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새벽 5시, 경기 고양시 집에서 택시를 타고 서울 마포구 공덕동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가 꼭두새벽부터 뭐 하러 가냐고 말을 걸었다. 대선을 취재한다고 했더니 기사는 이번에 많이들 투표한다고 했다.

주변 사람을 보면 다들 지지율이 높은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윤석열(국민의힘)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번엔 저놈만 되지 말라는 마음으로 투표하는 거라니까요?”

투표는 오전 6시 시작이다. 취재팀은 30분 전부터 투표소 9곳을 돌며 52명을 만났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마포문화원. 공덕동 제9투표소다.

해가 뜨지 않아 깜깜했다. 마포문화원 불빛이 거리를 밝혔다. 짧은 오르막길을 걷자 문화원 로비에서 투표사무원 3명이 취재팀을 맞았다. 주민 대여섯 명이 입장을 기다렸다. 투표사무원 김 모 씨는 자원봉사자다. 소독액과 비닐장갑을 나눠주면서 질문에 답했다.

오전 6시가 되자마자 주민 20명이 도착했다. 최 모 씨(41)는 이 후보가 미심쩍지만, 경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며 성과를 증명했다고 했다. 윤 후보는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경험이 없어 미덥지 않다고.

10분이 지나자 줄이 길어졌다. 끝 쪽의 유 모 씨(32)는 일어나자마자 왔다고 했다. “저 사람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제8투표소는 아파트 경로당. 입구에서 빗자루로 길을 쓸던 경비원 문광식 씨(54)는 “투표를 누굴 위해서 하나? 나를 위해 뽑는 거지”라고 했다. 그는 누가 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공덕동 제8투표소(신공덕1차삼성아파트 경로당)
▲ 공덕동 제8투표소(신공덕1차삼성아파트 경로당)

경로당 앞에서는 15명 가량이 기다렸다. 이승민 씨(34)는 투표를 마치고 줄을 빠르게 지나쳤다. 뽑을 사람이 없어서 무효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래도 민주주의 사회 시민으로서 선거권을 행사하러 왔다고 덧붙였다.

제7투표소는 공덕초. 투표하고 정문으로 돌아오던 장정희 씨(70)는 식당을 운영한다. 아침 영업을 위해 일찍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은 자기 가정도 간수 못 하는데 정치를 제대로 할까 싶어. 윤석열은 그래도 좀 바른 이미지가 있잖아.”

조작형 씨(61)는 전기 공사 일을 한다. 많은 지역을 다니는데, 집값이 많이 올라서 문제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제5투표소는 원향고시원 지하1층 주차장이다. 모녀 투표사무원이 주민을 안내했다. 딸은 흰 비닐장갑을 끼고 주민 손에 손소독제를 뿌렸다. 어머니는 줄 뒤쪽의 주민이 거리를 지키도록 대열을 정리했다.

▲ 공덕동 제5투표소(원향고시원 지하1층 주차장)
▲ 공덕동 제5투표소(원향고시원 지하1층 주차장)

최영숙 씨(75)는 정직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하다며 웃었다. “나는 소신껏 투표했다. 알지?” 이 말을 남기고 남편과 함께 떠났다.

주민 대부분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박현숙 씨(64)는 인터뷰하겠다고 먼저 말했다. 투표하고 나올 테니 기다리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박 씨는 투표장을 나오자마자 신난 목소리로 출구조사원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실망한 듯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나는 후보를 사랑해서 선거하러 온 거예요. 정말 좋고, 사랑해서.” 원래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 형수 욕설 영상을 두 번 보고 지지를 철회했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공무원이었던 만큼 정직해 보여서 낫다고 했다.

공덕동1-2공영주차장 1층의 제4투표소는 한산했다. 선거사무원 한 명이 드문드문 찾아오는 유권자를 입구에서 맞았다.

▲ 공덕동 제4투표소(공덕동1-2공영주차장)
▲ 공덕동 제4투표소(공덕동1-2공영주차장)

투표를 마치고 돌아가던 성 모 씨(26)는 여성 인권을 중요시한다. 고민 끝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막기 위해서다.

강성길 씨(81)는 집안을 꾸리는 데 경험이 필요하듯,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경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정치를 평생해도 힘든 대통령 자리. 윤 후보는 경험이 없어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공덕동 주민센터(제6투표소). 오 모 씨(75)는 투표를 마치고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그는 “깨끗한 사람 찍었지! 도둑놈은 안 찍었어”라면서 허공에 어퍼컷 두 방을 날렸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시늉을 하며 정부의 대북정책이 너무 저자세라고 비판했다.

큰길을 따라 걸으니 소의초(공덕동 제3투표소)가 나왔다. 투표소 입구에 장애인과 임산부 기표소를 설치했다. 마포구청의 김믿음 주무관은 입구의 턱 때문에 출입이 힘든 유권자를 위해 임시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 공덕동 제3투표소(소의초) 입구의 임시 기표소
▲ 공덕동 제3투표소(소의초) 입구의 임시 기표소

운동장 옆으로 벤치가 있다. 투표하고 잠시 쉬는 노부부를 만났다. 할머니(75)는 부자 증세를 원한다. 서민에게 세금을 늘리지 말고 돈 있는 사람에게 더 높은 세금을 매겨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후보는 행정 경험이 있고 법을 잘 안다며 지지하는 이유를 밝혔다. 할아버지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권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앞. 마포평생학습관 아현분관(공덕동 제2투표소)에서 나온 줄이 건물을 반 바퀴 감았다. 유아차를 끌고 온 부부, 강아지를 안은 젊은 여성, 부모를 기다리는 고등학생….

▲ 공덕동 제2투표소(마포평생학습관 아현분관)
▲ 공덕동 제2투표소(마포평생학습관 아현분관)

집으로 돌아가던 박막동 씨(73)는 이재명 후보의 행정능력에 마음이 간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검사생활만 해서 마음에 걸린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노동 문제에 젊은 세대의 관심이 부족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서 지지를 많이 못 받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투표소를 촬영하는데 노인자 씨(67)가 다가왔다. 한 손에 투표 도장이 찍힌 종이를 들었다. 투표용지에는 선명하게 찍히지 않았다며 무효표가 될까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표시가 완전하지 않아도 정규 기표용구를 사용했음이 명확하다면 유효표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노 씨는 안심하고 남편 박조한 씨(74)에게 말을 전했다. 지팡이를 짚은 박 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을 지지한다. 노 씨는 양극화가 심해서 문제라고 꼽았다.

마지막으로 제1투표소(아현실버복지관)에 갔다. 유권자보다 출구조사 면접원이 더 많았다. 면접원 7명은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주민에게 출구조사 참여를 부탁했다.

한국리서치에서 나온 면접원(59)은 사전투표율이 워낙 높아 본투표에 의외로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전에는 먼저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코로나 탓인지 그런 분들이 잘 안 보이죠.”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