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오전 5시. 택시를 타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랐다.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주민센터 앞에 멈췄다. ‘용산2가동 사전투표소’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사전투표 30분 정도를 앞두고 어느 여성이 도착해 사진을 찍었다. 다가가서 대화를 요청했더니 그는 투표 참관하러 왔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오전 6시 2분. 어느 남성이 투표소를 가장 먼저 나왔다. 김민수 씨(53). 바쁘다며 지나가려 했다. 용산2가동에서 5일에 첫 투표한 시민을 만나려고 새벽부터 나왔다니까 발걸음을 멈췄다. 이른 시간에 나온 이유를 묻자 “(국민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죠”라고 말했다.

김 씨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마음에 다 들지는 않지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싫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괜찮다고 생각한다.

“매스컴에서 (문재인 정부가) 안 좋다고 얘기하는 거지, 문 정부 들어 국력도 더 좋아진 것 같다. 수출 성과도 좋고 경제 성장도 했다. 또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중립국 지위를 확실히 하는 느낌이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문재인 정부의 좋은 정책은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성향이 다르다고 전임자 공적을 지우는 행태는 소모적이라는 얘기.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은 실리적으로 행동해야지, 정치적 이유로 좋은 정책을 끊는 건 국민에게 손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단일화를 ‘바보짓’이라고 표현했다. 안 대표는 단일화가 습관이라며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용산2가동 사전투표소. 투표 1시간 전이다.
▲ 용산2가동 사전투표소. 투표 1시간 전이다.

오전 6시 47분. 사전투표를 하고 심혁택 씨(71)가 출근하려고 마을버스 정류장에 줄을 섰다. 언론사에서 30년 일하고 퇴직했고, 병원에서 환자 이송 업무를 10년째 한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냐고 물었더니 심 씨는 “2번. 1번은 전과 4범”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5년 동안 운동권이 공정하지 못했고, 특히 조국 사태에 실망했다고 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단일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심 씨는 “나이 먹은 사람은 어쩔 수 없는데 젊은 사람은 잘살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전국적으로 아파트값이 배 이상 올랐다”면서 차기 정부가 주택 문제를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주민센터 맞은편에 미니스톱 남산소월점이 있다. 김종현 씨(53)는 여기서 밤에 일한다. 근무를 마치고 사전투표를 했다. 취재 시작 전, 그가 일하는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면서 얼굴을 터서인지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김 씨는 날이 춥다며 편의점 건물 2층으로 안내했다. 그는 용산2가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편의점에서는 10년째 일한다. 한때는 술집을 운영했다.

그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도 자영업자가 힘든 건 문재인 정부의 탓이 아니라고 했다. “보수 때는 경기 좋았던 것처럼 현혹하는데 그때도 똑같이 힘들었다. 자영업은 원래 경쟁이 치열하고 힘들다. 힘들다고 집권 세력을 공격하는 건 문제다.”

김 씨는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준비한 사람과 얼떨결에 나온 사람은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용산2가동을 가리키는 해방촌 민심이 어떤지를 물었다. 그는 “피난민이 넘어와 사는 동네다 보니 냉전에 고착화됐다. 내 나이부터는 다르지만,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향이 이북인 분이 많아 안보 보수가 많다”고 설명했다.

8시 16분. 편의점 앞에서 만난 30대 여성 김정민 씨는 서울 마포구 주민이다. 직장이 용산2가동이라 출근길에 사전투표를 했다.

원래 안철수 대표를 뽑을 생각이었다. 정치 인맥이 없어서 오히려 소신대로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지인도 대부분 안 대표를 뽑으려 했다고 한다. 한국이 다당제로 바뀔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윤석열 후보로 단일화가 돼서 아쉬워한다.

임영란 씨(66)는 투표하고 할인 마트로 장을 보러 갔다. 윤석열 후보 지지자. “민주당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금이 너무 많이 올랐다고 했다.

