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성(性) 토론자들이 얘기하는 젠더인식

 

제20대 대선에서 언론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 성별 간 입장 차를 조명했다. ‘이대남’과 ‘이대녀’ 등 각종 젠더 관련 조어를 부각시키며, 젊은 세대의 남녀 갈등상황을 상당히 선정적으로 다뤘다. ‘2030 젠더와 대선’ 취재팀은 표면적인 갈등 양상을 같은 방식으로 묘사하기 보다 청년들의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젠더 시리즈를 기획했다.

앞서 올라간 1편에서는 시민의 소리 패널단에게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1편의 두 번째 기사에서는 기자단이 패널단의 토론 내용 중 사실과 다른 점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2편에서는 젠더가 제20대 대선에서 중요 변수로 작용했는지 설문조사를 이용해 파악했다.

선행 기사들을 통해 취재팀은 제대로 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젠더 이슈는 대선의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성별에 따라 과대 해석된 의견은 양쪽 진영의 정치 공방에 이용될 위험이 있었다.

3편에서는 젠더 갈등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만나서 하는 토론의 기회를 마련했다. 남성과 여성 토론자가 대면으로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젠더 갈등의 해결책과 언론 보도의 방향에 대해 얘기했다.

이번 토론은 지난 5월 7일 오후 4시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별관 1층과 2층에서 진행됐다. 토론은 2부로 나뉘었다. 1부는 여성 패널단을 1층, 남성 패널단을 2층에 배치하고 같은 성별의 기자단이 참여해 토론을 유도했다. 2부는 2층에서 패널단과 기자단이 모두 모여 함께 대화를 나눴다.

토론 1부에서 성별을 분리한 이유는 진솔한 얘기를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패널단은 주제의 민감성을 이유로 토론에서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표출될까 우려했다. 젠더 담론이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토론에 참여한 패널단은 총 6명으로 남성 3명, 여성 3명이었다. 남성은 대학원생 김세진 씨(35), 명재하 씨(23), 이경구 씨(25), 여성은 대학원생 강다은 씨(27), 직장인 안가영 씨(25), 대학생 최선 씨(25)가 참여했다. 토론 참여 나흘 전, 취재팀은 토론 참여자들에게 ‘2030 젠더와 대선’ 팀이 작성했던 기사 3편과 사전 질문지를 제공했다. 

1부 토론은 오후 4시에 시작해 40분간 진행됐고, 20분 휴식 후 오후 5시부터 6시 30분까지 2부 토론이 이어졌다.

이 기사에서는 패널단의 1부 토론 내용 중 젠더 일반론을 중점으로 다룬다. 패널단의 주변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 개인이 느끼는 감정 등을 위주로 젠더 갈등을 바라보는 2030 청년의 목소리를 담았다.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별관 2층에서 남성 패널단이 토론하고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별관 2층에서 남성 패널단이 토론하고 있다.

남성 패널단 대화

토론에 참여한 패널단은 페미니즘이 사회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개인의 생각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움직임도 느꼈다. 이경구 씨는 페미니즘이 조직 문화와 사회 변혁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리더로 활약하는 여성상이 늘어나는 등 전반적인 가치 창출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김세진 씨는 일상생활에서 단어를 선택할 때 신중을 기한다. 그는 예시로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표현을 언급했다. 이제는 금기시되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요즘 이런 말을 해도 될지 고민한다며 “자기검열적 측면에서도 서로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일상에 영향을 끼친 페미니즘은 생활 속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한다. 명재하 씨는 평소 페미니즘을 주제로 주변인들과 자주 얘기한다. 민감한 주제인데도 대화가 원활한 이유는 주변인들이 소통과 설득이 가능한 범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과 편하게 페미니즘을 주제로 얘기하지는 못한다. 가치관이 비슷할지언정 자기 생각을 선뜻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명 씨는 사회적 낙인을 우려했다. 솔직한 생각을 말했을 때, 있는 그대로 수용될지 알 수 없었다. “‘반페미’나 ‘페미’로 규정될까봐 걱정이다.” 명 씨의 말이다. 남고 출신인 명 씨와 이경구 씨는 강경한 입장을 가진 동창을 만날 때 젠더 이야기가 나오면 화제를 돌리거나 아예 관련 언급을 피한다.

여성 패널단 대화

이처럼 페미니즘은 쉽게 꺼낼 수 없는 단어기도 하다.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은 안가영 씨에게도 마찬가지다. 안 씨는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페미니즘은 사람들이 갈등을 빚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단어다.

