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하기도 하고, 온 김에 바로 살 수 있어 좋아요.”

회사원 황세정 씨는 서울지하철 7호선 상도역 메트로팜 앞에 설치된 자판기에서 샐러드 2통을 샀다. 한 달에 한 번, 동작구 상도동에 업무로 들를 때마다 샐러드를 사서 돌아간다. 모두 상도역에서 기른 채소로 만들었다. 메트로팜에서는 팜채소라고 부른다.

메트로팜은 상도역 2번 출구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다. 서울교통공사와 농업회사법인 팜에이트가 지하철 유휴공간을 활용해 만든 스마트팜 복합공간이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AI) 등의 정보통신기술을 농업에 접목했다. 온도조절 센서와 앱을 활용한 인도어 농업(indoor farming), 수직형 식물공장이 스마트팜의 대표적 사례다.

메트로팜은 2019년 5월 서울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을 시작으로 상도역 등 5개 역사에 설치됐다. 규모가 가장 큰 상도역에는 팜채소를 기르는 수직농장과 팜카페, 팜아카데미 체험공간이 있다. 수확한 채소는 바로 판매되거나 샐러드로 자판기와 매장에서 판매된다.

▲ 상도역 메트로팜 매장과 자판기
▲ 상도역 메트로팜 매장과 자판기

도시농업은 생산된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도시는 땅값이 비싸고 공간이 부족하다. 1976년 여의도 면적(제방 안쪽 기준·290㏊)의 23.3배(6776㏊)였던 서울의 경지면적은 2021년 619㏊로 줄었다.

실내 스마트팜은 이런 도시농업을 확장하는 셈이다. 밭을 일굴 부지를 찾아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역사 내 빈 공간, 아파트 지하상가의 공실이 농장이 된다.

실내 수직 스마트팜은 바깥 날씨와 무관하게 사계절 운영할 수 있다. 좁은 면적에서도 효율적인 재배가 가능하다.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손정익 명예교수(69)는 스마트팜이 “도심에서 식물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메트로팜은 대표적인 유휴공간 이용 사례다. 전통적인 농업에 사용되는 흙과 햇빛은 양액을 주입한 수경재배와 LED등으로 대체됐다. 재배실의 생육환경(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수소이온농도, 전기전도도 등)과 배양액 공급은 센서와 통합제어장치로 통제한다.

상도역 메트로팜에서는 70평 규모. 한 달에 약 500㎏의 샐러드 채소를 재배한다. 여기서 나온 채소는 상도역 팜카페에서 판매할 뿐 아니라 평택 본사로 옮겨져 가공된 후 온라인과 대형마트를 통해 판매된다.

여기서는 체험활동도 활발하다. 팜 아카데미 교육을 담당하는 남윤영 씨(29)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 등 단체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6월 16일 메트로팜의 팜아카데미에서 카이피라를 수확했다. 실내 수직농장에서 자란 잎채소는 일반 잎채소와 다를까. 남 씨는 “흙 속의 양분을 그대로 물속에 녹인 상태에 가까워 자연 상태와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6월 30일에는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아파트단지 상가를 찾았다. 아파트가 들어선 지 27년.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상점 가운데 꽃송이버섯 스마트팜이 있었다.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김종오 구로스마트팜협동조합 이사장(57)은 원래 이곳이 공실이었다고 말했다.

지하 공간의 단점은 버섯 재배에 오히려 유리하다. 지하는 습도가 높아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기 쉽지만, 곰팡이의 한 종류인 버섯은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김 이사장은 “싸고, 지하고, (버섯 재배) 조건이 딱 맞았다. 물을 많이 써야 하는데 수도가 들어와 있고 그런 조건이 맞아서 여기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자연광을 대체하기 위해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보통의 수직 농업과 달리 버섯 재배는 전기료 부담도 적었다. 그는 “전기요금과 관리비를 더해 10만 원 정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버섯을 키우는 온실 안에는 60㎝ 3단 선반 4개가 일렬로 늘어섰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작물을 키우기 어려운 문제는 단가 높은 꽃송이버섯 재배로 해결했다. 꽃송이버섯은 비싸게 팔리는 작물이지만 재배조건이 까다롭다. 자연산 꽃송이버섯은 ㎏당 10만~20만 원에 거래된다.

▲ 온실에서 꽃송이버섯을 재배할 예정이다.
▲ 온실에서 꽃송이버섯을 재배할 예정이다.

서울 강남구 역시 유휴공간을 스마트팜으로 탈바꿈하는 일에 나섰다. 세곡동 탄천 옆 유휴 하천부지에 ‘강남구 스마트팜’이 올해 3월 개장했다. 서울공항 옆이라 소음과 고도 제한의 문제가 있어 이용되지 않던 땅에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강남구 스마트팜은 지역주민의 체험과 교육을 위한 공간이다. 주 1회 지역 유치원과 성인의 견학 신청을 받는다. 강남구청 지역경제과 최성임 주무관은 신청을 통한 체험 외에도 하루 평균 10~15명의 관람객이 체험관을 찾는다고 말했다.

규모는 585㎡(약 177평)로 비닐하우스 두 동에서 잎채소와 방울토마토가 자란다. 입구 왼쪽의 선반에는 흙이, 그 위로 양액을 공급하는 긴 관이 있다. 오른쪽에는 아쿠아포닉스 재배 선반이 있다. 아쿠아포닉스는 물고기를 기르면서 배설물을 양분으로 작물을 기르는 친환경 농법이다. 관리인 김동하 씨(51)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생육 환경을 확인하고 조절한다.

▲ 어린이가 강남구 스마트팜에서 딸기 수확 체험을 하는 모습(출처=강남구)
▲ 어린이가 강남구 스마트팜에서 딸기 수확 체험을 하는 모습(출처=강남구)

여기서 기른 작물은 주민복지에 사용된다. 강남구는 4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잎채소 280팩을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강남구 푸드뱅크에 공급했다. 과채류는 어린이의 수확 체험에 사용된다. 상반기 22번의 체험행사에 213명이 찾아와 딸기를 땄다.

공공기관이 스마트팜을 운영하지 않고 민간 기업·사업체에 재정지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도시공사, 부산항만공사 등 9개 공공기관은 부산사회적경제지원금(BEF)을 통해 도심 내 유휴공간에 BEF 스마트팜 1~5호점을 개설했다.

협동조합 매일매일즐거워가 운영하는 BEF 스마트팜 1호점(레일팜)은 국내 최초의 도시철도 스마트팜 융합공간이다. 2호점(휴메트로팜)은 부산 지하철 역사 최초의 스마트팜이다. 두 곳 모두 수직농장에서 수경재배로 바질 등 허브류와 유럽 샐러드 채소를 재배한다.

황태연 매일매일즐거워 대표는 느린 학습자(경계선지능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2019년 스마트팜 사업을 시작했다. 철도·지하철 역사를 활용한 것도 느린 청년을 위해서다.

매일매일즐거워는 청년 4명을 고용했다. 황 대표는 “청년이 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직무를 개발하고 2025년까지 300명을 직간접 고용하는 게 목표”라면서 “앞으로도 도심 교통망에 사업장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상국립대 김현태 교수(생물산업기계공학과)는 “농업이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시민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면서 “수직농장은 토지의 공간적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지만 시공감각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도시농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팜이 지속 가능한 로컬 산업으로 거듭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시설·장비가 고가여서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 넓은 공간에 설치한 스마트팜과 비교하면 시설 가격 대비 효율이 적어 매출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 과다한 전력사용도 부담.

손 교수는 상업적 성공을 위해선 “100% 판로가 있어야 한다”며 “산지 직송 등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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