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오브서울 <용산팀>은 4월 17일 서울 용산구의 용산동2가, 후암동, 이태원 1‧2동에서 주민 20명을 만났다. 이 중에서 7명이 실명 취재에 동의했다. 인터뷰에 응한 주민은 40~80대였다. 20~30대는 실명을 밝히는데 응하지 않았다.

이동숙 씨(53)는 용산동2가의 해방교회 앞에서 분식집을 한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해 묻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반대한다고 했다. 집무실이 들어설 국방부 청사 부근을 잘 안다. 수도권 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 인근에 살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하는 건 교통이다. 이 씨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다. 4월 초에는 병원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가 마포로 이어지는 고가도로에서 20분 가까이 있었다. 지금도 자주 막히는데 집무실 이전으로 교통 체증이 심해질까 걱정이다.

이 씨는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 “제 주위에는 그분(윤석열)을 뽑았다는 분이 아무도 없거든요.” 그래서 이번 선거를 더 아쉬워한다. 국민통합을 위해 윤 당선인이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 가게로부터 3분 거리의 인테리어 부자재 매장. 문을 열었더니 박산옥 씨(75)가 몸을 일으켰다. 일요일처럼 손님이 없는 날이면 종일 텔레비전을 본다. 36년째 용산구에 산다며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준다고 하니까 찬성하죠.”

박 씨는 윤 당선인이 정직해 보여서 표를 줬다. 검찰총장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기자와 소통하는 방식도 좋게 본다. 반면 이재명 후보는 말을 자꾸 바꿔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사태에서 태도에도 실망했다.

▲ 해방촌 전경
▲ 해방촌 전경

홍성팔 씨(79)는 신흥로7길 언덕의 주택 앞에서 세차 중이었다. 집무실 이전에 관해 묻자 “상관없다”고 말했다. 용산공원이나 교통, 부동산값에 미칠 영향에 대해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왔다. 대선에서 자신이 뽑은 사람인 만큼 윤 당선인이 원하는 대로 하길 바란다.

주택가를 지나자 다시 상가였다. 책 대여점에 들어갔다. 만화책이 가득했다. 주인 임계근 씨(88)는 이 가게를 20년째 운영한다. 국민의힘 당원이다. 지인이 요청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줬더니, 당비로 매달 3000원씩 빠진다고 했다. 어쩌다 당원이 된 셈. 탈퇴할 생각은 없다.

윤 당선인을 지지하지만 앞으로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후보들이 처음에는 국민이 원하는 일을 한다고 밝히고도, 당선되면 말 바꾸고 안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왼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얼굴 반을 싹 바꾼다”고 했다.

▲ 임계근 씨가 이야기하는 모습
▲ 임계근 씨가 이야기하는 모습

후암동에서 철물점을 하는 김국한 씨(68)는 집무실 이전에 대해 시기가 문제라고 했다. “여기 오나 저기 오나가 중요한 게 아녜요. 준비도 안 된 상태로 급하게 오는 게 문제죠.”

그는 윤석열 당선인을 ‘독불장군’에 비유했다. 집무실 이전에 관해 소통 없이 추진한다고 생각한다.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국민의힘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느낌”이라고 했다.

차기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없다고 했다. 개인이 바란다고 해서 바라는 대로 실현되는 게 없었다고 본다. “(차기 정부가) 흐름상 뭔가 잘못 가는 느낌이지만, 결과적으로 잘하면 되는 일”이라며 컴퓨터 마우스를 만졌다.

철물점에서 나와 갓길을 10분 정도 걷다가 박지헌 씨(67)를 만났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후암동에서 살았다. 생수통을 건네며 취재팀을 반겼다.

“투표요? 안 했어요. 하도 속이 상해서.” 박 씨는 고개를 두어 번 가로저었다.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코로나 19 의심 증상이 생겨 투표를 포기했다. 집무실 이전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해방촌 중심가인 신흥로를 지나 경리단길에 도착했다. 한산했다. 오후 5시 반, 경리단길 초입의 식당에서 최상민 씨(42)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정치에 회의적이다. 더 똑똑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이재명 후보를 찍었지만, 누가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본인이 발표한 공약을 잘 이행하기만 하면 돼요.” 취임 전인만큼 당선인을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취재팀은 4월 18일 오전 9시, 한남동 대사관로에 갔다. 김재현 씨(31)는 혼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카페는 화분으로 실내를 장식했다. 주문을 처리하고 잠시 쉬길래 말을 걸었다.

