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수=당선인의 동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법조단지와 아크로비스타에서 윤석열 당선인은 자랑스러운 선배였고 친근한 주민이었다. 취재 중에 당선인의 이웃을 만났다. 60세 여성. 윤 당선인 자택 맞은편에 산다. 자랑할 게 있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나 진짜 이웃이라니깐.” 당선인의 아침 출근길 사진을 보여줬다. 윤 당선인의 인상이 어땠냐고 물었다. “무릎 나온 바지 입고 다니는 ‘주민 1’이지 뭐.” 취임 이후 한달 가량 자택에서 출퇴근한다는 소식에 딱 잘라 말했다. “전혀 안 불편해요, 단 하나도. 오히려 경호팀이 있어서 치안이 좋아진 느낌이라니깐. 바깥사람이 더 호들갑들이야. 여기 사는 우리가 괜찮다는데.” 그는 윤 당선인을 지지했다. 이유를 10분간 설명했다. 그의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지만 실명 게재를 설득하지 못했다. “아크로비스타 B동 사는 60세 전업주부라고 하면 안 될까. 요즘 세상이 무서워서 미안해요.” 신변 문제라니. 아쉽지만, 그를 보냈다. 진짜 이웃의 이야기를 이렇게나마 전한다. 

고유찬=일인일우주(一人一宇宙). 한 사람 한 사람 각자는 하나의 우주라는 뜻이다. 대통령이든 경비원이든 다르지 않다. 낯선 곳에 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우주와 맞닥뜨렸다. 그러면서 취재원이 깊은 우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우물물을 길어내는 두레박과 같았다. 몇십 분 사이의 인터뷰를 통해 우물물을 길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값졌다. 자신의 우주를 보여주는 시민의 목소리가.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매번 아쉬웠다. 이들의 목소리를 모두 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취재원 각자의 정수(essence)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개성 있고 맛깔 나는 인용문은 무엇일지. 정식 기자가 돼도 이런 고민은 끝나지 않을 거다. 

김수현=서울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경비실에 들어갔다. 60대 후반인 경비원은 윤 당선인과 아파트 부자에 대한 불만을 20분 동안 쉬지 않고 말했다. 자기가 집 한 칸 없는 건 문재인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여기 사람 탓이라고 했다. 핸드폰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떠올랐다. “제가 나중에 기억이 안 날 수 있어서, 혹시 녹음 좀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경비원은 “내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라서 이미 녹음한 거 다 안다”며 핸드폰을 뺏어가 녹음 목록을 뒤졌다. 핸드폰을 돌려주며 그는 “이 아파트 부자들은 앞에선 웃고 뒤에선 녹음했다고 신고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무엇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을까.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 집값, 여기 부자들이란 단어가 머리에 맴돌았다. 자기가 사는 게 팍팍하면 분노를 돌릴 상대가 생긴다는 말이 떠올랐다. 결국 내 집 한 칸이 있으면 되는 문제였다. 윤 당선인의 과제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남동연=누구는 “우리 아들이 몇 살인데, 며느리 할래?”라고 물었다. 누구는 “혹시 페미는 아니시죠?”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어디 가서 이대 다닌다고 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했다. 말로 들어 아는 것과 현실에 부딪혀 보는 건 매우 달랐다. 

민경연=처음엔 정치적 의견을 묻는다고 생각했다. 답변은 그보다 풍성했다. 정치적 의견과 함께 그들의 삶이 다가왔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생선가게 사장은 문을 두드리자 춥다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가게 곳곳에 남은 오래된 흔적을 눈에 담았다. 인터뷰하는 내내 가게 유리창 밖에서 인사를 건네는 이웃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말은 자주 끊겼지만 그게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가 끝날쯤 그는 자신의 딸과 가게를 주인공으로 구로지역 사회적 기업이 그린 그림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인터넷에서 책 제목을 검색했다. 표지에 그려진 2018년의 가게와 지금의 가게를 머릿속으로 비교했다. 그가 살아온 삶 속 공간의 변화를 느꼈다. 그곳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삶이 있었다. 앞으로도 내가 몰랐던 삶을 피부로 느끼고 싶다. 

