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렸다.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 앞을 지나 동부이촌동으로 향했다. 3월 17일. 날씨가 따듯해 시민들이 곳곳에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탔다.

이촌역 뒤로는 아파트가 빽빽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이촌종합시장이 보였다. 지나가다가 중년 남성 둘이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상주상회에 들어갔다.

주인 이선희 씨(61)는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에 찬성한다고 했다. 그는 이 점포를 22년째 운영한다. 대통령 집무실이 오면 용산구가 좋아진다고 기대한다.

대선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부동산 종부세로 인해 세금을 많이 내서 불만이었다. 시골에 있는 줄도 몰랐던 집 때문에 다주택자가 되어 종부세 폭탄을 맞았다는 얘기. 새 정부가 하려는 일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금산식품이라고 쓰인 가게 안에서 노부부가 야채를 다듬으며 TV를 시청했다. 권천영(80) 문부월 씨(77) 부부. 동부이촌동에서 52년 살았다.

문 씨는 집무실 이전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찬반을 떠나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온다고 했으니 어쩌겠냐고 했다. 청와대 개방에는 “요 앞 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도 못 가는데 청와대라고 갈 수 있을까 싶다. 아마 지방 사람들이 나보다 더 먼저 구경 갈거다”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권 씨 또한 집무실 이전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용산구가 좋아질 것 같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360억 원을 들여 이전하는 일이 반갑지 않다고.

▲ 권천영 문부월 씨 부부
▲ 문부월(왼쪽) 권천영 씨 부부

시장을 나오니 옆에 로얄맨션이 있었다. 취재팀은 거기서 강영환 씨(71)를 만났다. 경비원으로 4년째 근무한다. 집무실 이전으로 주민이 큰 불편을 겪지 않을 듯 싶다고 예상했다.

단지 놀이터에 아이들이 보였다. 벤치에는 부모들이 있었다. 주민 김지용 씨(49)는 동부이촌동에서 1998년부터 산다. 인터뷰가 가능하냐고 물어보자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정치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복된 질문 끝에 나온 답변은 집무실 이전에 당연히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비용과 용산구의 교통체증 심화가 이유였다. 선거 내내 국민 통합을 외치던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으로 국민과 마찰을 빚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양당 정치인이 싸우는 행태에 혐오감이 생겨 정치면 뉴스는 보지도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또 정권 바뀌면 또 들어간다고 하겠죠. 누가 될지 왔다 갔다, 뭐 세금 낭비고 인력 낭비고 양당 체제로 마음에 안 들 것 같아요. 이민 가려고 그래요.”

취재팀은 동부이촌동을 나와 서부이촌동으로 향했다. 저녁 6시가 지나자 조금씩 어두워졌다. 인터뷰를 계속 거절당하다가 골목에서 하성우 씨(45세)를 만났다. 그는 유모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골목길을 걷던 중이었다.

하 씨는 주민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운을 띄었다. 집무실과 거리가 있어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오히려 주변 집값이 크게 상승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집무실 이전에 불만이 많다고 했다. 해결할 일이 산더미인데 굳이 이전해야 하냐는 뜻이다.

“경제가 어떻게 되고 국방이 어떻고, 코로나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전혀) 안보이고 용산 이전 밖에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이촌로의 우림아파트 앞 골목으로 갔다. ‘용산방앗간’이라 적힌 허름한 간판이 보였다. 오래 장사했음을 느꼈다. 고소한 들기름과 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넓었다.

박장운 씨(65)는 누워서 TV를 보던 중이었다. 취재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일어났다. 서부이촌동에서 50년 동안 사는 토박이.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집무실 이전의 찬성 이유를 물으니 “용산 지역이 낙후된 지 오래됐는데 여전히 개발되지 않고 있으니 (집무실을 이전하면) 생활권도 좋아지고, 학군도 좋아질테니까”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있다고 했다. 집무실 주변 지역이 ‘고도 제한’에 걸리면 재개발이 미뤄지지 않겠냐는 얘기다.

▲ 박장운 씨가 취재팀을 보며 웃는 모습
▲ 박장운 씨가 취재팀을 보며 웃는 모습

스카이빌라 옆에서 만난 신준호 씨(44세)는 용산 이전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교통체증. 출퇴근을 위해 이태원을 오가니 대통령이 지나갈 때마다 차량을 통제하면 교통체증은 불 보듯 뻔하다는 말이다.

그는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면서 자기 입장은 지지 성향과 관계가 없다고 했다. “민주당이었어도 용산 집무실 이전은 반대했을 거에요.”

스카이빌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현대한강아파트. 잠시 바람을 쐬러 나온 김동관 씨(50)는 취재팀이 말을 걸어 깜짝 놀랐다면서도 성심껏 대답했다.

대선에서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를 지지했다. 김 씨는 집무실 이전에 대해 “절대 반대. 절대 절대 절대 반대죠”라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교통체증. 집값이 올라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임대아파트에 사니까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문성현 씨(34)를 만났다. 9개월 정도로 보이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명함을 건네며 말을 걸자, 취재팀이 신기한 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문 씨는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오면 오는 거죠”라면서도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지지자였다가 단일화 이후에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한다면 국방부 주변으로는 아예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용산구 주민 이야기
▲ 용산구 주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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