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중앙시장. 점포 1300여 개가 있는 대형 시장이다. 스토리오브서울의 <안양 A1팀>이 2월 20일 오전 10시에 찾았을 때, 중앙로 1번 출구의 가판대는 영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가판대 뒤에 옷가게가 있다. 가장 큰 점포에 들어갔다. 여성복이 가득했다. 계산대에서 공민숙 씨(64)가 옷을 정리했다.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듣는다고 하자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투표를 할 후보를 정했는지 물었다. 그는 조심스러워했다.

공 씨는 안양4동에 40년 넘게 산다. 통장까지 했다. 지금은 어느 절의 총무. 정치 얘기를 쉽게 할 수 없다면서 이번 대선이 유독 아리송하다고 했다. 누구를 뽑을지 사람들이 말을 아끼기 때문이다.

한과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이숙자 씨는 마음에 둔 후보를 묻자 엿물을 휘젓던 주걱을 내려놓았다. 그는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가게 문을 며칠 동안 닫았다. 요새는 학부모 모임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얘기만 한다.

손님 중에 이 후보 지지자가 있었다. 이경남 씨(39) 부부는 붕어빵을 먹으며 시장을 구경하다가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검찰 출신이라서 개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안양 중앙시장 중앙로
▲ 안양 중앙시장 중앙로

중앙로에서 출구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돌면 장내로가 나온다. 중앙로와 달리 한적하다. 옷이나 생활용품을 파는 점포가 많다.

80대 이복희 씨는 안양에서 40년 넘게 살았다. 공책 크기의 텔레비전을 보며 난로를 켜다가 취재팀을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투표할 후보를 정했냐고 물었더니 이 씨는 모르겠다고 했다. 현 정권이 집값을 너무 올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양4동이 역대 대선에서 초접전 지역이라고 설명하자 이 씨는 아니라며 손을 휘저었다. 안양에는 (민주당을 뜻하는) 파란색이 많다고 했다.

마트를 8년 넘게 운영하는 50대 최남권 씨와 주경화 씨는 이재명 후보 지지자다. 주 씨는 잘못된 복지 정책을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문제로 봤다. 물건을 계산하려던 손님도 복지 이야기가 나오자 화가 난다, 우리 같은 중간 사람만 죽어난다고 했다.

최 씨는 지인 집에 배달을 갔다가 놀랐다. 지인은 일하지 않고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는다. 집이 따뜻해서 이렇게 난방을 하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했더니 지인은 공짜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지난달에도 세금을 몇천 냈어. 억울해 죽겠어.”

박미경 씨(57)는 온열 선풍기 옆에서 김밥을 싸다가 말문을 열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부모에게서 정직함이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거대 양당 후보의 거짓말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꽈배기집이 보였다. 줄이 길었다. 주인 이미자 씨(60)는 반죽하던 중이었다. 상 위에는 가족사진이, 옆에는 단골손님 번호를 적은 메모가 보였다.

안양4동이 격전지라는 말에 이 씨는 꼭 투표해야겠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을 뽑고 싶다고 했다. “잘못한 사람 중에 뽑는 우리가 불쌍하다.” 정치권에서 너무 많이 싸우는 꼴을 보기가 싫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다.

이 씨는 갓 나온 꽈배기를 건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국민이 알아서 경제를 살릴 수 있으니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보·국방 문제를 지적했다. 현 정부의 저자세가 불만족스럽다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반죽 기계 소리보다 커졌다.

▲ 이미자 씨가 기름에 도넛을 튀기고 있다.
▲ 이미자 씨가 기름에 도넛을 튀기고 있다.

정육점을 하는 50대 부부도 윤 후보 지지자다. 취재원과 대화하면서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되냐며 불안해했다. 지금껏 민주당이 보복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가게에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주저하면서도 윤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파를 피해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옷가게가 보였다. 하얀 간판과 바닥이 깔끔했다. 아무도 없었다. 계산대의 이용석 씨(48)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특별한 정치 성향은 없고, 그때그때 인물을 보고 찍는다고 말했다.

“부모님 때나 정당보고 찍지, 요새 사람은 그런 거 없어요.” 그는 가장 큰 사회 문제로 빈익빈 부익부를 꼽았다. 자영업자가 망해도 건물주는 손해 보지 않는다고 했다.

안양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 명소는 중앙시장의 순대 곱창 골목이다. 하지만 취재팀이 갔을 때는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없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곱창 가게 주인인 70대 여성은 하루에 1만 2000원 어치 판 게 전부인 날이 많다고 했다. 다음 대통령은 서민을 위하면 좋겠다며, 원래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안철수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80대 남성 3명은 취재팀 옆에서 소주와 함께 순댓국을 먹다가 입을 모아 말했다. “여기는 중앙시장이라 좀 낫지, 1번가랑 지하상가는 다 망했어!” 이들은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다며 정부 정책에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오후 3시, 시장은 여전히 추웠다. 계속 돌아다니다가 한산한 길목에 갔다. 잡화점과 옷가게가 많았다. 뿌연 미닫이문 안으로 여성 2명이 보였다. 얘기를 나눌 수 있냐고 물었더니 플라스틱 의자를 흔쾌히 내줬다.

▲ 이정화(왼쪽) 박경옥 씨가 취재팀과 얘기하는 모습 
▲ 이정화(왼쪽) 박경옥 씨가 취재팀과 얘기하는 모습 

박경옥 씨(73)와 이정화 씨(74)는 20년 친구다. 후보를 뽑는 기준은 달랐다. 박 씨는 사람을 본다. 이 씨는 정당을 본다. 후보의 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3평 남짓한 가게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두 사람 모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부인이 선거에 나오지 않는데 왜 이렇게 왈가왈부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씨는 말했다. “참 이상한 대선이야.” 이 씨는 표정을 찌푸렸다. 옆에 있던 박 씨는 부인들이 별나서 그렇다며 크게 웃었다. 라디오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함께 시장을 거닐던 김동윤 씨(25)와 임지아 씨(24)는 정치에 관심이 아예 없다고 했다. 후보 마음대로 대선을 짜둔 것 같다며 총선이나 보궐선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60대 허안나 씨는 검은색에 금색을 수놓은 마스크를 썼다. 주로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한다. 남편이 기자였다며 취재팀을 반가워했다. 그는 손동작으로 집을 짓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보수가 기둥이라면 진보는 위에 올리는 기왓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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