배지현=유리 가게 아저씨는 끝내 실명 공개를 거부했다. 정치 얘기는 민감해서 미안하다며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영하의 날씨, 종이컵은 따끈했다. 아랫집 미용실 사장 역시 정치 얘기는 안 한다며 문을 닫았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 취재 첫날이었다. 다시 갔을 때 미용실 사장은 날 반겼다. 어제 덜덜 떨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고. 따뜻한 둥굴레차를 내게 건넸다. 시민단체 사무실과 생선가게에서도, 따뜻한 차 한 잔을 받았다. 야쿠르트 매니저와의 인터뷰가 끝나니 왼손에는 야쿠르트 봉지가, 오른손에는 헬리코박터 윌이 있었다. 찬 바람이 부는 길거리를 수없이 돌아다닌 데이비드 브로더가 받았던 찻잔이 이렇게 따뜻했을까. 정치 얘기의 끝에 내 손에 쥐어진 것의 의미를 곱씹었다. 민주주의라는 건 결국 시민의 뜻이다. 이토록 다양하고, 목소리 내기 힘든 이들의 뜻을 담는 기사, 남의 얘기가 아닌 정치 기사를 쓰고 싶다. 

▲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니까 일부 취재원들은 물이나 간식을 건네며 취재팀을 격려했다.  
▲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니까 일부 취재원들은 물이나 간식을 건네며 취재팀을 격려했다.  

서정윤=길거리 취재는 쉽지 않았다. 말을 걸면 위아래로 쳐다봤다. 손을 내젓기도 했다. 그래도 진심은 통했다. 여론조사에 담지 못한 유권자 생각을 들으러 왔다니까 입을 열었다.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만난 59세 남성은 기자가 인터뷰하는 걸 보고 “뭐 하는 거냐”며 먼저 와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40분 동안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에 대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집무실 이전도, 시민사회수석실 기능의 확대도 소통을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쓰는 일이다. 1명이라도 더 만나고 1명의 이야기라도 더 듣는 부지런한 기자가 되겠다. 혹한의 날씨 속에서 반갑게 맞아주고 입을 열어준 취재원에게 감사하다. 

서지윤=누가 정치 얘기를 하려고 할까.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음의 여유가 가장 없는 월요일 출근 시간, 윤석열 당선인에 대해 물어야 한다니. 조심스러웠다. 손사래 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녹음 동의를 얻기 전에 의견을 쏟아내는 시민도 있었다. 정신없이 받아 적었다. 얘기하고 싶었구나. 할 말이 많구나. 극단적이라고 여겨지는 의견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구나. 정치권이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싶었다. 나보다 50년 가까이 더 살았다는 취재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을 나라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같이 청년의 삶을 잘 챙겨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20분 동안 나이 어린 기자에게 꼬박 존댓말을 썼다. 동의할 수 없는 얘기에는 귀를 닫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손민익=“엄마가 늘 말했는데,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대요. 열어서 꺼내기 전까지 무엇을 가질지 알 수 없으니까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다. 취재원을 만날 때마다 초콜릿 상자를 여는 느낌이었다. “제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데 어떤 후보가 싫어서 그 이유만으로 그 반대 라이벌을 찍는다고 하면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취재원이 이렇게 말하면서 사표론을 비판했다. 오히려 효율성이란 이유로 민의가 반영되지 않아서 왜곡이라고 말이다. 1번과 2번이란 양자택일의 현실에서 국민이 이 발언을 투표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들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죄책감 없이 투표하지는 않았을까. 

안경준=취재를 시작했을 때는 의구심이 들었다. 명함 없이 수첩만 들고 다니는 기자에게 민감한 정치 이야기를 실명으로 할까. 하지만 시민들은 입을 열었다. 취재 의도를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정직한 보도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2동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아이를 업고 땀 흘리며 언덕을 오르면서도 “정말로 정직하게 취재할 거죠?”라며 응했다. 경기 고양의 일산 마두공원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어렵고 큰일을 한다고 격려했다. 정직한 보도를 원하듯 대선을 향한 시민의 마음도 비슷했다. 지지하는 후보는 달라도 정직하고 시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길 원했다. 포장마차에서 의견이 갈려 언성이 높아지면서도 가게 주인이 “누구든 일 잘하고 깨끗하면 그만이지 뭐”라고 하자 손님들이 공감하며 상대가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을 말하기도 했다. 좋은 기자가 되라던 시민의 목소리를 마음에 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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