패널단은 페미니즘의 영향력을 인식하면서도, 이 주제를 논의할 공론장은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가, 정책 토론장, 온라인 커뮤니티 등. 모두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다른 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은 공격적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갈수록 소통이 어려워진다고 느꼈다. 취재팀은 우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각자 젠더 문제로 겪은 차별이나 갈등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

강다은 씨는 아르바이트 시절을 떠올렸다. 남자 직원이 여자 직원과 손님에게 성희롱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다. 직원에 이어 매장 책임자도 가세했다. 책임자의 제재가 없자 매장에서 자연스럽게 성희롱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안가영 씨는 고심 끝에 직장 내 고충을 털어놨다. 같은 일을 하는 직장인이라도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각기 다른 질문을 받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에겐 일에 관련된 질문보다 “남친 있냐”, “다이어트 하냐” 같은 사적인 질문을 하는 걸 본 적 있어요. 가끔 같은 팀원이 아니라 그냥 여성에 초점을 두고 사람을 보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죠.”

젠더 인식의 민감성

김세진 씨는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이 변했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꿨다. 과거 김 씨가 여성은 지켜야 할 대상이라 하자, 여성을 약자로 보는 것이냐며 공격적인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말을 듣던 이경구 씨는 “이런 얘기 하면 욕먹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또 욕먹는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남자가 돼서”라는 말도 들은 적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별관 1층에서 여성 패널단이 토론하고 있다.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별관 1층에서 여성 패널단이 토론하고 있다.

젠더 요소로 인한 갈등이나 차별 경험은 친밀한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났다. 연애 상대나 친구, 가족 등 주변에서도 젠더는 종종 화두에 오르는 문제다. 정치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최선 씨는 “난 네가 여대라서 페미니스트 인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다. 최 씨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의구심이 들었다. 친구가 한 말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선 긋기용이라고 생각했다.

김세진 씨는 페미니스트와 연애한 경험이 있다. 그는 연애 초반 오해로 인해 소통의 간극을 느꼈다. 이때 김 씨는 보편적 차원에서 서로 동등한 존재임을 인지하고 존중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시도했다. 이후 김 씨는 왜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안가영 씨는 가족과 갈등을 빚은 적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불씨였다. 가족이라 다툼은 커지지 않았지만, 피로도는 높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겪은 여러 다툼은 안 씨에게 걱정으로 다가왔다. 주변인들과 젠더 관련 이야기를 할 때 싸우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게 된 것이다. 안 씨는 대화 자체를 굳이 꺼내지 않기 시작했다.

이렇듯 패널단은 오프라인에서 젠더를 주제로 소통하고, 갈등을 빚은 경험이 있었다. 반면 분란이 싫어 일상생활에서 젠더 언급 자체를 꺼리기도 했다. 이런 패널단의 경험은 온라인상에서 나타나는 젠더 갈등 양상과는 달랐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과열된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더 자극적인 온라인 상황

패널단 전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젠더 갈등 모습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강다은 씨가 온라인에서만 나타나는 갈등이 있다고 운을 뗐다. 안가영씨는 강 씨의 말에 동의하며 익명성을 거론했다. 온라인 공간은 익명이 보장되는 만큼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댓글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안 씨는 온라인에서 댓글을 남긴 적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포털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댓글을 삭제했다.

김세진 씨도 온라인에서는 모두가 혐오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생활과는 많이 다른 온라인 상황을 보고 젠더 갈등에 대한 괴리감도 커졌다. 그렇지만 김 씨는 온라인에서의 갈등 양상이 현실 인식에 일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 볼 때 커뮤니티 하나, 안 하나 이런 생각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이경구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반적 특성 때문에 현실과 차이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문제가 극단적인 의견으로 과대대표 된다는 것이다. 이에 명재하 씨는 온라인 젠더 갈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과 남성의 집단을 하나의 군상으로 쉽게 정형화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별을 나눈 1부 토론에서 패널단은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했다. 남성과 여성이 젠더 이슈를 어떻게 느끼는지 각자 진솔한 의견을 낼 수 있는 공론장이었다. 통계가 중심인 여론조사로는 파악할 수 없던 목소리를 들었다. 취재팀은 패널단에게 1부 내용을 바탕으로 2부 토론을 진행한다고 고지했다.

패널단과 기자단이 전부 모여 진행하는 2부 토론에서는 젠더 일반론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함께 다뤘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경청한 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어지는 3-2편에서 2부 토론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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