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오브서울의 <용산팀>은 3월 4일~5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을 찾았다. 서울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2번 출구로 나와 효창원로를 걸었다.

사거리 쪽에 편의점이 보였다. 효창동이 초접전 지역이라고 했더니 직원 이 모 씨(55)는 “여기가 그 반반인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적은 용산. 효창동에 50년 넘게 살아서 지역 역사를 꿰뚫었다.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 올라올 때 전라도 사람은 용산에서 내렸다고, 호남선이.” 이 때문에 용산구에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고 한다.

지역색은 점점 옅어졌다. 재개발로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며 다른 지역의 주민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도 바뀌는 중이라고 이 씨가 말한 이유다.

“왜, 일장 연설이야?” 60대 여성은 이 씨와 교대하려고 왔다가 농담을 했다. 편의점 사장이자 이 씨의 누나. 대선에서 누구를 뽑을지 결정했냐고 물었더니 남매는 “사퇴하는 바람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들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

누나는 안 후보에 실망감이 크다. 당선 가능성이 적어도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많은데 눈으로 보여준 게 없거든. 그러니까 이번에는 눈으로 보여주려고 그런 것 같아.”

동생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로 결정했다. 지역색이 없고 합리적이라 안 후보를 지지했다. 대선 토론을 보며 윤 후보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두 후보가 단일화했으니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거라고 했다. 

▲ 허지원 씨와 강동현 군
▲ 허지원 씨와 강동현 군

뒤편 주택가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하교하는 어린이가 눈에 띄었다. 허지원 씨(43)도 아들 강동현 군(8)을 데리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강 군이 손을 당기며 집에 가자고 재촉해도 허 씨는 대학생 조카 생각이 난다며 취재팀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허 씨는 다음 대통령이 범죄 없는 나라를 만들기 바란다. 특히 여성 대상 범죄에 대응할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신속한 대응과 정당한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

아들은 올해 금양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딸은 10살. 성적이 중요한 공부보다는 인성을 기르는 학교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아이들이 세상을 펼쳐나가면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시스템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이런 허 씨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후보는 없다. “공부해도 누구를 뽑을지 잘 모르는 건 마찬가지에요.” 누가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갈지 유튜브를 보며 마지막까지 고민하려고 한다.

주택가 중심에는 효창종합사회복지관이 있다. 1층 로비에서 신금자 씨(79)와 김정수 씨(87)가 주민을 안내한다. 이들은 주 5일,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복지관에서 근무한다. 주 업무는 손 소독과 발열 체크, 층별 안내.

두 사람 모두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에 실망했다. 집값과 세금이 많이 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신 씨가 “(세금) 30만~40만 원 내던 걸 100만 원 이상 내고 있어”라고 말하자 김 씨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180석이나 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한 거 아니야”라고 맞장구쳤다.

지지하는 후보는 다르다. 신 씨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야당과 타협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믿어보기로 했다. 김 씨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 세금을 공제해주겠다는 정책이 마음에 들었다.

▲ 택시 기사 이귀성 씨
▲ 택시 기사 이귀성 씨

취재팀은 오후 1시 20분 점심을 먹으러 효창원로의 일번지기사식당에 갔다. 도로에 택시가 늘어섰다. 식당은 혼자 밥을 먹는 남성이 가득했다. 몇몇은 택시 유니폼을 입었다. 식당 한쪽의 TV는 연합뉴스TV를 보여줬다. 대선 보도가 나오자 일부는 식사를 멈추고 관심을 보였다.

유일하게 식사하지 않는 남성이 있었다. 이귀성 씨(66). 비빔밥을 먹던 동료 앞에서 말동무했다. 그는 개인택시를 25년째 몬다. 주로 용산구와 마포구를 오간다.

후보들이 어떤 것 같냐고 물었더니 이 씨는 기호 14번까지 후보를 모두 아냐고 되물었다. 그는 거대 양당 후보에만 집중하는 대선이 문제라고 했다. “후보가 14명이잖아요. 14가지 생각을 가져야 되는데 모든 사람한테 물어보면 두 가지 생각밖에 안 해. 1번이냐, 2번이냐.”

