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여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광열 씨(62)는 대선 후보가 명심할 말이라고 두 번 강조했다.

“특히 제가(齊家)가 엉망이에요. 도박하는 아들에, 처는 논문 표절하고, 가짜 이력을 기입하고. 속된 표현으로 뭐 묻은 놈이 뭐 묻은 놈 뭐라 한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보여요.” 이 씨는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 씨는 아내와 함께 경기 수원 팔달구 화서1동에서 식당 ‘미리랑’을 운영한다. 장사는 20년 정도 됐다고 한다. 수제비 칼국수 쫄면 김밥을 판다. 주방에서 아내가 음식을 만들고, 이 씨는 서빙과 배달을 맡는다.

식당 입구의 왼쪽에 있는 TV에서 YTN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래에는 경제신문이 보인다. 이 씨는 음식을 나르고 배달을 준비하느라 바쁜데, YTN 채널을 항상 켜놓는다고 말했다. “저걸 항상 틀어놓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귀로 듣는 거죠.”

▲ 이광열 씨가 받은 표창장
▲ 이광열 씨가 받은 표창장

주방 입구의 왼쪽 벽에는 경기 수원시장이 수여한 표창장이 있다. 날짜는 2011년 10월 4일이다. 어떻게 받았냐고 묻자 이 씨는 “그냥 흉내만 냈다”며 웃었다.

가게 수익의 1.5% 정도를 화서1동 행정복지센터와 아주대에 10년간 기부해서 받았다고 했다. 둘째 아들이 아주대에 입학하면서 부부는 기부를 시작했다.

장사를 안 하는 일요일에는 부부가 나들이한다. 어느 날, 자녀들이 졸업한 학교 근처의 스터디 카페에 갔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할 청년들이 공부에만 매달려서다.

“(스터디 카페에) 가 보면 젊은 애들이 노트북 한 대랑 커피 한 잔 갖고 무던히도 공부해요. 자기만의 길을 찾을 그런 기회가 없었다 보니까, 계속 거기에 앉아서 공부만 해요.” 둘째 아들은 아주대를 졸업하고 세무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젊은 세대가 꿈을 마음껏 펼치기를 이 씨는 바란다. “청년들이 헬조선이라는 생각을 안 하게끔, 좋은 정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야 나이 먹고 흘러가듯 살아가지만, 청년들은 당장 일자리가 없으니까요.”

50대 김모 씨도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를 걱정했다. 그는 이름과 업종을 기사에 쓰지 말도록 부탁했다. 가게를 7년 동안 운영했다. 예전에는 진로를 정하면 갈 곳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

“워낙 경쟁이 심하니까 웬만큼 해서는 안 되죠. 돈을 또 많이 투자해야 하잖아요. 학원도 다녀야 하고. 그런 사회가 돼 버렸다니까.” 20대 아들은 공기업 시험에 응시할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스토리오브서울의 <수원 A1팀>이 만난 상인 중 일부는 부동산 정책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운용 씨는 문구점 ‘모닝글로리’를 20년째 운영한다.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런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정부 모습에 실망했다고 한다.

처음에 그는 “무슨 질문인지 모르지만 빨리하고 가시라”고 했다. 부동산 얘기가 나오자 말이 길어졌다. 수원 팔달구에 집이 2채. 부동산 양도소득세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자산이 전부 불로소득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한다. “2주택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그걸 왜 불로소득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못을 박냐는 거지. 그건 잘못된 거예요.”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신모 씨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면서도 부동산만큼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상인 이규인 씨(왼쪽)가 취재팀과 인터뷰하는 모습
▲ 상인 이규인 씨(왼쪽)가 취재팀과 인터뷰하는 모습

시장 중앙의 ‘동해수산’에는 손님이 많았다. “1번과 2번 중에 덜 나쁜 놈을 뽑아야죠.” 주인 이규인 씨(29)는 사표를 만들기보다 나쁜 사람을 고르는 게 낫다고 했다. 그는 소형모듈 원전을 개발하는 기업에 7000만 원을 투자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인 이유다.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큰 비용이 들었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요.” 가게 전기요금은 8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올랐다. 이 씨는 “원전을 유지하는 건 충분하지 않다”며 원전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를 뽑겠다고 했다.

화서시장 가동에서 출구로 나오면 아케이드가 없는 점포가 보인다. 옷가게와 과일가게 사이에 ‘수원금산인삼’이 있다. 구석에서 텔레비전 뉴스가 들렸다.

주인 최용오 씨(70)는 신문을 읽다가 취재팀을 맞았다.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아 신문을 매일 읽는다. 그는 이곳에서 30년 동안 장사했다. 그만둘 때가 됐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기준으로 투표하겠냐고 묻자 최 씨는 망설임 없이 정권교체라고 답했다. “현 정권에서 잘한 점을 찾아보려고 해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바뀔 부분이 셀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 씨는 정년퇴직하고 연금으로 월 350만 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지인 부부에게 들었다. 이 부부도 액수가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 최 씨는 다음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보조금 역시 부정적으로 봤다. 혜택을 실질적으로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배분된다는 생각에서다. “표심 얻기 위해 돈 푸는 거 이제 안 통해요. 노인들도 다 빚으로 되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어요.”

최 씨는 자산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목고나 자사고를 폐지하지 말고, 좋은 교육을 통해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 모든 학교를 일반고로 바꾸면 오히려 사교육이 늘어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서민이 잘살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우리부동산’의 이종춘 씨(80대)는 “경제를 살리고 집값도 안정시켜서 없는 사람 잘살게 해 줄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속옷 가게를 30년 동안 운영한 배은희 씨(59)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며 웃었다. 그도 서민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80%가 서민이고 가진 사람은 10%밖에 안 돼요. 서민을 위해 기득권층에 부딪치는 자세가 필요해요.”

요식업자인 50대 중반 송모 씨는 대통령 후보에게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잘 살게 해 달라고 바라지도 않는다.” ‘한우리축산물도매센터’의 유호남 씨(40) 역시 “후보에게 바라는 거 없다. 장사하기 힘들고 바쁜데 코로나 상황이나 빨리 나아졌으면 좋겠다”며 한숨 쉬었다.

‘화서돼지국밥’을 3년째 운영하는 박태순 씨(52)는 뽑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약을 지켰으면 좋겠냐고 묻자 국자를 잠깐 내려놓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말만 하고, 지킬 건 지켜야 하는데 엉뚱한 행동만 하고. 우리도 다 알죠. 후보들이 말하는 거 안 되잖아요. 실천하지를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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