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이태원에서의 나의 핼러윈 밤이 어떻게 즐거움에서 공포로 바뀌었나.’ 지난 10월 30일 영국 가디언지에 게재된 기사 제목이다. 기사의 길이는 A4용지 세 장 정도였다. 

“저녁 7시부터 이태원에 이미 사람들이 넘쳐났다. 군중을 통제하는 인력을 본 기억은 없었다. 밤 10시 30분에 우리는 이태원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역 근처 해밀턴 호텔 앞에 소방차와 구급차가 있었고 경찰 두 명이 경찰차 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떠나라고 애원했다.” 

▲ 가디언지에 올라온 라시드 기자의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 (출처=가디언)
▲ 가디언지에 올라온 라시드 기자의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 (출처=가디언)

이태원 참사 현장을 목격한 영국인 프리랜서 라파엘 라시드(Raphael Rashid)가 쓴 기사의 내용이다. 그는 지난 9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객관적인 언론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시드 기자의 어머니는 프랑스계, 아버지는 방글라데시 출신 영국인이다. 그는 런던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한국에는 2011년에 와, 고려대학교에서 한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석사 논문의 제목은 ‘남북관계에서 중재 역할의 재평가’이다. 졸업 후에는 외국계 홍보회사의 한국지사에서 3년간 일했다. 라시드 씨는 2017년 퇴사 후 프리랜서로 일하며, 한국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 라파엘 라시드 기자의 사진 (출처= 라파엘 라시드 제공)
▲ 라파엘 라시드 기자의 사진 (출처= 라파엘 라시드 제공)

라시드 기자는 뉴욕 타임스와 가디언 등 주로 영, 미권 매체에 한국 관련 기사를 기고한다. 잡지 글도 쓴다. 엘르 코리아에서 한글로 ‘라파엘의 한국살이’라는 이름의 50부작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엘르 칼럼을 바탕으로 원고를 추가해 책을 냈다. 제목은 ‘우리가 보지 못한 대한민국’이다. 

2년 전, 그의 일곱 번째 칼럼 ‘한국 언론을 믿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가 화제가 됐다.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의 언론은 형편없다! 뉴스를 아무리 읽어도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 뉴스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특히 이 다섯 가지 문제에서는 참담한 수준이다. 팩트 체크의 누락, 사실의 과장, 표절, 사실을 가장한 추측성 기사, 언론 윤리의 부재.”

2020년 3월 9일, YTN이 이 칼럼을 소개했다. 그는 뉴스에 출연해 한국 언론이 익명 취재원을 남용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 언론의 코로나 19 보도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는 취재원을 사용한 기사가 많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같은 해 3월, 그가 뉴욕 타임스에 투고한 ‘사이비라고 불리는 것과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은 별개다’라는 기사도 주목을 받았다. 신천지가 코로나의 원인이 아님에도 한국의 대중과 언론 그리고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목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한국 외교부가 즉각 반박했다. 당시 서은영 해외언론팀장은 뉴욕 타임스에 해당 기사 내용이 오해라는 취지의 반박문을 냈다. 

▲ 라시드 기자의 기사 (출처=뉴욕 타임스)
▲ 라시드 기자의 기사 (출처=뉴욕 타임스)
▲ 한국 외교부의 반박문 (출처=뉴욕 타임스)
▲ 한국 외교부의 반박문 (출처=뉴욕 타임스)

그의 글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그가 주목하는 한국의 이슈들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kpop, 성형수술, 북한 등이 아닌 한국의 부정적인 측면들에 더 관심이 있었다. 다른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 말이다.” 지난 8월 26일 영자신문사 코리아 헤럴드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라시드 기자는 한국 언론과 사회 전반의 민낯을 드러내는 글을 써왔다. 한국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나 한국인 취재원들과의 적극적 소통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의 저널리즘적 고민과 취재 방법, 그리고 한글로 글을 쓰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처음 인스타그램(@noraewang)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이번 주에 바빠서 하루 이틀 뒤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3일 뒤, 그가 늦게 연락을 해 미안하다며 종로3가의 ‘더 프롬하츠’라는 커피집 주소를 보내왔다. 10월 28일 그곳에서 배낭 가방을 메고 온 라시드 씨를 만났다.

라시드 기자에게 그동안 그가 한국에서 쓴 기사와 잡지 글은 다 읽어봤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부끄러워했다. 그러면서도 곧 편하게 질문하라고 했다. 그는 한국말을 하지만 유창하지는 않았다. 중간에 막히면 영어로 설명했다. 말을 할 때는 조용한 어투였다. 하지만 대답의 내용은 직설적이고 솔직했다. 

한국 언론과 취재원 

우선, 주로 찾아보는 한국 언론사가 있는지 물었다. 라시드 기자는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매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좋아하지 않는 매체들도 다 살펴본다고 밝혔다. 신문은 구독하지 않는다. 그는 네이버 등의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기사를 읽는다고 했다. 