그는 “그놈이 그놈”이라 아직 누구를 뽑을지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선거날 아침 눈 뜨고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찍는다고 한다.

차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으로는 안정을 꼽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보며 분단국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국제관계를 잘 풀고 전쟁 위협을 잠재울 사람. 이 씨가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이다.

효창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일 전이 3·1절이어서인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가 안장된 이곳에 태극기가 가로수마다 보였다. 오후 2시, 휴대폰에 강풍주의보 알림이 떴다. 바람이 강한데도 운동기구 근처에 7명이 있었다.

20년 넘게 청파동에 사는 정명순 씨(85)는 벤치에 앉아 이들을 지켜봤다. 신장이 좋지 않아서 의사가 햇볕을 많이 쬐라고 조언했다. 정 씨의 걱정은 함께 사는 35살 손자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 묻자 그는 젊은 사람들이 집 없이 애쓰는 게 안타깝다며 울먹였다.

투표하러 가겠냐고 묻자 일평생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후보마다 표를 받고 싶어 기다리는데 국민으로서 투표는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그냥 나는 여자를 찍고 싶어. 왜냐하면 여자가 똑똑하더라고. 남 헐뜯지도 않고, 그 사람이 흠이 없잖아.”

▲ 정명순 씨(오른쪽)
▲ 정명순 씨(오른쪽)

건너편 벤치에서 여성 구모 씨(70)가 취재팀과 정 씨를 지켜봤다. 기자들을 전도하는 무리로 오해했다며, 정 씨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는 마포구 아현동에 산다. 요양보호사. ‘국가유공자’ 문구를 새긴 모자 쓴 남성을 가리키며 같이 산책을 나왔다고 했다. “6·25 참전 용사 중 저분이 유일하게 한 분 남았어. 저분은 윤석열 팬이야, 팬!”

구 씨도 윤 후보를 뽑겠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다가 단일화 선언 이후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유능한 안 후보가 밀어주면 윤 후보 역시 잘하지 않을까 싶어 지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뽑았다. 실망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존경받는 대통령이 됐으면 했는데 인재 풀이 부족해서 그런지 오늘날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 우가영 씨(왼쪽)는 운동하면서 취재에 응했다.
▲ 우가영 씨(왼쪽)는 운동하면서 취재에 응했다.

다리 운동 기구에 있던 우가영 씨(70) 역시 윤석열 후보를 뽑으려 한다. 그가 내세우는 공정이라는 가치가 맘에 들어서다. 이재명 후보의 논란을 지켜보며 인성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우 씨는 효창동에 이사 온 지 3년이 됐다.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력서를 낼 때 18세 이상인지만 묻는 데, 우리나라는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나이가 많으면 일자리의 선택지가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기회가 되면 미용을 배우고 싶어 한다. 1만 원씩 내고 미장원에 가기가 너무 아까워서 남편 머리카락을 잘라주려 한다.

▲ 임상희 씨는 공원에서 매일 운동한다.
▲ 임상희 씨는 공원에서 매일 운동한다.

윗몸 일으키기를 하던 임상희 씨(72)는 “한 사람은 여우 같이 생겼고, 한 사람은 바보 같이 생겼어. 여우 같이 생긴 사람 뽑으면 안 되지. 나라 잡아먹어.”

여우와 바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임 씨는 말할 수 없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여우가 공직에 있으면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다 해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우는 물론, 아내도 법인 카드로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한다고 지적했다.

바보를 뽑기로 마음먹었지만 임 씨의 걱정은 여전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그 밑에 사람이 일하다가 국정농단이 빚어졌다며, 윤 후보도 정치를 잘 모르기에 비슷한 일이 반복될까 고민이다.

그는 효창공원 시계가 고장난 지 오래인데도 관리하지 한다며 세금 낭비를 지적했다. “엉뚱한 게, 하지도 않아야 되는 데에 돈을 쓰고, 지자체에서 할 건 안 해. 이 공원 하나만 해도 그래. 내가 여기 겨울 내내 다녔거든? 소독약 하나 갖다 놓고 없어지면 안 갖다놔.”

