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등한 기회를 위한 시험, 세대 간 균형은 아직

 

“33(고사장)이니까 4층이잖아. 너무 일찍 왔는지 아무도 없는데”

지난 17일 오전 6시 41분. 서울 목동고등학교에 마련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 People Power Aptitude Test) 고사장 로비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최원화 씨(66세)였다. 금천구 기초의원 지원자다. 이 시험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당차원에서 광역·기초의원 공천신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한국 정당사에서 처음 보는 시도다. 최 씨에게 이 시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지역에서 봉사는 많이 했는데 구의원은 첫 도전이라 황당하긴 했다”며 “그냥 들어가는 것과 공부해서 들어가는 건 차이가 있고, 공부하며 몰랐던 걸 알게 돼 뿌듯하다.” 최 씨의 답변이다.

이른 시각이라 고사장을 안내하고, 발열체크를 돕는 운영진도 없었다. 최 씨를 시작으로 수험생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저희는 4층으로 가야 돼요.” “아직 7시도 안 됐네.” 그들은 고사장을 찾기도, 시간을 보며 한 숨 돌리기도 했다. 7시가 돼서야 30대 수험생을 처음 만났다. 서울 기초의원 비례대표 공천신청자인 서지희 씨다. 서 씨는 “시험이 젊은 세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고, 시험을 계기로 공직에 진출하는 청년세대가 늘어나길 기대한다”며 “시험을 통한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17일 아침 6시 20분경 서울 목동고등학교 정문에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 시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17일 아침 6시 20분경 서울 목동고등학교 정문에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 시행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날 전국 29개 시험장에서 약 4,500명이 시험에 참여했다. 결시율은 1.39%. 거의 빠진 지원자가 없다는 뜻이다. 최연소 응시자는 20세, 최고령 응시자는 81세였다. 결과는 공천 심사에 반영된다. 광역·기초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100점 만점에 각각 70점과 60점 이상을 받아야 공천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지역구 출마자는 평가점수에 비례해 가산점을 받는다. 

이 기사는 목동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22명의 응시자(실명 21명, 익명 1명)를 취재해 작성했다.  

처음 시도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에 대한 응시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시험 과목에 국민이 알아야 할 권리가 포함돼있어 좋다고 생각한다”(배경숙, 60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공직자를 뽑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능력을 갖춘 분들을 골라내기 위한 제도로 의미가 있다”(박지훈, 23). “나이 먹어서 시험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험을 보는 건 적합하다고 본다. 이런 걸 한 번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이규선, 60대). “처음에는 시험을 왜 보나 했는데 막상 공부하다 보니 시험을 계기로 광역, 기초의원들에게 업무를 더 잘 알게 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을 거라고 본다”(이형준, 33). “돈과 인맥이 없는 신인들은 공천받기 어렵다. 시험은 정치 경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제도다”(익명, 50대). 

▲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에 대한 책임당원과 일반시민의 긍정 비율
▲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에 대한 책임당원과 일반시민의 긍정 비율

공부에 대한 열정은 연령대와 관계없었다. 고사장 로비에 들어서는 최은정 씨(33)는  이 시험을 위해 정당차원에서 누리집에 올린 자료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자료 곳곳에 필기 흔적이 빼곡했다. 그는 “유튜브에 올라온 PPAT 동영상과 홈페이지에 올라온 자료를 보고 열심히 공부했다”며 “준비도 재밌게 했고 강의도 재밌고 참신했다”고 말했다. 지역 4선 의원 경험이 있다는 김영철 씨(70대)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예상문제를 보니 상식선에서 나와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두 세 과목은 어려웠지만,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답했다.  

▲ 최은정 씨가 고사장 입구에 들어설 때 손에 들고 있던 자료
▲ 최은정 씨가 고사장 입구에 들어설 때 손에 들고 있던 자료

일부 지원자는 준비기간과 장소와 관련해 개선되길 바라는 점이 있다고 했다. 김진영 씨(73세)는 “시도가 좋다”면서도 “대선과 지선 사이에 일들이 많았는데 시험이 급하게 시행되니 시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고 말했다. 또 “먼 거리인 중랑에서 왔는데 앞으로 시험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도록 (시험장을) 더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세종 씨(31세)도 “이번에는 대선과 지선 사이 기간이 짧았고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다”며 “급작스럽게 시행해서 준비를 못 하셨던 분들은 당황하셨을 수 있는데 또 시행된다면 융통성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 유튜브 교육 영상(1강)이 처음 올라온 날은 1월 28일이었다. 시험일로부터 약 80일 전이었다.    

