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오브서울 <용산팀>은 3월 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의 사전투표소(효창동 주민센터) 근처에서 유권자 35명을 만났다. 사전투표 첫 날이었다.

양병열 씨(83)는 오전 11시쯤, 전동보조기기를 타고 도착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유권자를 돕는다. 인터뷰를 요청하니 “초등학교도 안 나온 무식자한테 뭘…” 하고는 웃었다.

그는 지난 5년간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부동산이 문제라고 말했다. “내가 젊어서부터 쭉 살아와 봤지만, 부동산 마음대로 놔둬야 그래도 돈이 잘 돌아가요.” 인터뷰 중에 장애인 유권자가 도착했다. 양 씨는 인사를 나누고 사전투표소로 같이 들어갔다.

사전투표소를 나온 박종훈 씨(38)와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효창동에서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한다. 코로나 19 사태가 문재인 정부 임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해, 지난 5년을 평가하긴 애매하다고 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단일화는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양당 정치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19대 대선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한 표를 줬다. 소수 정당을 응원하며, 유의미한 제3지대가 나오기를 희망했다.

마지막 후보자 토론이 끝난 새벽, 안철수 대표의 단일화 결정은 큰 실망이었다. 4차례의 토론에서 완주 의지를 밝히고, 확실한 노선을 보여줬기에 납득하기 힘들다.

양당 후보의 통합 정부론에는 ‘격하게 말하면 개소리’라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대선 토론에서 했던 말에 공감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민주당이 사실 당장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근데 안 하고 있잖아요.”

2030이 보수적이라는 언론의 진단에 관해 묻자, 성별을 떠나서 부모 세대에 반기를 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부모 세대는 이미 기득권이라고 본다. 부모가 시켜서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듯, 지금의 청년도 기득권에 반기를 드는 것뿐이라고 했다.

다만 표현 방식이 과격화하는 점에는 문제를 느낀다. 정치가 너무 근엄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고 본다. 박 씨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정치를 너무 희화화시켜 걱정이라고 했다.

▲ 효창동 주민센터(사전투표소)
▲ 효창동 주민센터(사전투표소)

새마을금고 앞에서 만난 황현식 씨(40)도 양당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나 예전 같으면 통과하지 못했을 선을 억지로 밀어서 넘긴 느낌이다.

거기다가 배우자 의혹이 계속 나오니, 투표 의지가 떨어진다. “선거 참여할지 말지도 고민이에요. 아마 안 할 거예요. 누굴 찍어도 도움도 안 되고, 찝찝한 기분만 남을 것 같아서요.”

아래의 큰 골목으로 갔다. 길가 부동산 중개업소 앞, 사전투표를 하러 가던 김재희 씨(50)를 만났다. 진보 정권이 들어섰을 때가 보수 정권 때보다 더 합리적이고 투명해졌다며 말을 꺼냈다.

이재명 후보가 깨끗한 후보라곤 할 수 없지만, 준비가 덜 된 윤석열 후보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말하던 중 이 후보의 유세차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왔다. 잠시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진 않아요. 정말요.”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언급하자, 원래 그랬던 사람이니 그럴 줄 알았다고 짧게 답했다. 김 씨는 제3지대보다는 양당 체제의 지속이 더 안정적이라 본다. 사전투표소에 같이 가는 일행이 도착하자 그는 투표장으로 향했다. 

골목에는 이재명 후보 유세차가 있었다. 식사하러 갔는지 차 안에 사람이 없었다. 기호 1번을 외치는 유세송만 계속 나왔다. 근처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집으로 가던 조영자 씨(82)를 만났다. 할머니는 걱정이 된다며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아니 도장이 반절만 찍히더라고. 내가 볼펜만 잡으면은 손이 덜덜 떨려 가지고. 요게 옆으로 찍 그어져 버렸어. 그게 무효가 되느냐 아니냐. 그게 궁금해 죽겠어, 지금.”

할머니는 애가 타서 현장에서 물었다고 한다. 유효표일 거라는 답변을 듣고도 집으로 오는 내내 걱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 후보자란에 접선 또는 전사되었으나 어느 후보자에게 기표한 것인지 명확한 것’은 유효표로 인정한다.

할머니는 효창동에서 60여 년을 살았다. 노인 복지와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가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면 노인 복지 정책이 달라질까 걱정한다. 윤석열 후보보다는 이재명 후보가 낫다고 보는 이유다. “그 사람은 없이 살아봐서, 우리나라 일을 잘 볼 것 같아.”

원래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정의당을 가깝게 느꼈다. 고시원을 찾아다니며 없이 사는 사람 사정을 봐주고, 돕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근데 표가 하나밖에 없잖아. 그럼 못 하지.” 할머니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낮 12시 30분쯤, 파란 외투를 입은 선거운동원 2명이 이재명 후보 유세차 쪽으로 돌아왔다. 박주환 씨(37)는 공인중개사 일을 한다. 60대 여성 박 모 씨는 정당 활동을 오래 한 주부라고 소개했다. 둘 다 선관위에 등록하고 유세에 나섰다.

박주환 씨는 민주당원이 된 지 5~6년 됐다. 18대, 19대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를 뽑았다. 30대라서 집을 사기가 비현실적인 상황을 가장 문제로 본다. 이재명 후보가 청년을 위해 주택 공급을 늘릴 거라고 기대한다.

