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대학로를 3월 16일 찾았다. 코로나 19의 신규 확진자가 60만 명대를 기록한 날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 공연예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로에는 2020년 기준으로 공연장 101곳이 있다. 코로나 19로 미국 브로드웨이가 멈췄을 때도 대학로는 관객을 받았다.

그러나 3월 들어 공연 일정을 바꾸거나 취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배우와 스텝이 확진되거나 확진자와 접촉하는 일이 늘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찾은 날도 배우의 확진으로 뮤지컬 ‘팬레터’와 ‘스톤 THE STONE’이 당일에 취소됐다.

공연 시작 10분 전. 좁은 계단을 내려가자 손 소독기와 장갑을 낀 공연장 도우미가 보였다. 차례를 기다려 티켓을 넘겨주고 체온 측정과 소독을 마치기까지 30초 정도 걸렸다.

방역 패스가 해제된 1월 18일 이후 입장 절차가 대폭 간소화됐다. 한때는 접종 증명 또는 음성확인서, 신분증, 자가 문진표, 티켓 등 4가지를 보여줘야 했다. 공연이 임박하면 입구 앞에 긴 줄이 생겨 한참을 기다리기 일쑤였다.

▲ 예스24 스테이지 3관 야외 매표소 앞. 관객들은 간격을 두고 줄을 섰다.
▲ 예스24 스테이지 3관 야외 매표소 앞. 관객들은 간격을 두고 줄을 섰다.

기자의 자리는 객석 2층. 도우미가 관람 매너와 방역수칙을 안내했다. 극장 내 마스크 미착용과 음식물 섭취, 함성은 모두 금지했다.

공연 시작 직전, 급하게 입장한 관객이 가방에서 물을 꺼냈다. 그가 마스크를 살짝 내려 물을 입에 넣고 다시 올렸다. 도우미가 “공연장 내에선 물을 포함한 모든 음료의 섭취도 제한됩니다. 잠깐이라도 마스크를 내리지 마시고 코끝까지 착용 부탁드립니다”라고 안내했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등 동화를 각색한 창작뮤지컬이다. 쉬는 시간 없이 2시간가량 계속된다. 마스크를 쓰고 좁은 좌석에 앉아 있기가 쉽지 않았다.

코미디극이지만 관객이 마스크 안으로 웃음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예기치 못한 배우의 실수나 애드리브가 나올 때는 웃는 소리가 커졌다. 일부 노래에서는 다 함께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쳤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하는 커튼콜. 함성은 없었지만 기립하는 1층 관객이 난간 너머로 보였다. 관객은 환호 대신 기립으로 출연진을 격려했다. 이날은 공연 종료 후 행사가 있었다. 출연진 7명과 MC까지 모두 8명이 무대로 나왔다.

▲ 포토타임에서 출연진이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포토타임에서 출연진이 관객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뮤지컬 ‘난쟁이들’은 역할마다 배우 2, 3명이 연기한다. ‘더블 캐스트’ 혹은 ‘트리플 캐스트’ 방식이다. 언제 누가 출연할지는 미리 정하지만, 어느 배우가 갑자기 공연에 설 수 없으면 같은 역의 다른 배우가 자리를 메워야 한다.

‘난쟁이들’에 출연하는 배우 한보라 씨(37)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연습 및 공연할 때는 더블(같은 역 배우)끼리는 식사도 같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확진돼도 공연이나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생기면 다른 팀에서 바로 소식이 와서 동선이 겹치는지를 확인한다. 난쟁이들 팀에서도 코로나 19로 인해 캐스팅을 변경한 공연이 3월 27일 기준으로 29회나 됐다. 두 번은 공연을 취소했다.

연습실에서 마스크 착용과 체온 확인은 필수가 됐다. 한 씨는 “노래와 안무, 연기를 하며 마스크를 쓴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힘들다”고 했다. 연습 중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없는 점도 아쉽다.

▲ 배우 한보라(왼쪽) (출처=주식회사 랑 트위터)
▲ 배우 한보라(왼쪽) (출처=주식회사 랑 트위터)

그는 “요즘 오미크론은 인후통으로 오는 경우가 가장 많아서 노래해야 하는 배우는 공포를 많이 느낀다. 격리기간이 끝나고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동료도 봤다”고 말했다. ‘난쟁이들’ 같은 코미디 작품에서 마스크로 관객의 표정을 보지 못하는 점이 아주 아쉽다.

