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할 때 그냥 찍었어요. 정보가 없는데 그런다고 투표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연구원은 지난 지방선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점자 선거공보물을 통해 후보자 정보를 접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점자 공보물로 모든 후보의 정보를 접할 수 없었다.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은 대통령, 지역구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도 교육감 선거 후보자의 점자 공보물 제출을 필수로 규정한다. 광역의원(시·도)과 기초의원(시·군·구)에게는 필수사항이 아니다. 제출하지 않는 후보자가 많은 이유다. 

서울·경기의 광역의원 후보 500명(서울 212명·경기도 288명)과 기초의원 후보 1198명(서울 538명·경기도 660명) 중 점자 공보물을 제출한 후보는 얼마나 될까? 

서울·경기의 67개 지방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점자 공보물을 제출한 후보 인원을 확인했다. 서울시 강서구·도봉구·마포구·성북구 선관위는 답변하지 않았다. 포천시 선관위 담당자와는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강동구는 합쳐서 10명이라고만 밝혔다. 

정보를 밝히지 않은 지역과 강동구를 제외한 광역의원 후보(448명) 중에서 176명(39.3%)이 점자 공보물을 제출했다. 기초의원 후보(1066명) 중에서는 269명(25.2%)이 냈다. 지방의원 후보 3명 중 1명 정도가 점자 공보물을 제출한 셈이다. 

한 명도 제출하지 않은 지역구가 있다. 성남시 중원구가 지역구인 경기도의원 성남시 제3·4선거구와 성남시의원 성남시 마·바·사선거구에서는 누구도 제출하지 않았다. 

▲ 서울 지방의원 후보의 점자 공보물 제출현황 
▲ 서울 지방의원 후보의 점자 공보물 제출현황 
▲ 경기도 지방의원 후보의 점자 공보물 제출현황 
▲ 경기도 지방의원 후보의 점자 공보물 제출현황 

점자 공보물의 제작비는 득표율과 관계없이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지원한다. 경기 고양시의원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운남 후보는 점자 공보물을 제출하지 않은 이유로 빠듯한 일정을 꼽았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구는 선거 6개월 전인 12월 1일까지 결정돼야 한다. 이번에는 투표일을 47일 앞둔 4월 15일에 끝났다. 

김운남 후보는 “선거구 획정과 공천이 늦어지니까 공보물이 늦어지고 인쇄소 잡기도 힘들었다”면서도 “제일 중요한 건 본인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현채 시의원 후보는 “아마도 홍보 부족으로 후보자가 잘 알지 못하는 데 기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점자 공보물이 제 역할을 못할 때도 있다. 점자 공보물은 후보자가 제출한 면수의 2배까지 가능하지만 점자 부피가 커서 모두 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창현 소장은 보도자료를 내기 위해 묵자(비시각장애인의 글자)와 점자 공보물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누락된 공보물이 다수 발견됐다고 말했다. 

반대로 내용이 적으면 빈 페이지에 무작위로 점자를 채워 넣기도 한다. 이 소장은 보다 꼼꼼한 모니터링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점자 공보물이 면수를 늘려 돈을 벌려는 일부 제작업체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은 점자 공보물을 음성 재생이 가능한 QR코드로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QR코드와 점자 공보물은 서로 대체하기 힘들다. 

김 연구원은 “음성변환용 인쇄물 접근성 바코드는 점자를 모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부수적 요소여야지, 동등한 것처럼 다뤄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점자 없이 매끄러운 종이에 그려진 QR코드는 위치를 가늠할 수 없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자형 선거공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디지털 저장매체를 제공할 수는 있다. 스크린 리더로 듣도록 텍스트나 음성 파일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USB에서는 파일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는 후보의 공약과 공보물이 PDF 파일로 올라와 있다. 선관위는 문자인식이 가능한 PDF 파일을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시각장애인이 스크린 리더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제 규정이 아니어서 실효성이 적다. 

취재팀이 몇 곳을 골라 PDF 파일을 확인했다. 서울 중구에서 출마한 구의원 후보의 공보물 PDF 파일 9건(무투표 지역구 제외) 중에서 2건은 문자인식이 불가능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해 10월 발의했다. 점자 선거공보물 제출을 필수로 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역시 비슷한 법안을 5월에 발의했다. 

▣ 안경준 기자가 이 기사를 같이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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