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짬뽕집 앞에서 중년 남성 두 명이 담배를 피웠다. 3월 1일 오후 5시, 이른 저녁인데 한잔 걸친 듯 얼굴이 벌겋다. 친구 사이냐고 묻자 누군가 “친구로 보입니까? 인터뷰 안 하렵니다”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오래도록 우정을 쌓았지만 정치 문제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쪽이 의견을 말하면 다른 한쪽은 팔짱을 끼고 외면하거나 고개를 저었다. 지난 대선 때도 각각 문재인 홍준표 후보에게 투표했다.

나이가 많은 남성(61)은 건설회사에서 30년 일하고 퇴직했다. 건설 쪽 생리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가 보기에 대장동은 99.99%,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잘못이다. 그래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뽑을 생각이다. “박근혜 구속해도 그 돈 다 어딨는지 모르죠? 이재명도 똑같을 겁니다.”

나이가 적은 남성(51)은 방송국에서 일반직으로 근무한다. 윤 후보에 반감이 강하다. “그 사람(윤석열 후보)은 동네 이장도 한 번 안 해본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순 법으로만 (일)해왔지 정치는 하나도 모른다고요.”

다음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도 각각 달랐다. 51세 남성은 독단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르면 수석보좌관이나 그런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으면 돼요. 근데 독선적이면 그게 안 되죠. 그 사람(윤 후보)은 그런 사람이야.”

내내 눈을 흘기다가 61세 남성은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슨 정치보복? 잘못했으면 감옥에 가야지.”

“이제 그만 들어오셔서 짬뽕 드세요.” 10분 정도 뒤에 짬뽕집 주인이 바깥으로 고개를 빼고 말했다. 열띤 논쟁에 격앙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둘은 화기애애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 안양4동 거리
▲ 안양4동 거리

스토리오브서울의 <안양 C1팀>은 안양4동의 붐비는 시장을 지나 주택가로 갔다. 2차 성원아파트, 다세대 연립주택, 상가가 많다.

성원아파트 앞에서 만난 장순복 씨(67)는 양손에 장 봐온 식품을 들고 있었다. 그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 “1번(이재명 후보)이 너무 거짓말이 많은 것 같아 가지고요.” 동시에 장 씨는 서로를 헐뜯는 대선 정국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글쎄요. 다 달라요. 우리는 아들하고도 다르더라고요.” 동네 민심을 묻자, 장 씨는 고개를 저었다. 동네에서 정치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지 후보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직장인 아들(42)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귀가하던 60대 2명의 의견도 갈렸다. 누구는 두 후보 모두 미워서 투표 안 하고 싶다고 하다가 1번에 투표하겠다고 했다. 다른 주부는 2번에 투표하겠다고 했다.

바라는 점도 달랐다. “시행하면 책임을 지는 대통령이 필요해요.” 이 후보를 찍겠다는 주부는 끝까지 가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윤 후보를 찍겠다는 주부는 웃으면서 말했다. “교도소 안 가는 대통령.”

주택가의 포토카페로 갔다. 한쪽 벽면에 포토 머그컵과 유리 액자가 보였다. 가수 임영웅 사진이 인쇄된 상품. 사장(55)은 손님들 논쟁을 자주 지켜봤다고 했다. “김부선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고, 너는 그걸 믿냐 그러시는 분도 있고 그래요.”

사장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경기 성남시장 때부터다. 시원시원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유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이 후보 논란을 안타까워한다. “이제 잘하고자 한 건데 단면만 보고 몰아붙이는 것도 좀 그렇죠.”

가족의 의견도 다소 갈린다. 사장 부부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 딸도 같다. 하지만 아들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가족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다. “나한테 정치(의견) 주입하지 말라고 그래요. 각자 소신 있게 가자고요.” 부부 의견이 같긴 하지만 서로 강요한 결과는 아니라고 했다. 자녀들과 정치 얘기를 나눌 때 차이를 실감한다.

“우리 세대는 그동안의 역사를 봤을 때, 절대 국민의힘이 되면 안 된다 이런 느낌이에요. 여태 약자의 편에 썼던 민주당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얼굴이니까요.” 자녀들은 과거는 과거고 정책을 보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해질녘 오순도순 걸어오는 부부를 만났다. 팔짱을 꼭 끼고 대화했다. 골목길에서 만난 대선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남편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 40대 후반으로 기계설비 일을 한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 당시 보여준 추진력에 끌렸다. “정치 진영의 눈치를 안 보고 할 일을 하는 게 보통의 정치인과는 달라요.” 아내도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똑같아요.”

남편은 양당 체제 문제를 짚었다. 다른 당의 발목을 잡아서 이기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며, 정책정치를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치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하자, 아내는 “집에서 그런 거(정치뉴스) 밖에 안 본다”며 웃었다.

주변 분과 의견은 같냐고 묻자,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엄마, 아빠, 아버님, 어머님 다 다르죠!” 이번 명절에도 (정치에 대해 부모님과) 말은 했는데 목소리가 커졌다고 남편이 전했다.

▲ 삼덕공원 원형광장
▲ 삼덕공원 원형광장

다세대주택 사이를 걸으면 삼덕공원이 보인다. 공장 굴뚝 모양의 조형물이 원형광장에 있고 아래로 안양천이 흐른다. 주민들이 공원길에서 산책하거나 원형광장에서 장기를 뒀다.

공원길 언덕 위에 민숙자 씨(84) 김동길 씨(76)가 보였다. 둘은 재혼 부부다. 김 씨는 서울에 살다가 민 씨를 따라 안양으로 왔다. 안양4동이 대선에서 중요한 지역이라고 했더니 민 씨는 활짝 웃었다.

민 씨는 안양에 50년째 사는 토박이. 안양의 역사에도 능통했다. 삼덕공원은 삼덕제지(현 삼정펄프)가 있던 곳이라고 말했다. 삼덕제지 안양공장이 있던 곳에 삼덕공원이 생겼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굴뚝 모양의 조형물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대선에 대해 묻자 민 씨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손을 저었다. 김 씨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브이(V)자, 즉 2번을 표시했다. “난 항상 2번.”

말이 끝나자마자 민 씨는 “(남편이랑) 맨날 싸움해. 난 항상 1번”이라고 말했다. 민 씨는 이재명 후보가 유식하다고 생각한다. 형수와 관련된 논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더욱더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 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카카오톡으로 전달받은 인터넷 링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이 같은 연세대 김동길 명예교수가 SNS에 올린 게시물이었다.

김 씨는 말했다. “아휴 그렇다고 쳐. 그런데 이 양반(김동길 교수)이 얘기한 게 있어. 이래서 1번은 안 된다니까” 민 씨는 고개를 획 돌리고 혀를 차며 말했다. “저 양반이 저래요.”

▲ 김동길 씨의 휴대폰 화면
▲ 김동길 씨의 휴대폰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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