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우리가 건물을 짓는 것처럼 지어져야 하며, 역사적 기념물들을 보존하는 것처럼 보호되어야 합니다(Nature has to be constructed, the way we construct buildings, and we need to preserve nature, the way we preserve historical monuments).”

세계적인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2021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하 서울비엔날레)의 소개영상에서 했던 말이다. 건축계에 40년 동안 몸담으며 다진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페로는 “자연은 인류세의 한 부분으로 점차 인공적인 풍경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의 지형에 대해 속속들이 알며, 더이상 미지의 야생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재는 자연을 소유하면서 동시에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 시대이고, 그것이 인류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 도미니크 페로(출처=Perraultarchitecture 홈페이지)
▲ 도미니크 페로(출처=Perraultarchitecture 홈페이지)

그는 3회째 열린 서울비엔날레의 총감독을 맡았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제시하고 출품작을 검토했다. 서울시와의 건축 협업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서울과 약 20년 동안 인연을 맺었다.

서울비엔날레는 2021년 9월 16일~10월 30일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개최됐다. 53개 나라, 112개 도시, 190명의 건축가가 참여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으로 72만 명이 다녀갔다. 오프라인 관람객은 12만 명으로 2회(2019년)와 비슷했다.

페로와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페로, 그리고 서울비엔날레에 참여한 다른 건축가의 작품을 따라가면서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읽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건축에서의 뚜렷한 방향성과 확고한 가치관이다. 서울비엔날레의 주제는 <크로스로드: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가>였다. 질문에 대한 답을 ▲ 지상과 지하 ▲ 유산과 현대 ▲ 공예와 디지털 ▲ 자연과 인공 ▲ 안전과 위험이라는, 대립적이지만 상호보완적인 주제로 설명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페로는 2021년 9월 <디자인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장배경 및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1953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미술을 공부하고, 10년 정도 그림을 그리다가 가족의 권유로 건축에 발을 들였다.

프랑스 국립도서관(1995) 설계로 30대 초반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독일 룩셈부르크에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대표작은 베를린 올림픽 벨로드롬과 수영장(1999) 룩셈부르크 유럽 사법재판소(2008) 오스트리아 비엔나 DC1 타워(2016) 등이다.

▲ 베를린 올림픽 수영장(출처=Perraultarchitecture 홈페이지)
▲ 베를린 올림픽 수영장(출처=Perraultarchitecture 홈페이지)

페로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활동했다.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로 중국 그린 한단 성명서(2020) 일본 후코쿠 라이프 오사카(2010)가 있다.

국내에서는 이화여대의 ECC(Ewha Campus Complex) 설계로 이름이 더 알려졌다. 2008년 서울시 건축상을 받은 건물이다. 전남 여수의 예울마루 공연장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2023년 완공될 서울 강남 지역의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또 프랑스의 시테섬 마스터플랜, 2024 파리 올림픽 경기장의 설계도 담당한다.

▲ 여수 예울마루 공연장(출처=GS칼텍스)
▲ 여수 예울마루 공연장(출처=GS칼텍스)

페로는 파리 국립토목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에 이어 도시계획과 역사를 공부하며 얻은 학문적 식견이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쳤고, 건축물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예를 들어 그는 프랑스국립도서관을 건축하면서 회랑이 정원을 중심으로 안쪽을 향하는 양식, 그리고 대형 산책로와 타워가 넓은 공공공간으로 열리며 바깥쪽을 향하는 양식을 구사했다. 19세기 파리 타운홀의 개방된 형태와 18세기 파리 수녀원의 폐쇄적 형태를 연구한 덕분이다.

“우리에게는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이 짓기보다는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하려면, 유산과 현대의 연결 지점이 어우러지게 융합되도록 기존의 것을 보수하고 재생해야 한다. 저는 이 지점에서 건축의 가장 숭고한 의미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가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지하 공간의 활용 가능성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페로는 건물을 4개의 면과 지붕으로만 보지 않았다. 지면을 ‘제6의 면’이라고 부르며 지하 공간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가 이미 확장될 대로 확장됐기 때문이라고 페로는 말한다. 서울비엔날레 소개 영상에서 지상과 지하의 공간을 연결해 서로 교차하고 함께 기능하도록 해야 하며,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칙칙하고 어두워 생활하기에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됐던 지하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의 건축물에서 지하 공간은 통유리창을 통해 지상의 자연광을 받아들인다.

실제로 이화여대 ECC는 지하 4층까지 햇볕이 들어온다. 지면 아래 구축한 공간에 빛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지하 공간은 어둡고 습하다는 통념을 바꾼 사례다.

▲ 이화여대 ECC 지하 1층에서 내다본 풍경
▲ 이화여대 ECC 지하 1층에서 내다본 풍경

페로가 맡은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는 2023년 완공된다. 강남의 봉은사역과 삼성역을 잇는 영동대로에 자리 잡는다.

이곳에도 자연을 건설하고 지하 공간을 활용했다. 대로 아래로 KTX를 포함해 철도 노선 5개가 지나가는 환승센터의 지하 4층까지 자연광이 들어간다. 지상에는 광장(길이 500m, 폭 50m)이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녹지공간처럼 생긴다.

▲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지하(왼쪽) 및 지상 공간(출처=Perraultarchitecture 홈페이지)
▲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지하(왼쪽) 및 지상 공간(출처=Perraultarchitecture 홈페이지)

그가 강조하는 지속가능한 건축은 크로스로드의 5가지 주제와 함께 도시의 회복력(resilience)으로 설명된다. 페로는 지금이 회복력을 지닌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 지리적 경계를 허물고 지식, 비전, 기술, 그리고 책임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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