옆에 있던 여성은 1987년부터 민주당원으로 활동했다. 문 대통령 5년 동안 잘한 것도 있지만, 국민이 지적한 부동산 정책 실패에 공감한다. 이재명 후보가 행정 경험이 많아 경제 정책을 잘하고, 소년공 시절부터 어렵게 살아서 어려운 사람 처지도 잘 이해 한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대표는 이번 단일화로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본인이 그렇게 공언을 해 놓고, 지금이 몇 번째입니까. 그렇게 쏴대고 욕을 하고, 절대 단일화는 없다 그래놓고. 앞으로 그 정치인을 누가 믿겠습니까.”

▲ 카센터 주인 부부
▲ 카센터 주인 부부

근처 카센터에서는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노트북 화면을 보며 쉬고 있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니 손님이 곧 오면 바빠진다며 옆의 사무실에 들어가 보라고 했다. 안에는 사장 부부가 있었다. 주인 김민경 씨(60)는 카센터 영업을 하고 트로트 가수로 활동한다고 소개했다. 함께 있던 남편 임흥태 씨(60)도 트로트 가수라고.

김 씨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누구나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위해 추진력 있게 일할 사람이 이 후보라고 본다. 윤석열 후보에 대해 묻자, 정치 경험이 없어서 뽑긴 힘들다고 했다. 정치를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나라를 맡길 순 없다는 얘기.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앞서는 현상을 김 씨는 이해하지 못한다. 손님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남편 임 씨가 거들었다. “정권교체는 바라도 윤석열은 아니라 이거지.” 부부는 사전투표를 아침 8시 30분, 출근 전에 했다.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는 배신감을 느꼈다. “16시간 걸려서 외국에서 안철수 투표한 사람은 자기 표가 날아간 거잖아. 그런 사람은 안중에도 생각 안 하고. 이제 안철수 표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야.”

사전투표소 위쪽 오르막을 올라가면 효창공원이 있다. 공원으로 가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대학생이 투표소로 향했다. 사전투표 사무원으로 일하는 이수진 씨(20). 수줍게 웃으며 대화에 응했다.

학교에서 사무원 모집 안내를 보고 신청했다. 사전투표 기간에 출입구에서 체온을 체크하고 안내한다. 공동체 차원에서 중요한 일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대선 투표는 처음이다.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강한 제재를 취했으면 한다. 너무 도움을 주려고만 하기보다는 필요한 선에서 적대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얘기. 또 부동산 폭등으로 서울에서 젊은 세대가 자기 집을 장만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본다.

그는 윤석열 후보의 공약이 마음에 든다. 당선되면 추진력 있게 실천하면 좋겠다고 했다. 가족이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뉴스를 봐도 보수 정당의 안보 정책을 더 가깝게 느낀다. 안철수 후보는 합리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답했다.

첫 대선 투표에 임하는 마음을 묻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앞으로 제가 투표하는 거에 따라서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 바뀔 수 있으니, 좀 더 신중하고 공약도 잘 살펴서 투표할 것 같아요.”

공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중턱.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회사원 최병일 씨(44)를 만났다. 시간이 얼마 없다면서도 차분한 말투로 대화에 응했다.

그는 대출 이자율이 오르면서 경제적 부담이 늘었다고 했다. 전에는 10을 냈다면 지금은 12~13 정도를 낸다. 다들 부동산 이야기를 하지만, 경제 전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양당 후보만 놓고 보면 경제 정책은 이재명 후보가 낫다고 생각한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정치 경력이 전무하고 경제 정책에서 검증된 부분이 없다고 느낀다. 지지까지는 아니지만, 이 후보를 염두에 두는 이유다.

이 후보에게는 아쉬운 점도 있다. 너무 직선적이어서 주변을 둘러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고집대로 하다 보면 주변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의 갑작스러운 단일화는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안 후보 지지자들이 이 후보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제 국민의당 게시판만 봐도 그렇고. 다들 안철수에게 또 당했다고 하면서, 안철수 때문에라도 윤석열 안 찍겠다는 분들을 많이 봤거든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국회에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훨씬 많아서 갈등이 클 것으로 본다. 또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계속 앞섰기에,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선거조작설이 나오고 반대 진영이 들고 일어날까 걱정한다.

▲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들. 5명 중 4명이 촬영에 응했다.
▲ 공원에서 만난 할머니들. 5명 중 4명이 촬영에 응했다.

효창공원 앞 나무에 작은 태극기들이 바람에 날렸다. 나무 의자에 둘러앉아 할머니 5명이 이야기를 했다. “정치 그런 건 말하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몇 마디 더 나눴더니 토론의 장이 됐다.

모두 동네 친구들이다. 이야기는 주로 석 모 씨(85)와 장 모 씨(74)가 주도했다. 효창동에서만 60년을 살았다는 석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정치야 잘하는 사람이 좋지, 못하는 사람이 좋겠어? 우리나라 부자 되게 하는 대통령을 뽑아야지.”

뉴스나 대선 토론을 봤냐고 묻자 ‘아이고’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양당 후보 둘이 맨날 물어뜯는데, 이번 후보들은 더하다고 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5년 동안 잘한 건 별로 없다고 장 씨가 말하자 너도나도 추임새를 넣었다. 경제가 어렵고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랐다, 서민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 “우리 세대까지는 괜찮은데, 우리 애들 세대가 문제라니까. 애들이 좀 편하게 할려면 정권을 바꿔야 되는 거지.”

▣ 이연우 기자가 이 기사를 같이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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