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고하, 연차, 나이에 관계 없이 구성인 개개인이 서로를 존중하는 인식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삼성전자 직원들의 메일함에 이런 메일이 1월 12일 도착했다. 발신처는 인사과였다. ‘상호 존댓말 쓰기’ 도입을 알리는 내용이다. 삼성전자가 2021년 11월 29일 발표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의 하나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문화는 상호 존중을 위한 방법인 동시에 나이가 아니라 능력에 따른 직급 체계를 자리 잡게 하려는 수단인 셈이다. 삼성전자는 “연공 서열을 타파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과감히 중용하여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잡코리아가 2019년 실시한 ‘직장 내 반말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약 80%가 존댓말을 선호한다. 하지만 현재 근무하는 직장의 상사가 자신에게 반말을 사용한다는 응답이 65%에 달했다.

제도를 도입하고 삼성전자 내부는 달라졌을까? 기자가 취재했더니 “부서마다 다르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상호 존중의 분위기가 이미 자리 잡은 부서는 새 제도의 시행을 반기지만, 상사가 직원에게 반말했던 부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 경기 수원의 삼성전자 본사(출처=shutterstock)
▲ 경기 수원의 삼성전자 본사(출처=shutterstock)

하드웨어 엔지니어 이 모 씨(30)는 “내가 속한 부서는 나름 잘 지켜지고 있다. 사내 메신저나 메일로 소통할 때 직급, 직책이 보이지 않아 부서 간 협업 시에도 상호 간 존댓말은 당연한 문화로 이미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MX(Mobile Experience) 사업부의 주 모 씨(37)도 “소프트웨어 개발자 조직에 있다 보니 다른 부서에 비해 수평적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 (제도 도입 전부터) 이미 상호 간 존댓말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익명 게시판에는 같은 부서나 옆 부서 직원이 여전히 반말을 한다는 불만이 잦다. 메모리 사업부의 고 모 씨(30)는 “(상호 존댓말 쓰기를) 도입했다는 걸 듣긴 했는데 부서원은 신경 안 쓰는 분위기”라며 “예전과 다름없이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반말을 쓴다”고 했다.

상호 존댓말 사용이 뿌리내리려면 윗사람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 문화를 연구하는 더밸류즈의 정진호 소장은 “사장을 포함한 임원부터 사원한테 존칭과 경어를 쓰는 노력이 부장, 차장, 과장급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기성세대는 일방적인 지시를 받고 일했지만 MZ 세대는 업무를 수시로 공유하고 자율적으로 일하기를 좋아한다. 정 소장은 “과거에는 조직 문화가 가족 같은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이제 MZ 세대의 직장인은 가족이 아니라 팀으로 일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MZ 세대에게 존댓말과 수평적인 호칭 사용 등 상호 존중 문화는 직장 선택에 중요한 요소이다. 앱 개발사에 다니는 이지율 씨(26)는 “회의할 때 모두 존댓말을 사용하면 직급, 연차를 떠나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다”며 “생산성이 높아지고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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