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3번 출구를 나와서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경사진 골목 사이로 집과 가게가 미로처럼 보인다.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실향민이 모여서 생긴 동네. 스토리오브서울 <용산팀>이 3월 3일 이곳을 찾았다.

주택을 개조한 카페가 보였다. 영업 전이지만 현예은 씨(24)는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3년 전, 경기 용인시에서 용산2가동으로 이사 왔다. 용인시에 살던 시절, 가까운 성남시장이던 이 후보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소식을 들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첫 대선이라서 투표할 생각이다. “올해 첫 투표여서. 첫 투표니까 열심히 해야지.”

대통령의 자질을 물었다. 현 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요. 국민을 좀 더 생각하는, 국민의 시선으로 보는. 그래야지, 좀 더 발전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은 한 명이고 국민은 엄청 많은데, 우리 목소리를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야지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해요.”

언덕 중턱의 편의점에 들렀다. 아르바이트생 오가희 씨(24)는 무효표를 던지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후보와 공약을 잘 모른다. 하지만 투표는 하고 싶어 한다.

오 씨는 지난 5년간 가장 나아진 점으로 최저시급의 상승을 꼽았다. 하지만 물가가 함께 올라 큰 의미는 없다고 했다. 편의점에는 있는 상품의 가격표를 바꿀 때마다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꼈다. 정권이 바뀌면 시급이 바뀔 수 있다고 걱정했다.

골목 중간에 남성 셋이 보였다. 경광봉을 들었다. 공사 현장에서 차량 움직임을 유도하는 신호수 업무를 한다. 그중 한 명인 김 모 씨(78)는 주 2일 택시를 운전하고, 남은 날은 신호수로 일한다.

김 씨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경륜이 이유다. 윤석열 후보는 “도끼로 닭 잡는 식”이라며 경험이 없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소식을 언급했더니 지조가 없다며 욕설 섞인 비난을 내뱉었다.

문재인 정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족하더라도 뭔가 하려는 모습이 보인다는 얘기. 김 씨는 앞으로 큰 혼란 없이 평탄하고 순조로운 미래를 바란다. 부조리와 혼란 없이 안정된 삶. 그의 희망이다.

보성여·중고를 지나 언덕을 올라갔다. 식당이 보인다. 사장 유영분 씨(63)는 가게 앞의 천막을 정리하고는 플라스틱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식당을 한 지 20년이 넘었다.

누굴 찍을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했다.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묻자 유 씨는 주차장을 먼저 꼽았다. 이어서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괜찮은 대통령의 기준은 생활 밀착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2015년, 실내 흡연이 금지되자 매우 만족했다.

유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기를 포대기로 감싸 안은 중년여성이 다가왔다. 이경래 씨(59). 봉제 일을 하다가 요즘은 일감이 없어 쉰다. 그 역시 유 씨와 함께 주차난을 언급했다.

집값의 급격한 상승을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전셋집에 사는 딸을 걱정했다. “1억 모아놓고 집 사려고 해도 자고 일어나서 뉴스 보면 오르고 하니까 살 수가 없는 거죠.” 집 없는 서민이 대출받지 않아도 편히 사는 세상을 바란다.

아직 누굴 찍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믿고 찍으면 다 똑같아진다고 했다. 집값과 물가를 안정시킬 후보를 원하지만 그럴 만한 후보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이상기 씨(65)는 30년 넘게 용산2가동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한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 보수 성향이라고 밝혔다. 18대 대선에서는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19대 대선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선택했다.

매장 한쪽에 TV 뉴스를 틀어둔다. 뉴스에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소식이 나오자 이 씨는 불만을 드러냈다. “맨날 철수만 하니. 하려면 진작 했어야지. 저거 안 해도 윤석열이가 돼.”

충청향우회라고 적힌 달력이 벽에 보였다. 이 씨는 충청향우회장이다. “잔치 있으면 다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동네야, 이 동네가. 근데 선거 때는 갈려 딱. 전라도는 저기(민주당), 경상도는 한나라당.”

신흥시장 안쪽에 들어서자 공사 소리가 들렸다. 취재팀은 식당 린자면옥 문 앞에서 바텐더 유지원 씨(30)를 만났다. 그는 윤석열 후보를 뽑을 생각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에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유 씨는 집이 여러 채 있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썩을 놈”이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종합부동산세를 많이 냈다. 주택이 여러 채 있을 뿐, 잘 사는 것은 아니라며 억울해했다.

소상공인 대출 정책도 비판했다. 정부가 영업 제한을 강제했는데 보상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정책이 모순이라는 얘기. 아무에게나 돈을 뿌리는 정책은 잘못이라며 피해 수준에 따라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린자면옥에서 북쪽으로 건물 2개를 지나치면 케이크 전문점이 있다. 오븐에 빵을 굽던 제과제빵사 신지영 씨(24)를 만났다.

뽑을 후보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특히 이재명 윤석열 후보에 부정적이다. “(이 후보 주변에서) 자살로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그게 좀 의문스럽죠.” 윤 후보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하기 전에는 그를 뽑을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격차가 너무 커 이 후보와 윤 후보 중에서 뽑는 게 더 나을까 고민했다.

신 씨는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 “반려동물이 한국에서 물건 취급을 받아요.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윤 후보의 반려동물 공약이 마음에 들지만 공약을 지킬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

계단을 올라가 신흥시장에서 나왔다. 여기서 소월로20길을 따라 내려오면 해방교회가 보인다. 주차관리를 하던 박일갑 씨(66)는 정통 보수라고 소개했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북한과 통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그는 북한 정권을 유괴범에 비유했다. 정권이 주민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뜻. 김대중 전 대통령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후보까지 모두 같다고 본다.

박 씨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 특히 선제타격 발언을 마음에 들어 한다. “핵탄두가 서울까지 날아오는데 1분 만에 안 걸리니 다른 방법이 없다.”

▲ 카페 주인 김석 씨
▲ 카페 주인 김석 씨

교회 근처의 카페 ‘콩밭커피’에 들렸다. 사장 김석 씨(42)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이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진보신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다. 녹색당에도 가입했다가 탈당했다.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다. 사표론 얘기가 나오자 최선이 있는데 차악을 뽑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어떤 후보가 싫어서 반대 라이벌을 찍으면 민의가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당선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후암동 108계단을 올라가기 전, 마을 라디오인 용산FM 간판이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니 용산FM 황혜원 방송국장(57)이 있었다. 그는 일단 들어오라고 했다.

황 국장은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다.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나은 후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부터 진보신당, 정의당까지 계속 지지했다. 정의당 당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의 위성 정당을 언급하며 제3의 세력이 성장할 수 없어서 정치가 거대 양당 중심으로 간다고 비판했다. 사표를 걱정해 양당에 표가 몰리는 현상을 막으려면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 용산FM 황혜원 방송국장(왼쪽)
▲ 용산FM 황혜원 방송국장(왼쪽)

안철수 대표의 단일화 결정에는 부정적이었다. 계속 버텼으면 1, 2번뿐 아니라 다른 후보가 자리 잡는 정치 환경이 될 수 있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심 후보에게도 단일화 압박이 오지만 지향성이 다른 당을 향한 단일화 압박은 정당치 않다고 했다.

오토바이 수리점 사장 유광호 씨(63)도 양당 독식 체제를 비판했다. 그는 군소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안타까워했다. “그 사람들도 바보 아냐. 다 대학교 이상 나오고 물먹고 한 사람인데.”

양당 체제를 비판하지만 지지할 후보를 정하진 못했다. 1, 2번을 제외한 후보를 찍어면 당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 용산2가동 주민 이야기
▲ 용산2가동 주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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