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없는 졸업’을 한 젊은이들에게

“언니, 진짜 잘 됐다. 정말 축하해요.” 올해 졸업을 한 선배와 통화를 했다.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해 전화로나마 축하 인사를 전하던 참이었다. 그 때 그는 자신의 취업 소식을 전했다. 3일전부터 한 잡지사 인턴기자로 일하게 됐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이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가운데, ‘취업 없는 졸업’을 할까봐 마음 졸이던 그에게 취업은 기쁨을 넘어 안도에 가까운 구원인 듯했다.

노량진 육교 위의 이태백 군단

신조어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은 더 이상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대졸 청년층의 실질 실업률은 21%선까지 육박하고 있다. 대학을 나온 20대 젊은이 5명 중 1명이 ‘백수’라는 얘기다. 실직 확률(취업 상태에서 직장을 잃을 확률)도 20대 초반이 가장 높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 2월에 발표한 ‘노동력 상태 이동과 연령별 고용구조’를 보면, 지난 2002년 국내 20세 이상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20~24세의 실직 확률은 6.41%로 타 연령층보다 2배 이상 높다. 이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6,86%에서 불과 0.45% 포인트 낮아진 데 그친 수치다. 한 여론조사에서 학생들이 졸업식장에서 가장 듣기 싫은 인사말로 ‘너 취직했니?’라는 말을 꼽았다고 하는데, 그들의 비애를 짐작할 만하다.

노량진 육교 위를 가보자. 7ㆍ9급 공무원시험, 교원임용시험 전문학원 등의 광고 전단지들이 즐비하다. 취업난을 뚫기 위해, 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공무원과 교사 직종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노량진 학원가는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한 임용시험 학원의 1~2월 인기 강좌(1200명)는 접수 3시간 만에 마감되면서 등록자 줄이 사무실이 있는 학원 건물 3층부터 건물 밖 200~300m까지 늘어섰다는 르포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 중에 한 녀석도 이번 겨울방학을 통째로 노량진에서 보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7시간씩 수업을 하는데, 한 교실에 300여명의 학생들이 수강하다 보니 그 열기에 따로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한때 유치원 선생님을 꿈꾸기도 했던 친구는 다음 학기 휴학을 해 8월에 있을 7급 공무원시험을 볼 참이라고 한다.  

 

백수, 그 무한한 가능성의 이름

자신을 ‘쓰면 작가 안 쓰면 백수’라고 소개하는 이외수는 그의 책 <날다 타조>에서 말한다. “그대는 백수다, 백수는 아름답다”라고. “젊은 날 아무 망설임도 없이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한다는 명분으로 취직이나 하고 보는 젊음은 싱그러울 수도 없고 아름다울 수도 없다. - 중략 - 그대의 직업은 그대의 인생 자체이면서 그대의 행복 자체가 되어야 한다. 둥지를 자주 바꾸는 새는 깃털이 많이 빠지고 깃털이 많이 빠지는 새는 먼 하늘을 날지 못한다.” 백수는 직업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직업을 선별하고 있는 사람이니 지금 그대는 충분히 심사숙고할 기회를 얻은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니 부디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한다.

은희경의 단편소설 <연미와 유미>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안경줄을 배꼽까지 내려뜨린 할아버지가 옆자리의 진주 목걸이를 한 할머니에게 나이를 묻는다. 예순둘이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감탄한다. 좋은 나이요. 나는 예순 일곱인데 내가 당신 나이라면 못할 게 없을 거요.”

‘취업 없는 졸업’을 한 젊은이들이여, 불러터진 시간에 괴로워하고 있는가? 혹시 사는 게 억울하고 초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일찍 좌절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말자. 책상과 명함이 없을 뿐, 백수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름이며 그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100일을 쑥과 마늘만 먹으면서도 변신과 비상을 꿈꾼 동굴 속 웅녀를 생각해 보자. 번데기가 캄캄한 고치 속에서 절대 고독을 견디고 밖으로 나오면 날개 가진 나방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그리고 희망을 간직하자. “숯 덩어리에게는 불덩어리가 될 희망이 있고, 흙덩어리에게는 돌덩어리가 될 희망이 있다”라는 작가 이외수의 말에 한 표 던질 수 있다면 3월의 햇살과 꽃은 사랑스러울 것이다.

 
 
정순화 기자 <likemari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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