그는 매일 자동차로 출근한다. 집무실 이전으로 교통 체증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묻자 어깨를 으쓱했다. “워낙에 다 막히는 지역이라 큰 차이는 없을 거예요.” 카페 손님과 주변 상인도 비슷한 의견이라고 한다. 랜드 마크가 생긴다는 기대가 더 크다.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 “사실 좋아서 뽑은 건 아니고 차악이라고 생각한 거죠.” 추진력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조언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새 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하나다. 결혼 적령기라서 내 집 마련이 절실하다. 윤 당선인이 LTV 완화를 비롯해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한다.

정훈기 씨(74)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근처에서 양말을 판다. 트럭 짐칸에 양말이 가득했다. 지금은 경기 하남시에 살지만,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용산구민이었다. 53년을 용산에서 살아 고향으로 여긴다.

대선에서 정 씨는 이재명 후표에게 표를 줬다. “검사로만 쭉 살았잖아요.” 윤 당선인이 정치 초보인 점을 걱정한다. 젊을 때는 변화가 좋다고 생각해 선거마다 다른 정당을 지지했다. 60대가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선거철마다 집권 정당이 바뀌고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졌다.

한남3구역이라 불리는 한남파출소 일대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김성규 씨(56)는 부동산 중개업소를 남편과 함께 20년째 운영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취재팀에게 물을 건네면서 말했다. “곧 손님이 오는데, 준비하면서 대답해도 괜찮죠?”

김 씨는 사무실 한쪽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용산구 일대를 보여주는 지도였다. “여기도 곧 좋아질 거예요.” 지도 곳곳을 가리키며 용산구 일대의 개발을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데 김 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외국인 손님이 방문할 예정인 듯했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시간과 장소를 안내했다. 사진을 촬영해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예쁘게 찍어주셔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 김성규 씨(왼쪽)가 용산구 재개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김성규 씨(왼쪽)가 용산구 재개발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보광동으로 향했다. 경사진 언덕 위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왼쪽으로 한강이 넓게 펼쳐졌다. 기사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은 영업준비 중이라 바쁘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식당을 나오는 취재팀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뭐 하는 중이에요?” 선글라스와 베레모, 오른쪽 손가락의 커다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김상현 씨(48). 경리단길에서 재즈바를 운영한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가족과 식사하려던 참이었다. “어련히 알아서들 결정했겠어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김 씨가 대답했다. “청와대를 옮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거 결정하면서 얼마나 고심했겠어요.” 정치인과 국민의 생각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씨가 계속 이야기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과 서로 다른 식당을 찾아간 듯했다. 그는 자리를 옮기며 취재진에게 번호를 줬다. “우리 재즈바 한번 놀러 와요. 멤버십으로 운영하는데 특별히 초대해줄게!”

길을 따라 걸으니 보광재래시장이 나왔다. 도넛과 단팥빵, 꽈배기를 진열한 빵집 앞에서 멈췄다. 주인 홍정애 씨(59)와 이정숙 씨(73)가 반갑게 맞았다. “취재하러 나왔다고? 편하게들 물어보세요.”

이 씨는 40년 넘게 미군 부대에서 재봉틀을 돌렸다. 영어는 못하지만 집무실 예정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6.25 전쟁이 시작된 1950년, 종로에서 태어났다. 피난을 갔다가 용산에 정착해서 계속 살았다.

집무실 이전에 관해 묻자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통령은 우리의 아버지죠. 나라를 잘 챙겨야 국민도 잘살잖아요.” 그는 취재팀에게도 계속 존댓말을 사용했다. 청년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윤 당선인이 무엇보다 청년 일자리 창출에 힘쓰기를 바란다.

이 씨와 홍 씨는 ‘동네의 언니 동생’ 사이다. 홍 씨는 이곳에서 빵집을 15년 동안 하며 세 딸을 키웠다. “우리 딸들은 내가 대학까지 다 보냈어요. 이 언니 아들도 지금 되게 좋은 회사에서 일해요.”

홍 씨의 둘째 딸은 결혼 10년 만에 첫 아이를 가졌다. 태어날 손주를 생각하면 힘이 나지만 코로나 19로 매출이 떨어져 걱정이다. 그는 새 정부가 시작되며 근심도 함께 사라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대통령은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 서민 위해서 봉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 용산구 주민 이야기
▲ 용산구 주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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