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현=시민을 붙잡고 인터뷰를 요청한 일이 100번 남짓 됐을까. 거절에 익숙해졌다. 중년 남성은 대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손사래를 치고 도망갔다. “나는 대선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야.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도 없어.” 미화원은 이렇게 말하며 떠났다. 어느 할아버지는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취재를 거절한 이유는 다양했다. 그만큼 취재에 응한 이들의 이야기도 다채로웠다. 숫자가 아니라 시민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기획의 의미가 와닿았다. 마지막으로 취재했던 날, 60대 취재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라디오로 뉴스를 듣던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국민 눈과 귀를 막아놓으면 안 돼요. 좋은 기자가 됐으면 좋겠네요.”

이도흔=1월에 시작한 취재는 벚꽃이 만개한 4월까지 계속됐다. 핫팩을 패딩 주머니에 챙겨 취재 다녔던 옷차림이 얇은 재킷으로 변했다. 경계하는 시민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노하우가 생겼다. 추운 겨울 고생한다며 라면을 끓여주던 시장 상인도 있었고, 언론을 못 믿겠다며 탐탁지 않게 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민은 정치인에게 실망하고 체념하다가도 언론에 응원과 기대를 보였다.

이미쁨=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를 선거일에 찾았다.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이곳에 가려고 경기 부천시의 집에서 택시를 탔다. 2만 4700원이 나왔다. 취업준비생 처지에 적지 않은 비용이었다. 혹여나 늦잠을 자서 취재를 못할까 싶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오전 7시에는 청와대 춘추관 앞을 지나다가 경호원에게 검문을 받았다. 수첩을 들고 청와대 주변을 도는 젊은 여성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이날 13시간 동안 종로에 있었다. 2만 4235보를 걸었다. 몸이 녹초가 됐다. 힘들었다. 힘들면 안 하는 게 맞는데, 너무 재미가 있었다.

이수연=시작은 좋았다. 첫 번째로 만난 주민부터 실명 인터뷰라니. 잘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들뜬 마음도 잠시, “그럴(인터뷰할) 시간 없어요”라는 말이 계속 돌아왔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의 식당에 들어갔을 때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각각 카운터와 주방에 있었다. 용산구에 사냐고 물었더니 남성은 그렇다, 여성은 아니라고 했다. 취재팀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용산구 후암동에서 만난 60대 남성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며 취재팀을 반겼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생수도 건넸다. 상처와 위로를 동시에 받았다.

이에스더=서울 용산구를 갔던 날은 이른 더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삼각지역에서 출발해 용문동 원효로1‧2동 청파동 효창동을 돌았다. 삼각지역 주변에는 높게 솟은 주상복합 빌딩과 도시가스조차 연결되지 않은 곳이 함께 있다. 용산구에 살았지만 이런 낙후 지역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날 만난 40~70대 주민 대부분은 용산이 “개발되지 못한 곳”이라고 했다. 가려진 곳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이예림=경기 안양시 지하상가에서 환경미화원을 만났다. 30여 분간 상가 한 바퀴를 돌던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자기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지 물었다. 취재가 부족해 기사가 나갈 수 없다고 전했다. 그는 아쉬운 목소리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취재하고 기사를 썼으면 그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썼던 기사를 다시 한번 봤다. 낯선 이에게 진심을 전한 취재원 이야기가 파일 폴더에 있었다. 나의 실수로 취재원의 이야기가 사장(死藏)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기사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정민=현장에서는 날 것의 목소리가 들렸다. 극단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들에게 국회에서 벌어지는 정치인의 싸움, 갈등보다 중요한 일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시민이 전부였던 대선 보도 경험은 현직에서 기사를 쓸 나 그리고 YJS 동료들이 한국의 정치보도 지평을 바꾸도록 하는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희연=할머니는 취재요청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윤석열 당선인 이름이 나오자 표정을 찌푸렸다. 공인중개사는 지지 후보를 물었더니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할아버지는 공원에 운동하러 온 사람을 귀찮게 한다며 면박을 줬다.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서 마음을 열고 이야기했던 시민이 더 고마웠다. 구로구 오류시장의 상인은 이틀간의 취재 중에서 유일하게 앉아서 이야기하자며 의자를 내줬다. 당선인에 대해 이야기하니 그의 삶도 듣게 됐다.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달랐지만 그런 만남이 즐거웠다.