그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언급하며 돈을 그냥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임 씨에 따르면, 공공근로 반찬 배달 근로자는 하루에 1시간이 걸리지 않는 일을 1주일에 2번, 1달에 8번을 하면서 월 27만 원을 받는다. 전에는 한 사람이 서너 번씩 맡아 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를 많이 주자며 사람당 횟수는 줄이고 사람은 늘렸다고 지적했다.

임 씨는 선거 당일에 투표할 계획이다. 사전 투표는 부정이 많아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고 했더니 임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나도 옛날에 태어났으면 3·1 운동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취재팀은 대선 전의 마지막 주말인 5일에도 효창동을 찾았다. 효창공원 안의 연못 근처에서 70대 여성 3명을 만나 벤치에서 얘기했다. 누구 뽑을지 정했냐는 질문에 이들은 대답을 꺼렸다. “이 사람도 싫고, 저 사람도 싫다.”

그중 한 명은 문재인 정부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촛불로 시작한 정권인데, 마지막엔 산불로 다 타고 있다.” “불로 시작하더니 불로 끝나려고 그러는 거야. 오죽하면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해.”

또 다른 한 명은 행정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의 남편은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다. TV토론에서 말 잘하는 모습을 보고 “똑똑해서 일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전부터 그렇게 봤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심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질 예정이다.

연못을 지나 백범김구기념관으로 갔다. 박정임 씨(74)와 이말순 씨(66)가 오른편 화단 바위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디자인의 모자를 썼다. 이웃이다.

박 씨는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찍는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가 싫어서도 아니다. 두 후보가 실력도, 하는 행동도 똑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새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점이 없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되든지 간에 사는 게 마찬가지야. 절대적으로 의지할 곳도 없어. 우리 나이에 무엇을 기대며, 무엇을 바라며. 절대 그런 거 없어.”

가장 심각한 문제로는 집값을 꼽았다. 박 씨에게는 자녀가 4명 있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없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없는 사람만 더 죽인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를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효창공원을 벗어나 옆길로 올라가면 숙명여대가 보인다. 주말이라 학교 안은 한산했다. 제2캠퍼스로 들어서자 도서관을 가던 학생 2명이 있었다.

김 모 씨(22)는 이번이 첫 대선 투표. 여성 공약을 가장 관심 있게 봤다. ‘무고죄 강화’는 시대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고 본다. 여성이 살기 무서워질 수 있다고 했다. 옆에 있던 김 모 씨(23)도 누구를 뽑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 역시 여성 공약을 두고 고민한다.

▲ 이나연 씨(왼쪽)가 이야기하는 모습
▲ 이나연 씨(왼쪽)가 이야기하는 모습

캠퍼스 앞 카페에서 만난 이나연 씨(25)는 대통령으로서의 능력과 청년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러면서 “밈(meme)을 사용한 국민의힘 정책 홍보 방식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고, 내용도 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선거 초기에는 이재명 윤석열 후보 모두 뽑고 싶지 않았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윤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 씨를 디지털성범죄근절 특위 위원장으로 임명하자 이 후보에게 기대를 걸기로 했다. 그러면서 여성가족부 폐지와 온실가스 감축 목표 하향이라는 윤 후보 공약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이 씨는 미디어학을 전공한다. 친구들과 정치 얘기를 많이 한다. 일부는 심상정 후보나 안철수 후보를 뽑으려다가 어쩔 수 없이 양당 후보에서 고르는 게 맞을지 고민한다고 전했다. 소신을 지키려다가 원치 않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서라고 한다.

안 후보의 단일화 소식에는 말이 빨라지며 분노했다. 친구 사이에서도 국민의 투표권을 무시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많다고 했다. “대선에서 두 번이나 사퇴하고 단일화하는 후보를 다음 대선 때 누가 뽑아줄 것이냐.” 이렇게 말한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이번이 첫 대선 투표. 이 씨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대통령을 희망한다. “선거 전에는 표를 모으기 위한 극단적인 공약이 많았다면 차기 대통령은 국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행보를 보였으면 좋겠다.”

▲ 효창동 주민 이야기
▲ 효창동 주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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