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과학고등학교. 30대 물리 교사는 어느 날 꼬리뼈가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은 점차 심해졌다. 병원에서 육종암 판정을 받았다. 전체 암 가운데 1% 이하인 희소암. 진단을 받고 2년 후, 2020년 7월 29일 교사는 세상을 떠났다. 고(故) 서울 씨(사망 당시 37세) 얘기다.

육종암 판정을 받은 건 서 씨만이 아니었다. 동료 교사도 육종암 판정을 받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모두 3D 프린터를 수업 자료로 활용했다.

서 씨가 숨지고 만 1년째가 된 지난해 7월 말, YTN 보도국 기획탐사팀은 3D 프린터와 암의 연관성을 취재했다. 8년 차 김지환 기자의 주도로 기자 12명이 넉 달 동안 추가 피해자를 찾았고 실험을 했다.

이를 토대로 같은 해 12월 11~12일 오후 11시쯤 YTN 탐사보고서 ‘기록’에서 <3D 프린터와 암>을 2회에 걸쳐 보도했다. 제53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부문의 수상작이다.

▲ 한국기자상을 받은 기획탐사팀. 왼쪽부터 고한석 김웅래 곽영주 최광현 기자
▲ 한국기자상을 받은 기획탐사팀. 왼쪽부터 고한석 김웅래 곽영주 최광현 기자

김지환 기자는 “취재 당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례였다.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암이기 때문에 신빙성을 얻으려면 비슷한 사례가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서 씨의 아버지, 시민단체 ‘직업성 암 119’에 집중적으로 연락했다. 2~3주가 지나자 조금씩 회신이 왔다.

암과 3D 프린터의 연관성을 증명하려면 취재원의 범위를 좁혀야 했다. 김 기자는 “암에 관한 가족력이 없고, 3D 프린터 사용 전까지 건강했던 사람이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1개월 정도 걸려 확인한 피해 교사는 7명. 초등학교 교사부터 고등학교 교사까지 학교, 지역, 나이는 달랐다. 급성 백혈병에 걸린 학생 한 명도 있었다.

3D 프린터의 유해성 확인에도 주력했다. 기획탐사팀은 파햄 아지미(Parham Azimi) 하버드대 연구원과 알렉산드르 스테파니악(A.B. Stefaniak) 미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산업위생사를 온라인으로 인터뷰했다.

아지미 연구원은 의학 및 과학 전문 학술지 ‘엘스비어’에 3D 프린터의 유해성을 처음 알렸다. 스테파니악 위생사는 3D 프린터 사용과 급성 고혈압의 연관성을 밝혔다. 취재팀은 미국에 가서 이들을 인터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온라인으로 대화했다.

또 기획탐사팀은 수집된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실험을 계획했다. 3D 프린터가 작동할 때 배출되는 물질이 무엇인지, 사람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험은 대전대 환경공학과 김선태 교수팀과 지난해 10월 대전대 환경문제연구소에서 사흘간 했다. 관건은 교실 환경을 똑같이 만드는 일이었다.

김 기자는 “서 선생님이 쓰던 3D 프린터와 필라멘트는 유족이 가지고 있어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동료 선생님이 쓰던 프린터는 단종 돼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동일 제품을 가진 사람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같은 시기에 출시된 제품을 갖고 있던 전문가 도움을 받았다.

출력물 재료인 필라멘트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총판 등에 전화를 돌리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당시 통유리로 된 교실 환경과 최대한 유사한 실험 장소를 택했다. 교사들이 프린터를 사용하던 환경과 비슷하게 만들기까지 또 한 달이 걸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3D 프린터가 말썽을 피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장 나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대전대에 맡겨놨었는데 날마다 고장이 났어요. 프린터 전문가분이 번번이 저희를 도와줄 수가 없어서 제가 수리 방법을 배웠어요.” 김 기자의 말이다.

김 기자와 선배 기자 1명은 연구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대전대 인근 숙소에 머무르며 3D 프린터를 수시로 확인했다. 그러다 프린터가 고장 나면 그때마다 김 기자가 가서 직접 수리했다.

13번의 실패 끝에 실험 결과를 얻어냈다. 교사들이 쓰던 제품에서 발암물질은 물론 화학공단이나 소각장에서 나올만한 유해 물질까지 검출됐다.

기획탐사팀은 업계의 입장을 기사에 반영하고자 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거부감을 보였다. 3D 프린터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YTN의 보도가 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 기자는 “안전한 제품이 유통돼야 3D 프린터 업계도 발전한다”며 설득했다. 제조 과정이 불투명한 외국산 저가 제품이 유해성 검증 없이 수입되는 환경에서는 국내 업계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3D 업계 유명 개발자인 조셉 프루사(Josef Prusa)와 접촉도 시도했다. 3D 프린터의 대중화를 이끈 프루사가 건강하면 문제없는 거 아니냐는 누리꾼 지적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 인사팀에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김 기자는 포기하지 않고 SNS로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답이 바로 왔다. 프루사는 “학생들(선생님들) 일은 매우 유감”이라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재료가 쓰이는지, 방을 얼마나 잘 환기하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는 4차 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3D 프린터 활용 교육을 적극 지원했다. 관련 법제화도 일사천리였다. 2015년에 제정된 ‘3차원 프린팅 산업 진흥법’이 대표적이다.

품질 인증을 의무화하는 조항은 없었다.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었던 셈이다. 법이 생긴 지 5년이 넘은 지금까지 3D 프린터와 필라멘트의 인증기관과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정부가 3D 프린터 사용 지침을 작성한 건 2018년, 2020년 두 차례다. 하지만 교사에게 공개된 건 하나뿐이었다. 서 씨가 숨지고 두 달 후인 2020년 9월 정부가 배포한 ‘학교용 3D 프린팅 사용 매뉴얼’이다.

기획탐사팀은 문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2018년에 이미 3D 프린터 사용 지침을 작성했지만 배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김 기자는 교육청의 취재원을 통해 문서를 입수했다.

두 문서를 비교했더니 2020년 문서의 제목에 ‘안전’이라는 단어가 빠졌다는 걸 발견했다. 김 기자는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는 정작 공개하지 않았고, 서 씨의 죽음 이후에는 안전 관련 내용을 대폭 삭제한 지침서를 배포했다”고 지적했다.

전교조와 시민단체 ‘직업성 암 119’는 전국 초중고 교사 5200여 명이 서명한 공무상 재해 인정 촉구 탄원서를 2월 8일 인사혁신처에 제출했다. 직업성 암 119는 발암물질 노출로 인한 노동자의 피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일과건강, 전국 7개 권역 법률지원단체가 참여했다.

정부는 3월 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3D 프린팅 안전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학교에서의 3D 프린터 소재 조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피해자 역학조사와 관련 예산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은 빠졌다.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은 “대책이 나왔다는 건 정부가 (위험성을) 사실상 인정한 거나 다름없는 뜻”이라며 “3D 프린팅 교육에 따른 육종암 등을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교사와 학생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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