연습 겸 용돈벌이로 국화빵 장사를 시작했다.

정은 씨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학부생 시절 어린이집 교사를 목표로 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바로 취업하는 게 망설여졌다. “바로 어린이집 취업을 해버리면 (다른 일을 도전해보기에는) 시기가 안 맞을 거라 생각해서…. 그러면 일단 하고 싶은 거를 먼저 하자는 생각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커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그래서 어린이집 교사 취업 전 3개월을 생각하고 시작한 카페에서 1년을 일했다. 지금은 언니와 함께 카페 창업이라는 새 목표를 세웠다.

그 전에 연습 느낌으로 시작한 국화빵이 잘 팔려 요즘은 카페 아르바이트와 국화빵 장사를 같이 하는 중이다. 자매에게는 지금 무엇이 좋고, 잘 맞고, 즐거운가가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자매는 연희동 국화빵의 강점을 묻자 다양한 슈크림 맛을 꼽았다. “이번 주는 기본(팥, 슈크림, 초코)으로 가는데, 이제까지 라구맛이랑 호구맛(호박 고구마), 햅쌀, 얼그레이, 애플 시나몬, 그리고 누룽지 맛까지 만들어봤어요!” 정수 씨는 디저트 카페에서 일했던 경험을 이곳의 강점으로 살려냈다.

손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최순영 씨(28)는 “사장님이 젊고 트렌디하다는 점이요. 젊은 층들의 취향을 딱 알고 그에 맞춰서 만드니까”라며 얼마 전 출시된 얼그레이 맛이 새로웠다고 했다. 윤수지 씨(25)는 매장을 가리키며 “가게를 저렇게 꾸며놓은 것도 젊은 층들을 저격한 것”이라고 했다.

정윤아 씨(28)는 다양한 맛에 더해 기존 노점상과는 다른 SNS 소통의 편리함을 짚었다. “SNS로 소통하다 보니까 언제 열고 닫는지 확실하게 보이고…. 개인 메시지(DM)로도 사장님과 소통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정수 씨는 롯데월드 아르바이트 경험과 자영업자인 부모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롯데월드에서 마감 때, 손님이 더 이상 줄을 서지 않도록 마지막 손님과 팻말을 들던 이벤트를 국화빵 장사에서도 살렸다. ‘재료소진…다음 기회에’라는 팻말을 든 손님의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 마감을 알린다.

“그때(롯데월드에서 일하던 때) 손님들이 (마감) 팻말을 되게 들고 싶어 했거든요. 저는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손님이 이런 걸 하면 재미있어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아무리 무관한 것을 해도 그게 다 경험으로 쌓이더라고요.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어요. 언젠가는!”이라며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의 중요성을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한식 자영업을 하는 부모의 조언은 더 현실적이었다. 덕분에 눈 오는 날 매트를 미리 깔아놓는 등 매장을 찾는 손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할 수 있었다. 이달 말에는 부모의 가게 한 편을 국화빵 테이크아웃 매장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어머니 정희전(55) 씨는 두 딸처럼 독립적인 도전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때 이렇게 한 번 해볼 걸. 그런데 옛날엔 그럴 생각을 하면 안 됐고, 그런 말도 꺼냈어도 안 됐다.”

▲ 연희동 국화빵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자가 구매한 국화빵, 그리고 연희동 국화빵 포스터(왼쪽부터)
▲ 연희동 국화빵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자가 구매한 국화빵, 그리고 연희동 국화빵 포스터(왼쪽부터)

이곳의 포스터는 정수 씨의 후배 권민수 씨(27)가 만들었다. 그는 “정수 언니는 화끈한 사람이에요. 실천력 있는 사람이고, 트렌디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권 씨는 연희동 국화빵이 이렇게 잘 되는 데는 정수 씨의 확고한 목표 의식이 한몫했다고 했다.

“단순히 ‘많이 벌자!’가 아니라 연희동을 국세권으로 만들고 국화빵 웨이팅을 보여주겠다는 목표 의식이 언니에게는 있었거든요.”

포스터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권 씨에게 정수 씨가 부탁했다. 권 씨는 정수 씨가 원하는 느낌과 참고 자료를 중심으로 작업했다. 그렇게 국화빵이 가진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면서 길거리 음식의 트렌디함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살린 포스터를 완성했다.

정 씨는 자매를 응원하면서 현실적 문제까지 언급했다. “국화빵은 겨울 간식이잖아요. 본인들이 이거를 1년 365일 계절 안 타는 디저트라는 이미지로 만들어가야 하는 숙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숙제를 넘어야 더 멋진 딸들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자매는 기존의 길을 벗어나는 도전을 적극 추천했다. 젊은 나이에 경험만큼 좋은 자본은 없다는 얘기. 정은 씨는 “전공으로 꼭 안 가도 사실 큰 상관 없잖아요. 그래서 완전 추천!”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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