임유나=대선을 맞아 쏟아지는 통계와 보도에 담지 못한 시민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먼저 게재된 기사를 보니 중년 여성 취재원이 적었다. 첫 취재로 나간 경기 안양시 안양4동에서 40~50대 여성 5명을 만났다. 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어떤 이유로 후보를 지지하는지 들었다. 이들을 통해 유권자가 바라는 육아, 교육 정책을 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취재 장소였던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도 최대한 많은 시민을 만나려 노력했다. 이틀 동안 12시간. 기자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발로 배웠다.

장민주=서울 구로구 오류1동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기자를 평상에 앉게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참 대선 이야기를 하다가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하고 다니면서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기자가 되고 싶고,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취재가 끝나자 할아버지는 글을 썼다. ‘입춘대길(立春大吉)’과 여러 고사성어. 올해는 꼭 길한 일이 생길 거라고, 멋진 기자가 되어달라며 종이를 건넸다. 아직 서랍 안에 있다. 하루가 유독 힘들 때면 꺼내 본다. 기자에게 취재는 이야기를 듣는 행위다. 더 나아가 취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다. 당연한 사실을 몸소 깨닫게 해준 수많은 취재원에게 감사를 전한다.

▲ 취재원이 써서 건넨 글귀
▲ 취재원이 써서 건넨 글귀

장호림=다가가서 말을 걸 때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취재원은 “왜 내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욕을 했다. 이상한 종교단체에서 나온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재미있고 소중했다. 거절당하고 욕을 많이 먹었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정유나=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1동 공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시민을 만났다. 정치와 가정사를 기자에게 들려줬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서울 구로 오류시장에서 만난 상인은 기자가 주민과 자주 대화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잘 듣지 않으니 기자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오류동역 광장에서 장애인에게 말을 걸었다. 장애인 콜택시가 적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선을 취재하는 동안 수십 명을 만났다. 역설적이지만 기사를 위해 취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사 작성이나 취재원 숫자에 매몰되지 않고 대화에 집중했다. 처음 보는 기자에게 몇 시간씩 속마음을 얘기해준 취재원을 진심으로 대했다. 취재원이 전한 감사, 조언, 위로에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겠다.

주원규=한겨울의 시장. 발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돌아다녔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을씨년스러웠던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무너져 내리던 시장에서는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어떤 상인과 1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 결국 실명은 받지 못했다.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들었다. 낯선 동네를 누빈 6개월, 내 곁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서투르고 부족했지만 함께해서 용기를 얻었다.

최현빈=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1동에서 취재할 때 일이다. 편의점 직원은 내가 신흥종교 소속이라고 의심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집에 돌아왔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요즘 너 OOO, 이런 데 다니냐?” 공부한다고 서울에 자취방을 얻어줬더니, 수원에 갑자기 가서는 2주 동안 뭘 하고 다니는지 모르니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고 했다. 민감할 수 있는 정치 문제에 관해 묻고, 실명과 연락처를 요구하다니. 나 같아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취재원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래서 소중하다.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시장에서, 편의점에서, 주택가에서, 길거리에서, 투표소에서.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바쁜 시간 내 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저 정말 OOO 아니에요!”

황민주=인터뷰를 계속 거절당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느꼈다. 어떤 날에는 정말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때마다 경기 수원에서 만난 우체부의 말을 기억했다. 그는 추위에 떨던 우리에게 간식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힘들죠? 먹으면서 해요. 어려운 세상에서 청년들이 참 열심히 사네요. 꼭 원하는 기자가 되세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연대, 온정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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