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오브서울 <부천팀>이 4월 20일 오후 2시, 경기 부천을 찾았다. 한낮 최고 기온 20도. 수도권지하철 7호선 신중동역 4번 출구를 나오니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고현오 씨(28)는 역사로 향하던 중이었다. 대선 이후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러 왔다고 했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다. 원래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로 기회가 사라졌다. “차마 제 손으로 거대 양당 후보를 뽑을 수는 없었어요.” 대선 이후에 그는 정치 뉴스를 보지 않는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는 코로나 19 유행이 길어지자 일을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정치권에 딱히 바라는 건 없지만,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순영 씨(70)는 4번 출구 앞 벤치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대선 이후에 대해 물었더니 처음엔 잘 모른다며 손사래 쳤다. 이 씨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며 입을 열자 세례명이 카타리나라고 밝힌 친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두 사람은 30년 지기 동갑내기다. 더불어민주당을 오랫동안 지지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에 마음이 돌아섰다고 한다.

윤석열 당선인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눈을 가늘게 치켜뜨면서 이 씨가 의구심을 드러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냐며 이 씨를 나무랐다.

새 정부 내각 인선에 대해서는 의견이 같았다. 일명 ‘서육남’(서울대 출신, 60대 남성) 위주의 인사를 긍정적으로 봤다. 엘리트가 나라를 이끄는 게 맞는다는 생각에서다. 지나치게 균형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천시장에 출마하려는 국민의힘 서영석 예비후보(64)가 다가왔다. 건네준 명함을 보니 국민의힘 경기 부천을 당협위원장을 지냈다. 서 후보를 보며 이 씨는 옆 친구에게 소곤댔다. “여기 저 사람 안 돼. 민주당 사람이 되지.”

서 후보는 지나가는 주민과 주먹 인사를 하며 선거 운동을 했다. 그는 21대 총선에 출마했었다. 대선이 끝나고 분위기가 달라졌는지를 물었다. 그는 훨씬 좋아졌다며 활짝 웃었다. 명함을 받는 주민 반응이 전보다 호의적이라고 했다.

한 남성이 호탕하게 웃으며 서 후보에게 다가갔다. 국민의힘 당원이라며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건넸다. 그들은 “국민의힘 파이팅”을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 롯데백화점 중동점 앞에서 만난 이규식 씨
▲ 롯데백화점 중동점 앞에서 만난 이규식 씨

롯데백화점 중동점 앞 흡연 구역. 담배를 피우던 이규식 씨(65)를 만났다. 쇼핑을 마친 듯 옆에는 쇼핑백 두어 개가 있었다.

그는 외항선 선장이었다. 한국의 발전은 자랑스럽지만, 정치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너무 밀어줘서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며 걱정했다. “이제 독재가 돼버린 거야. 국민이 뽑았으니까 국민이 책임져야지, 뭐.”

부천원미경찰서 옆 어울림공원으로 갔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기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호기심을 갖고 듣는 듯하더니 대선이라는 말이 나오자 손을 내저었다. 근처의 중년 여성 2명은 달랐다. 취재팀을 반기더니 일종의 거래를 제안했다. “인터뷰해주면 교회 나오는 거야?”

이효숙 씨(61)와 김혜정 씨(60). 공원 근처의 혜린교회 집사다. 둘은 약 25년 전, 부천으로 이사 오고 교회를 다니면서 알고 지냈다. 이 씨는 취재팀에게 애인이 있냐고 묻더니 자연스레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김 씨의 두 아들은 집을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아 결혼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걱정은 같았다. 청년층의 부동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집을 사려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지원금 위주였다며 아쉬워했다.

“문재인에서 ‘문’자를 거꾸로 하면 ‘곰’자라서 ‘곰재인’이라는 말도 나와.” 문 정부의 K 방역에도 이 씨는 실망했다. 초기에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자질과 관계없이 정권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윤 후보를 뽑은 것 같다고 말했다.

▲ 부천 어울림공원의 김영달 씨
▲ 부천 어울림공원의 김영달 씨

옆 벤치의 김영달 씨(55)는 휴대전화를 보던 중이었다. 한국일보 판매국에서 17년간 일하다가 은퇴하고 운전 일을 한다.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후보 중 가장 어렵게 자랐기에 서민 처지를 잘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윤 후보가 뽑힌 뒤에는 뉴스를 잘 안 본다.

문재인 정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씨가 생각하는 대통령의 의무는 간단하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서 모두를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일. “빨리 간다고 운전 잘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같이 타고 가는 사람들이 안정을 느껴야 운전을 잘하는 거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천으로 오기 전까지는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에서 자랐다.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의 시발점 모두 마산이라고 강조했다. 경상도는 국민의힘, 전라도는 민주당이라는 지역 논리에 휩싸여선 안 된다고 했다.

산들바람이 솔솔 부는 해 질 녘. 취재팀은 신중동역 4번 출구로 향했다. 깔끔하게 색칠된 중흥마을 아파트 단지. 산책로가 그 사이로 보였다.

주민 김황자 씨(77)는 단지가 처음 생길 때부터, 그러니까 거의 30년째 산다.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 “여기는 살기 좋은 동네에요. 지하철역 가깝고, 공원도 잘 되어있고. 뭐 없는 게 없어요. 노후를 보내기 딱이에요.”

노을이 지는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자 부흥초등학교가 나왔다. 정문에서 황미순 씨(74)를 만났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살다가 중동 신도시가 들어선 1980년대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

황 씨는 지방선거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부천을 더 살기 좋게 바꿀 유능한 시장을 원한다. 그는 원혜영 전 시장을 칭찬했다. 부천시 녹지화에 힘썼다는 점을 높게 산다.

서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여기서부터는 은하마을. 주민 안순희 씨(75)는 산책 중이었다. 코로나 19 이후 답답함을 없애려고 집 주변을 매일 산책한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했다. 안 씨는 정부의 거리 두기 완화 정책에 불만이 많다. 계속해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와 상황이 다시 악화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방역을 더 해도 모자랄 판에 대체 어쩌려고….”

▲ 조수원 씨는 부광초등학교 앞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 조수원 씨는 부광초등학교 앞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부광초등학교 앞에 갔더니 주민 조수원 씨(70)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12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전북 완주군 출신이다. 40년 전에 고향을 떠나 이제는 부천이 ‘제2의 고향’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천 상동시장까지 오갔다. 보따리 장사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때 나, 힘 엄청나게 좋았나 봐. 보따리 큰 거 세 개를 짊어진 채 전철을 타고 계단을 오르내렸지.”

그는 동생이 공장을 차릴 때 돈을 빌려줬다가 재산을 날렸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초연금을 올리겠다는 약속만은 꼭 지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 부천시민 이야기
▲ 부천시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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