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실핏줄처럼 끊임없이 이어진 곳. 서울 용산구 보광동이다. 뒤에 남산이 있고 아래로 한강이 보인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 동네 대부분이 언덕 위에 있다.

우사단로에 이슬람 중앙성원이 자리해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자주 보인다. 골목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안내문이 많다. 한국어 영어 아랍어로 만들었다.

이태원 관광특구와 가까워서 200세대가 많이 찾는다. 도로는 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오토바이와 차가 뒤섞이면 경적이 크게 울린다. 스토리오브서울의 <용산 2팀>은 3월 4일 낮, 보광동 언덕을 오르며 유권자를 만났다.

▲ 서울 용산구 보광동 골목길
▲ 서울 용산구 보광동 골목길

골목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선거운동원과 마주쳤다. 김형원 씨(65)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주민과 인사를 나눴다. 40년 동안 보광동에 산다. 다양한 지역에서 올라온 사람이 뒤섞인 동네라서 양당 지지자가 골고루 분포한다고 말했다.

보광동에서 20년 동안 가게를 운영한 40대 남성. 보광동 토박이인데 경기도로 최근에 이사했다. 역대 대선의 초접전 지역이라고 말했더니 “여기 국회의원 (국민의힘) 권영세잖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옛날에는 민주당이 우세였는데, 요즘은 국민의힘 지지자가 더 많다고 했다.

시장 상인들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반감이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가장 힘든 점은 자영업 손실 보상 제도로 꼽았다. 그가 종사하는 업종은 인원 제한 대상이 아니라서 보상받지 못한다.

▲ 박은식 씨(왼쪽)와 취재팀이 이야기하는 모습
▲ 박은식 씨(왼쪽)와 취재팀이 이야기하는 모습

박은식 씨(56)는 25년째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군대에서 첫 투표를 했는데, 중대장 앞에 가서 해야 했어. 투표용지에는 후보 한 명밖에 없더라고.” 그 경험이 뇌리에 박혀서 보수 후보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울시가 아파트 35층 제한 규제를 풀면 개성 없고 삭막한 동네가 될까 봐 걱정이다. “북한산도 보이고, 관악산도 보이고, 한강도 보이고 해야지. 아파트 벽만 보이면 그게 집인가.”

보광동에서 대를 이어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40대 남성. 젊은 사람이 많이 나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동네가 낙후된 편인데 재개발은 지지부진하다. 겨울 동안 보광동에 이사 오기 위해 문의한 사람이 1명도 없다.

전에는 카페거리 등 장사가 잘되는 곳이 있었지만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보광동 인구는 2012년에 1만 7473명이었다. 2022년 1월 기준으로는 1만 3442명이니 20% 이상 줄었다.

취재팀은 사전투표가 한창인 보광동 주민센터를 오후 2시에 갔다. 주차장은 오가는 차량으로 북새통이었다. 5층에 투표소가 있어서 엘리베이터 앞의 줄이 길었다.

▲ 서울 용산구 보광동 주민센터의 사전투표소
▲ 서울 용산구 보광동 주민센터의 사전투표소

처음 만난 우지숙 씨(54)는 다음 세대를 위해 투표했다. 다음 정부는 소상공인 지원을 우선으로 하기를 원한다. 그는 양당 위주의 정치가 신물이 난다고 했다. “다당제의 희망이라고 생각한 안철수 씨가 단일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받았어요.”

그는 세월호 침몰을 보고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느꼈다. 이후로 투표에 적극 참여했다. 민주당에 실망스러운 점이 많지만, 국민의힘이 충분히 쇄신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서민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복지국가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김미혜 씨(31)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 지지자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보고 위기감을 느껴 투표할 후보를 고민했다. 그는 적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이라는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일에서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다.

마을버스 정류소에서 대학생 김민재 씨(20)를 만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투표권을 행사했다. 공약을 얼마나 잘 이행할지가 선택 기준. 나라를 5년간 이끌 사람을 신중하게 고민했다.

김종식 씨(60)는 정권교체를 원한다. 부동산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새 정부는 지금 정부의 실패를 만회하고, 집을 사기 위해 20년 동안 돈을 모으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바란다. 보광동 재개발에 관심이 많아 빨리 삽을 뜨되, 닭장처럼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른 집값은 박계승 씨(59)의 표심에 영향을 주었다. 차기 정부가 해결할 과제로 임대주택 정책을 콕 집었다.

“그 임대주택, 의무 임대 기간 10년은 너무 긴 거 아냐? 한 5년으로 줄였으면 좋겠어요.” 같은 말을 세 번씩 반복했다. 윤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해서 윤 후보가 승리한다고 본다.

주민센터 뒤편으로 보광동 골목을 오르는 뒷길이 이어진다. 투표를 마친 30대 신혜원 씨를 만났다. 곧 결혼하고 보광동을 떠날 예정이다. 아이 낳고 싶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성인이 되고 모든 투표에 빠지지 않았다.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자부심이 항상 있었는데, 이번에는 허탈한 마음이 크다. 미래를 맡길 후보가 없어서다.

그는 양당 모두 네거티브 공방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가 위급한 상황인데, 서로를 깎아내리기 바쁘다는 말. 위기 상황의 대처 방안,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가 없다. “정치는 희망을 줘야 하는데, 누구 하나 투명한 사람이 있나?”

투표는 국민이 반드시 행사해야 하는 권리. 박형노 씨(73)의 생각이다. 단일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물었다. 취재팀 말이 끝나기 전에 윤 후보에게 악재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박빙이지만, 이 후보에게 승리가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한 사회를 실현할 적임자라고 본다.

바람이 거세고 흐린 날씨에도 투표 행렬은 이어졌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인이 보였다. 그는 계단 옆의 손잡이를 잡고 주민센터로 천천히 올라갔다. 도움을 받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힘들게 내디뎠다. 한 표를 던지려고.

▲ 보광동 주민 이야기
▲ 보광동 주민 이야기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