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오류1동의 오류시장 상가는 대부분 칠이 벗겨지고 판자로 덧댄 상태였다. 그래도 바깥쪽 골목에는 생기가 돈다. 스토리오브서울의 <서울 A3팀>은 2월 16일~19일 시장 근처 골목에서 유권자 67명을 만났다.

식당에서 손님의 식사 소리가 들렸다.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대호집. 주인 조순열 씨(70)는 오류1동에서 50년째 장사한다. 인터뷰 요청에 흔쾌하게 응했다. 지지 후보를 묻자 망설임 없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18~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었다. 문 대통령의 집권 5년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부동산을 못 잡아서 아쉽지만 다른 건 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방역 정책도 다른 나라보다 성공적이라고 본다.

그는 이재명 후보 지지 이유로 안정성을 꼽았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 보복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경남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사람이 첫째가 안정이지. 뒤집어지면 안 돼. 노무현이가 죽어서, 가서 인사도 했지만…그렇게 되면 안 돼요.”

▲ 오류시장 전경(왼쪽)과 식당 근처 골목
▲ 오류시장 전경(왼쪽)과 식당 근처 골목

대호집에서 나와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건강기능식품 가게의 문을 두드렸다. 사장(57)에게 오류1동이 초접전·족집게 지역이라 소개하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기사가 나오면 꼭 보겠다며 어서 질문하라고 했다.

그는 정권교체를 원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생각도 지지하지만, 사표가 될지 몰라서 투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가능성이 더 높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주려는 이유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할 것 같지만, 한 번 바뀌어야지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겁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럼 잘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하는 거죠.”

그는 정치적 양극화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자기 생각만 주장하고,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이번 대선에서 보인다는 얘기다. 나라가 이쪽저쪽으로 갈라져 속상하다고도 했다. 친구나 가족과도 정치 이야기는 잘 안 꺼낸다.

▲ 조순열 씨가 취재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조순열 씨가 취재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취재팀은 다음에 찾은 태평공인중개사에서 이영길 씨(69)를 만났다. 친구의 중개업소에 놀러왔다. 자영업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쉬는 중이다.

이 씨는 단호하게 정권교체를 말했다. 안철수 심상정 후보를 찍어서 될 일이 아니라며, 윤석열 후보를 뽑겠다고 했다. 그는 2017년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뽑았다. 지금 생각하면 속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렇게 정권을 잡았으면 국민 편을 들어서 잘했어야지. 자기 불리한 거는 입 딱 닫아버리고….”

윤석열 후보가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 사람은 뭘 몰라. 아직 초짜라.” 이 씨의 입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이름이 나왔다. 이 전 총리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을 때 서운함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이 전 총리가 후보로 나온다면 찍을 마음이 있다고 했다.

감자탕집 사장 박순정 씨(63)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마음이 간다. 이전까지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인 남편과 같은 후보를 선택했다. 18~19대 대선 모두 문재인 후보를 뽑았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다르다. 정권교체를 원한다.

박 씨는 윤석열 후보에게 호감이 가지 않는다. 윤 후보는 정치 경험이 없어서 제대로 된 대통령이 될 수 없고, 경험 면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나을 거라고 했다.

시장 입구 앞 골목을 다시 걸었다. 한파 특보가 발효된 날이었다. 미용실 문을 열었다. 손님이 3명 있었다. 사장은 바쁘다며 인터뷰를 거절하면서도 “차라리 난 심상정!”하고 짧게 외쳤다.

다시 찾아간 미용실은 한산했다. 사장 노표임 씨(66)는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했다. 처음에 제대로 대화하지 못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둥굴레차를 건네고 맞은편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노 씨는 거대 양당의 다툼에 지쳐 대안으로 심상정 후보를 떠올렸다. 정치 경력이 길고, 인물도 괜찮다고 느꼈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이 마음에 걸렸다. 사표가 될까 봐 마음을 바꿨다. 떠올린 대안은 이재명 후보다.

“나는 당을 안 봐요. 사람을 봐요. 정말 대통령감인지, 추진력이 있는지. 그래도 이재명이 밀고 나가는 추진형 리더십이 있을 것 같아서….”