관람 다음 날, 뮤지컬 ‘난쟁이들’의 제작사 ㈜랑 사무실을 찾아갔다. ㈜랑은 공연장 ‘플러스 씨어터’와 공연 파생 상품(MD) 판매처 겸 휴식 공간인 ‘담소’를 운영한다.

안영수 대표(46)는 “공연장에서 한 번도 객석 간의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객이 방역수칙을 지키고 제작사가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는 “담소 공간에서 커피 같은 걸 팔 수 있는데도 마스크 내리는 행위를 원천봉쇄하려고 그런 것(음료 판매)도 안 하고 있다”고 했다.

▲ 공연 제작사 ㈜랑의 안영수 대표
▲ 공연 제작사 ㈜랑의 안영수 대표

밀접접촉자 기준이 완화됐지만 제작사는 여전히 엄격하게 대응한다. 안 대표에 따르면 확진자와 접촉한 배우는 신속 항원 검사를 받는다. 최근에는 밀접 접촉 3일 후까지 배우의 공연 일정을 변경하고, 3일 후에도 음성이 나오면 출연토록 했다.

배우의 확진이나 접촉 사실을 전달받을 때 심정이 어떤지 물으니 안 대표는 “망했다 싶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함께 공연한 배우를 파악하고 검사를 신속하게 받도록 하고, 확진된 배우가 당일 출연이면 더블 캐스트 배우의 스케줄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캐스팅을 변경하면 전액 환불하는 공연계 관행도 제작사에 큰 부담이다. 공연일 직전에 캐스팅이 바뀌면 당일이라도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캐스팅이 변경되면 취소하는 티켓이 많아진다.

“어느 예매처든 상세페이지에 ‘상기 일정은 제작사 또는 배우의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면 소비자들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하고, 제작사는 소비자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기 어렵다.”

관객 간, 객석 및 무대 간 거리 2m 유지. 서울시가 2020년 3월 26일 공연계에 보낸 공문 내용이다. 권고 위반 시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확진자 발생 시 구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나온다. 지침을 따르면 공연을 올릴 수 없었다. 민간 공연장은 문진표 등 자체 방역을 대안으로 택했다.

코로나 19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국공립 공연장에서만 실시했던 ‘객석 간 거리두기’도 점차 확대됐다. 2020년 8월 말부터는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민간 공연장까지 거리두기를 적용했다.

안 대표가 가장 힘들었던 점도 방역지침의 거리두기였다. 제작사 사이에서 차라리 공연계를 강제로 쉬게 하란 얘기도 나왔다.

“공연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배우, 스텝, 장치업체 등이 대극장의 경우 100명이 넘는 게 허다하고, 오케스트라(연주자)까지 하면 200명이 넘는다. 이 사람들은 이게 일자리다. 거리두기를 하면 공연을 할 때마다 손실을 보기 쉬운데 제작사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방역패스가 의무 시행된 2021년 12월 13일에야 전 좌석 판매가 가능해졌다. 이후 방역패스와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도 풀렸다. 2년 넘는 기간 동안 공연장에서 별다른 집단 감염 사고가 없던 덕분이다.

사정이 나아졌지만 공연계는 여전히 힘들다. 국내 최대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파크의 공연 티켓 판매액은 2837억 원으로 2020년보다 117.7% 증가했으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절반 수준이다.

퇴근 후 공연장을 찾은 한미지 씨(32)는 “공연은 배우, 스태프 등 공연계 종사자의 생계가 달린 일”이라고 했다.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공연이 올라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직장 다니는데 일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지 않나. 조심하며 계속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표소 근처에서 공연을 기다리던 대학생 이여진 씨(22)는 수 차례 공연 취소를 겪었다고 했다. “코로나 초반에는 거리두기 격상에 대해 미리 알 수 있었는데, 최근엔 배우 사이에 (코로나가) 돌아서 몇 시간 전 취소가 빈번해져 관객으로서는 더 불편하다.”

이지혜 씨(24)는 캐스팅 변경과 공연 취소를 이제는 무던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안타까운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덤덤하다”고 했다. 1주일에 2~3번 공연을 관람한다는 그는 “공연은 (나의) 일상이 잘 굴러가게 해주는 윤활제”라고 말했다.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앞 조형물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앞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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