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반포1동 원촌초등학교 근처. 이곳 주민은 서초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대선과 함께 치른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사퇴하며 공석이 생겼다. 재보선을 치르는 전국 5곳 중 유일하게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가 맞붙었다.

날이 풀려서인지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렸다. 네 살배기 딸아이와 놀아주던 양지과 씨(38)에게 말을 걸었다. 투표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체감한다. 결혼 후 전세를 살다가 임대차 3법이 통과됐다. 전셋집에서 오래 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집주인이 직접 살겠다며 들어오겠다고 했다. 전세갱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주변 친구가 내는 월세는 100만 원 씩 올라갔다. 내 집 마련은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여성 인권 의제가 뒷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범죄와 스토킹 범죄 등 여성 안전 문제부터 육아휴직제도 등 보육 문제까지 개선해야 할 게 많다고 본다.

그는 증권사를 다니는 워킹맘이다. “임신했으니까 고과 바닥 깔고, 복직했으니까 고과 바닥 깔고. 그러다 보면 2~3년 금방 날아가죠.”

남성 육아휴직을 강제하는 공약에는 회의적이다. 성별 불평등을 먼저 바로잡지 않으면, 돈을 덜 버는 쪽이 경력 단절을 경험한다고 본다. 육아지원금 같은 지원이 지금의 육아 환경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보지 않는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염두에 뒀다가, 갑작스런 단일화에 배신감을 크게 느꼈다. 인간 안철수는 존경하지만 앞으로 안 후보를 지지할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나마 더불어민주당이 가깝다고 느낀다. 이재명 후보는 경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며 행정가로서 검증됐다고 본다. 물론 후보의 리스크와 인성 논란이 신경 쓰인다. 그래도 행정 능력을 고려하면 이 후보가 좀 더 낫다고 했다.

대선 이후에는 여성 인권이 더 후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라 더 걱정된다. 20대 남성 표심에만 매달려서, 정작 육아 현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정책은 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원촌초(반포1동 투표소)
▲ 원촌초(반포1동 투표소)

투표소 줄은 길었다. 집으로 향하는 홍 모 씨(49)를 만났다. 사업을 해서 이름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했다. 반포1동에 5년 정도 살았다. 세금이 너무 많다는 하소연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1주택자 부모에게 세금폭탄이 떨어졌다.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 홍 씨는 월세 집에 산다. 집주인이 보유세를 내야 한다며 월세를 계속 올렸다. 사업을 하니 치솟는 사무실 월세도 감당해야 한다.

젊은 직원들에게서는 어차피 서울의 집 장만은 포기했으니 월급을 받는 대로 쓴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을 노후가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정권을 교체해야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집값이 엄청 올라서 살기 힘들어지고, 청년은 취업못하고 알바만 하면서 살잖아요. 그게 되게 안타까워요. 꿈을 가질 수 없게 밟아버린 거죠. 사다리를 끊어버렸다고 생각해요.”

▲ 야쿠르트 매니저 이종숙 씨. 기자에게 야쿠르트를 건넸다.
▲ 야쿠르트 매니저 이종숙 씨. 기자에게 야쿠르트를 건넸다.

원촌초 근처에 반포자이아파트가 있다. 단지 내 투표소 근처로 갔다. 야쿠르트 매니저 이종숙 씨(64)에게 말을 걸었다. 이 동네에서만 14년 동안 야쿠르트를 팔았다. “이 단지 사람들 집에 밥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지.”

그는 미래세대가 살 세상이 걱정이라고 했다. 경제, 물가, 자연재해 등 삶이 힘들어지는 요소가 늘었다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때껏 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다고 나는 생각을 해요.”

김효원 씨(38)는 다섯 살 여자아이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 산지 1년 반 정도 됐다. 의사라고 소개하니까 옆에서 아이가 “나는 간호사야”하고 웃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공약이 특히 그렇다.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겠다는 결심도 좋다고 느낀다.

재보선 얘기를 꺼내니 국민의힘 조은희 후보의 이름이 나왔다. 구청장 할 때 신임을 얻고, 일을 잘해서 서초구가 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이 돼도 서초구를 위해 열심히 일할 거라고 했다.

▲ 자이안센터(반포1동 투표소)
▲ 자이안센터(반포1동 투표소)

오후 2시, 단지의 투표소 근처 운동장. 햇살이 따뜻했다. 벤치에 있던 진영애 씨(81)를 만났다. 오늘 오전 6시에 나와서 투표했다.

문재인 대통령 5년 동안의 행보는 독선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민 여론을 듣고 타협하기보다, 자기 기조만 내세워서 상황이 혼란해졌다고 본다.

그는 서울대 1학년 재학 중에 4.19 혁명을 겪었다. 같이 데모하다가 총에 맞아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었다고. 그런 걸 다 겪어서 이렇게까지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 것이 감사하기만 하다.

“이젠 그래도 전화위복이 되는 것 같아요. 촛불이니 태극기니 매번 싸움만 하다가. 그래도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오후 3시, 아파트 상가 쪽 편의점 앞. 이진섭 씨(48)가 농구공과 배드민턴 채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 인터뷰를 요청하니 곧바로 승낙했다.

서초구에서 10년을 살았다. 코로나 19로 어려운 상황을 문재인 정부가 잘 극복했다고 본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180석 국회와 정국을 편하게 이끌 수 있다고 본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혼란이 있을 걸로 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엔 많이 응원했다. 하지만 이름처럼 ‘철수’만 하는 정치였다. 이번 단일화도 그렇다. 이제는 ‘저 사람은 끝까지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아파트 밖으로 나서는 길에 투표하러 가던 이재욱 씨(41)를 만났다. 집 하나만 있는데 세금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국민의힘 후보를 뽑을 생각이다.

안철수 후보는 비즈니스적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애초부터 나라를 위한 마음이 있었다면 선거 초기부터 조율하는 과정을 보였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당선이 어려울 것 같아서 울며 겨자 먹기식 단일화를 했다고 생각한다.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국민의힘의 방향이 더 와 닿는다고 했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북한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분단국이 됐다. 수많은 사회 비용이 들고, 남자가 군대를 가는 상황에서 친북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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