가디언, 뉴욕 타임스, 그리고 닛케이 아시아 등의 외신은 출처로 바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 시스템이 있다. 그는 하이퍼링크를 걸 사이트들의 균형을 고려한다고 했다. 만약 필요한 정보를 다룬 기사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있으면 둘 다 자신의 기사에 하이퍼링크를 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의미가 없을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언론에서 같은 주제에 관한 기사는 매체 간 차이가 없다. 한국 기자들은 보도자료를 받아서 복사 붙여넣기를 하고 제목만 바꾼다. 가끔 조선일보와 한겨레 기사 내용이 거의 똑같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어차피 같은 정보이니 둘 다 인용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취재할 때는 정부의 웹사이트 등 가장 본연의 출처를 확인해 기사에 첨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은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했다. “기사에서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따르면 이런 발표 나왔다고 하는데, 무슨 조사인지, 무슨 연구인지 알기 어렵다.” 라시드 씨의 말이다.

취재의 노력과 균형점   

한국인 취재원들을 어떻게 구하는지 물었다. 그는 “SNS에서 찾는다. 당신의 SNS에서 이런 재밌는 글을 읽었다. 취재해도 되냐.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라고 답했다. 

라시드 기자는 “내 기사에는 영어로 인터뷰 한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가디언지 기사 ‘한국은 언택트 사회의 건설을 위해 사람들 간의 교류를 줄인다’에서 그는 한국의 대학교 졸업생과 교수, 그리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인터뷰했다.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그다. 기사 하나를 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작성한 기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냐고도 질문했다. 그는 2018년 기사 ‘내 누나는 김정일과 결혼했다’를 꼽았다. 김정일의 처남 성일기 씨를 그가 직접 인터뷰한 기사다. 성 씨를 찾는 데만 1년이 걸렸다고 했다. 라시드 기자가 예전에 성 씨를 인터뷰한 기사들을 찾아 성 씨를 알만한 사람들에게 직접 연락했다. 그렇게 우회적으로 성 씨의 연락처를 받았다. 더 자세한 취재 과정은 자신만의 중요한 정보라며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기사는 현재 ‘미디엄’(https://medium.com/)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라시드 기자는 기사를 쓸 때 취재원들의 균형을 고민한다. “주제가 페미니즘이어도 남자와 여자를 다 취재하려고 한다.” 동시에 이게 어려운 작업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 사람만 취재하면 쉽지만, 서울 중심적이라서 문제”라고 말했다. 또, “영어를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인터뷰하면 편하지만, 그 사람이 한국인 집단을 대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문체를 살린 한글 번역

뼈를 깎는 노력. 바늘구멍 같은 기회. 다소 한국적인 표현들이 라시드 기자의 칼럼이나 책에서 쓰였다. 그는 한글로 글을 쓸 때 자신을 잘 아는 11년차 친구 허원민 씨의 도움을 받았다. 

라시드 기자는 “협업이 있었다.”라면서 허 씨와의 작업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원고를 자신이 아는 기초 수준의 한국어로 작성한다. 모르는 단어는 영어로 적는다. 구글 닥스에서 허 씨가 한 줄씩 이를 완전한 한국어 문장으로 바꾼다. 그러면 라시드 기자가 번역된 문장의 문법과 단어가 자신이 원하는 표현인지 확인한다. 그는 이 작업을 반복해 자신의 영어문체를 한국식으로 번역했다고 밝혔다. 주변의 친구들이 한글로 쓴 자신의 글을 읽고 “한글이지만 네가 말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고도 덧붙였다. 

허 씨와 잠시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라파엘이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교정과정을 많이 거쳤다.”라고 말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라시드 기자, 한국에서의 계획 

라시드 기자는 자신이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관심 없는 주제에 대한 일은 받지 않는다. 나처럼 일하면 프리랜서 기자만 해서 돈을 못 번다.” 한국에 대해 과장하거나 사실이 아닌 기사를 써달라는 제의는 거절했다. 그래서 번역일과 다큐멘터리 제작 일 등을 부업으로 해왔다. 

계속 프리랜서로 활동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그는 몇 년 전과 달리 요새는 외신 매체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작년, 뉴욕 타임스는 홍콩 사무소 일부를 한국으로 옮겼다. 중국이 2020년 7월에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라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그는 “지금은 주변 프리랜서들 다 없어졌다. 나만 남았다. 하지만 큰 매체에 가면 트위터에서 지금처럼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다. 의견도 내면 안 된다.”라며 갈등하는 기색이었다. 참고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한국의 크고 작은 이슈들에 대한 의견을 트위터에 올린다. 특히 인권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역겹다’다 등의 강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 라시드 기자가 ‘동성애는 정신병’이라는 전 김성회 비서관의 말에 대해 역겹다고 표현했다. (출처=트위터) 
▲ 라시드 기자가 ‘동성애는 정신병’이라는 전 김성회 비서관의 말에 대해 역겹다고 표현했다. (출처=트위터) 

라시드 기자는 한국의 성 소수자와 여성 인권 문제를 다룬 기사도 썼다. 각각 닛케이 신문과 가디언지에서다. 주변의 여성과 성 소수자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그는 누군가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침묵할 수 없는 성격 때문에 기자가 됐다고 했다. 왜 한국에서 기자를 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세계 어디에 있었어도 비슷한 일을 했을 거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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