▲ 고사장 로비 모습 
▲ 고사장 로비 모습 

시험이 의정활동에 필요한 역량과 연계된다는 점에선 의견이 엇갈렸다. 의정활동 경험이 있는 이문재 씨(38세)는 “공직선거법과 지방자치법 관련 과목은 공직자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시험이 정치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시험을 통해 얻는 지식 사이에 괴리가 있다. 필드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시험이 끝난 후 만난 권오복 씨(60대)는 “의정활동을 했기 때문에 시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시험 문제 중에 실무에 필요한 것도 많이 있었고, 시험 내용 중 80~90%는 현장에서 즉시 업무에 도움 되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시험이 의정활동에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광역 비례로 정치에 처음 도전하는 김혜지 씨(34세)는 “나이 드신 분 중에서 아예 모르고 의정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며 “이렇게 시험으로 (예비후보자를) 거르는 것도 앞으로 정치가 젊어지고 실효성 있는 정치를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 ‘모든 수험생의 시험 대박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  
▲ ‘모든 수험생의 시험 대박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  

이날 목동에서는 39개 고사실에서 시험을 진행했다. 1~38 고사실에선 서울 광역·기초 공천신청자들이 시험을 봤고, 39 고사실에선 이준석 대표와 기자들이 함께 시험을 봤다. 시험과목은 3개 영역(▲공직자 직무수행 ▲분석 및 판단력 평가 ▲현안분석 능력) 8개 과목이었고 문항은 30문제(100점 만점, 사지선다형)였다. 60분간 진행된 시험이 9시 반에 끝나자 고사장을 나오는 수험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험생들은 대부분 시험이 어려웠다고 했다. “예상 문제로 공부했는데 예상문제에서 나오지 않았다”(권오복, 60대). “예상보다 어려웠다”(강민하, 40대). “시험이 어려워서 힘들었다”(문성호, 30대). “재밌었다. 예상문제와 같은 맥락이지만 표현을 다르게 한 문제가 있다 보니 답만 외웠으면 고생했을 것 같다” (김종길, 40대). “변별력 있는 5~6문제 때문에 애를 먹었다. 말을 모호하게 하는 것들이 있어서 헷갈렸다.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다 보니 일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기 어려웠다”(이형준, 33세). “4지선다니까 정답 하나만 고르는 데 집중했다. 풀고 나니 38분이 남았다”(박지훈, 23세). “어려웠다”(고만교, 60대)

▲ 시험 시작 전 고사장 
▲ 시험 시작 전 고사장 

고령층 등은 시험 형식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며 이들을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이 드신 분들은 OMR 카드 작성에 어려움을 겪으셨다. OMR 카드를 10번 정도 교체하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김종길, 40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눈이 안 좋으셔서 OMR 카드를 보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도 한 분 있었다”(박지훈. 만 23세). “OMR 카드에 이름 쓰는 것도 어려워하셔서 직접 도와드렸다. 젊은 세대에겐 시험이 유리하지만, 연세 있는 분들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 것”(양정아, 만 39세, 그림 작가). “시험 도중 본인이 비례인지 아닌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시험으로 이런 경우를 거르는 건 필요하지만, 어르신들이 문제를 못 읽거나 OMR카드 작성을 못 하는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시험 외에 다른 방식으로도 자질을 평가해야 한다”(강민하, 40대). “고사실에 장애인분들도 많이 있었는데 잘못했다고 계속 OMR 카드를 달라고 했다”(장우르피야나, 40대, 키르기스스탄 출신). 