골목에서 남서쪽으로 걸어가면 작은 오거리가 보인다. 경서농협과 오류홈마트, 작은 슈퍼와 한의원이 모였다. 주택가와 연결되는 길목이라 유동인구가 많다.

퇴근 시간, 오류홈마트 앞을 지나던 김태형 씨(39)를 만났다. 홀로 35개월 아기를 키운다. 울산에서 오류1동으로 작년 8월 이사 왔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를 두고 고민 중인데,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돌아보면 복지가 훨씬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납득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하다가 다음 한마디에 힘을 실었다. “여성가족부가 저희같이 미혼모나 아동 복지에 관한 건 진짜 많이 하고 있거든요.”

김 씨는 미혼모나 한부모가정의 취업과 주거복지 정책이 확대되길 바란다. 그래서 어려운 계층을 위해 복지에 힘쓰는 후보에게 투표할 생각이다. 지금으로선 이재명 후보가 마음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30대 박민주 씨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부동산 정책을 꼽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결혼했다. 매물이 줄고 집값이 오른 탓에 신혼집을 구하느라 고생깨나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실망해 윤석열 후보를 뽑으려 한다.

이어서 장을 보러 나온 강순희 씨(78)를 만났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질문하니 부끄러워하면서 할머니로 불러 달라고 했다. 오류1동에 50년도 더 살면서 빠짐없이 대선 투표를 했다. 요즘은 잠자리에 들면 이리저리 뒤척이며 누굴 찍을지 고민한다.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서로 이 사람 죽이고 나 살아야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

처음에는 안철수 후보를 뽑을까 생각했지만 사표가 될 것 같았다. 가족과도 논의했다. 이왕이면 될 사람으로 하는 게 낫다고 가족이 말해서 할머니 고민이 더 깊어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잘할 것 같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할머니 마음은 윤석열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두 후보 모두 믿음이 가지 않지만 이재명 후보의 가족 문제가 마음에 더 걸렸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을지 묻자, 강 씨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이름을 꺼냈다. 딸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 그는 이 대표가 나오는 TV에 손바닥을 올리고 작은 약속을 했다며 웃었다. “네 마음 지키고, 다음에 대통령 나오면 너 찍을게. 변하지 마.”

오거리에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생선가게가 보인다. 내내 춥다 싶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장미무늬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맨 김순덕 씨(64)는 가게 앞을 정리했다. 시장 안에서 20년을 장사하다 이 자리로 15년 전 옮겼다.

김 씨는 여야 할 것 없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한참 대화를 나눴는데 이재명 후보의 이름이 나왔다. 여러 스캔들이 있지만 잘 헤쳐나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보다 정치 경험이 많은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인터뷰를 하다가 김 씨는 밖을 지나던 중년여성을 불러 세웠다. 안으로 들어온 정복희 씨(54)에게 반찬으로 먹으라며 김을 건넸다. 정 씨는 오류동에서 27년째 사는 토박이이자 이 가게 단골이다.

대선에 관해 물으니 “후보끼리 흠집 내기 바쁘더라”며 누구를 찍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박항순 씨(가운데)가 취재팀과 이야기하는 모습
▲ 박항순 씨(가운데)가 취재팀과 이야기하는 모습

저녁이 되자 오류시장 근처 식당은 잔을 맞대는 주민으로 가득했다. 큰소리로 정치 이야기를 하는 박항순 씨(63)와 친한 남성(57)을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응했다.

박 씨는 오류 1동에 30년 넘게 살았다.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먼저 밝히지 않았다.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게 아니라 악, 차악을 뽑는 거라고 그랬잖아. 어느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좋은 놈들 없어요.”

그의 마음은 윤석열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은 법제사법위원장이 야당 몫이라고 주장하면서, 180석이라는 의석을 차지하고도 법사위원장 자리까지 차지한 것은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었다.

맞은편의 남성은 이야기 내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다며 웃었다. 남성은 취재팀의 질문에 답변하기를 한사코 거절하다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나라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 주민과 상인들의 이야기
▲ 주민과 상인들의 이야기

 

▣ 이미쁨 기자가 이 기사를 같이 취재했습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