대장동 수사가 미진한 점도 꼬집었다. “우리같이 무식한 사람도 (이 후보가) 몇 천 억 해먹은 거 다 알아. 도둑놈 찍어준다는 거는 말이 안 된다. 윤 후보가 정치 초년생이지만 깨끗하니까 믿는다. 대장동을 철저히 수사할 것 같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 대해서는 “대통령 할 만한데 표가 안 가니까…”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임 씨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에 표를 던졌다고 했다. 윤 후보보다 나은 면이 있다면서도 단일화에 대해서는 “(안 대표가) 너무 고맙지”라고 말했다.

임 씨에게도 지역 민심을 물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국민의힘 찍으려는 주민이 많다고 했다. 김종현 씨와는 다른 얘기. 윤 후보 지지자들이 귀를 여는데, 이 후보 지지자들은 다 귀를 막는다면서 “누구를 지지해도 귀는 항상 열어야 해”라고 덧붙였다.

“여기 보수 표밭 아니에요? 왜 초박빙이지?”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자 박희찬 씨(36)가 의아해했다. “무식한 대통령은 좀 그렇잖아요”라면서 이재명 후보가 정책적으로 제일 낫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경험도 그가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 윤 후보는 복수심에서 나왔지, 정책이나 생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 정부가 정치 보복보다는 (상대편과) 화해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를 바란다. 진보와 보수 모두 나라에 필요하지만, 지금의 진보와 보수는 기득권일 뿐이라고 말했다.

▲ 노기만 씨의 사전투표 홍보활동
▲ 노기만 씨의 사전투표 홍보활동

용산02 버스를 타고 후암동종점 정류장에 내렸다. 용산중과 한국에너지재단 앞에서 사전투표 홍보가 한창이었다. 파란색 고어텍스 점퍼를 입은 노기만 씨(61)가 보였다.

그는 자원봉사자다. 거리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고 산 이재명 후보의 인생이 아름답다. 인간 승리 아니냐. 그런 사람이 큰 꿈을 갖고 일하겠다는 게 고맙고 좋다.”

그는 윤 후보와 안 대표의 단일화가 둘에게 마이너스라고 본다. 안 대표를 찍은 재외국민 표를 사표로 만든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가 다당제에서 연합정부로 선회한다는 건 양당 체제로 돌아가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이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3월 7일 오후 5시. 다시 찾은 용산2가동은 한산했다.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에서 해방촌으로 올라가는 길에 백발의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그는 “친구들과 만나 보면 다 윤석열이다. 6·25 전쟁한 사람은 다 (이 후보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질문이 많았지만 할아버지는 차를 빼야 한다며 정중히 거절하고 떠났다. 취재팀은 할아버지에게 차를 빼달라고 말한 남성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박명현 씨(70). 시간이 없다면서도 응했다.

박 씨는 대한민국 지도자라면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재명 후보는 성남시장을 잘했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본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검사 생활만 해서 정치를 모른다고 했다.

박 씨는 안철수 대표와 잘 아는, 친한 사이라고 밝혔다. 단일화를 악재라고 표현했다. “호남 사람들이 사전 투표율이 50%가 넘었다. 다 돌아선 거다.” 그는 최근 이재명 후보의 용산역 유세 현장을 갔다. 2030 세대가 60~70%, 나머지가 50대 이상이라고 전했다.

▲ 주민이 손으로 V 표시를 하며 국민의힘 당원에게 다가가고 있다.
▲ 주민이 손으로 V 표시를 하며 국민의힘 당원에게 다가가고 있다.

주민센터에 갔더니 김정재 용산구의회 의장 등 국민의힘 당원들이 막판 유세를 벌였다. 초등학생 3명이 유심히 지켜봤다. 모두 6학년. 용암초·이태원초·한남초에 다닌다. 용암초 학생은 “부모님이 (윤 후보를) 뽑겠다고 하신다”면서 사회 시간에 대통령의 능력과 지지율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박주언 씨(28)는 윤 후보를 뽑을 생각이다. 항공업에 종사하는데 코로나 19로 타격을 많이 받았다. 그가 생각하는 지도자는 전문가의 말을 수용하는 사람이다. “제가 지지하는 분은 사법 전문가라서 마음이 간다.”

▲ 용산2가동 주민 이야기
▲ 용산2가동 주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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