시험이 끝나자 교문엔 고사장을 나서는 사람들과 차량이 줄을 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교문에서 2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 대표는 “정당에서 공직후보자라고 하면 국민의힘에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능력을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며 “지방의원이 되면 감시해야 할 대상인 공무원은 엄청난 취업경쟁력으로 자신의 역량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방의원들은 당의 실력자들에 대한 추종으로 공천 받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분위기를 일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시행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잘 정착될 것 같은 기대가 있고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며 “대선 이후에 할 수밖에 없어서 시간이 적었지만, 평가의 취지는 이번에 한 번 거르자는 것이 아니라 이번 평가에서 떨어지면 교육을 제공하고 당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시간 여유를 두고 시행하면 좋겠다”고 답했다.

▲ 39 고사장에서 이준석 대표와 기자들이 함께 시험을 보고 있다
▲ 39 고사장에서 이준석 대표와 기자들이 함께 시험을 보고 있다

다음 날(18일),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에 대해 논평을 부탁하자 정의당 장태수 대변인은 “시험을 폄훼할 생각은 없고, 국힘스러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방의원들은 당의 철학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정당의 정치인들과 함께 이익의 충돌을 조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4지선다 중 하나의 정답을 고르는 방식으로 이러한 역할을 잘하는 후보를 고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답했다. “공직 선거에 나서려는 사람들을 교육할 때는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당 활동 일상에서 당의 정책과 사회 현안에 대해 교육하고 토론하는 기회들을 정당이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응시생 중에선 1950, 60년대생의 비중이 가장 컸다. 서울지역 예비공직후보자 가운데는 1969년 이전 출생자가 71%를 차지했다. 서울 광역의원 지역구 공천신청자(총 226명) 중 1950, 1960년대생이 각각 75명(33%)로 가장 많았다. 1970년대생이 35명(15%), 1980년대생 26명(11%), 1990년대생 9명(4%), 1940년대생 6명(2.2%) 순이었다. 서울 광역의원 비례 공천신청자(총 37명) 중에서도 1950,60년대생이 각각 동일하게 11명(30%)으로 가장 많았다. 1970,80년대생은 6명(16%), 1990,1940,2000년대생은 모두 1명씩(3%)이었다. 

서울 기초의원 지역구 공천신청자(총 425명)는 1960년대생이 179명(42%)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1950년대생 122명(29%), 1970년대생 51명(12%), 1980년대생 44명(10%), 1990년대생 17명(4%), 1940년대생 11명(3%), 2000년대생 1명(0.2%) 순이었다. 서울 기초의원 비례 공천신청자(총 59명)는 1960년대생이 27명(46%)으로 가장 많았다. 1950년대생 16명(27%), 1970년대생 10명(17%), 1980년대생 3명(5%), 1940년대생 2명(3%), 1990년대생 1명(2%) 순이었다. 

▲ 계단을 오르는 통로에 붙어있는 고사장 위치 안내문
▲ 계단을 오르는 통로에 붙어있는 고사장 위치 안내문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보스 공천, 돈 공천, 계파 공천, 밀실 공천, 인맥 공천 등 그동안 정당의 공천방식이 인맥, 금수저, 네트워크에 좌우돼 불공정과 부정의로 흘러 적폐가 되었다”며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는 공천 적폐를 없애기 위한 대안으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청년·여성·노동자·농민·장애인·일반 시민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정당구조와 공천방식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자격시험을 전제로 하되 상향식 공천방식인 주민 배심원제와 국민 참여 경선제로 보완되어 가야한다”고 부연했다. 또한 “기성 정치인이나 정치지망생에게 유리한 ‘사전 선거운동 금지조항’을 폐지해 누구나 자유롭게 상시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현행 선거법을 고치는 일도 필요하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치에 자리 잡고 있는 조직선거 문화를 타파하고 누구나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당에서 활동하도록 당 체질을 개혁하는 첫 단추가 바로 이 시험이다”

이준석 대표의 말이다. 지난 1월 20일 올라온 <공직후보자 역량강화 교육과 평가 소개>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한 말이다. 서울지역 예비공직후보자 중 1969년 이전 출생자가 71%였다. 이 대표가 희망하는 대로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가 돈과 인맥이 없어도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는 누가 공직에 진출하는가에 달려있다.   

앞으로 [2030과 이준석] 시리즈 3부 <실력주의가 한국정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가 보도될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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