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오류1동.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족집게와 초접전 양상을 모두 보였다. 오류1동(행정동)은 오류동(법정동)의 일부다. 법정동은 법률로 지정한 행정구역 단위를, 행정동은 주민의 거주지역을 행정상 편의를 위해 설정한 행정구역 단위를 말한다.

스토리오브서울의 <서울 A1팀>은 2월 17일 오후 3시 30분, 수도권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에 내렸다. 광장을 지나 5분 정도 걸었다. 지도에 나오는 오류시장이 보이지 않았다.

행인에게 물어서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오류시장 공공개발 시민추진위원회’라고 쓰인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오류시장 정문이었다. 취재팀은 2월 17일~19일, 시장 안팎을 돌아다니며 시민 60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 오류동역 광장에서 주민이 선거 벽보를 바라보고 있다.
▲ 오류동역 광장에서 주민이 선거 벽보를 바라보고 있다.

골목은 어두웠다. 문 닫은 가게 2곳을 지나니 떡집이 보였다. 조명이 밝았다. 사장은 추우니까 들어오라며 온열 장판이 깔린 자리를 내어줬다. 그는 이름을 공개하기가 불편하다며 김 씨로 쓰라고 했다.

나이는 67세. 오류1동에서 50년 동안 살았다. 떡집을 2대째 운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 출마한 5대 대선(1963년)부터 투표했다. 17~19대 대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

20대 대선에서 누구에게 표를 줄지 물었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 모자를 몇 번 만졌다. 고민이 역력했다. 여당 후보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에 대한 실망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씨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잘못으로 인사를 꼽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언급하며 잘못한 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다 실수하는데 그걸 숨기고 자기네는 잘못한 게 없다고 하는 게 문제야.”

지역구 국회의원에 대한 실망도 드러냈다. 오류1동이 있는 구로(갑) 의원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다. 이 장관은 17대 그리고 19~21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시장을 살리겠다고 해서 투표했는데 당선되고는 무소식이라고 했다.

“선거 며칠 전까지는 와서 오류시장 낙후된 거 내가 해보겠다고, 걱정하지 말고 찍어달라고 했거든? 그리고 나타나지도 않아. 민주당이 원래 그런 사람인가 싶어. 그래서 지금 후회를 엄청 하고 있어.”

김 씨 아내(61)도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는 중산층이 사라졌음을 실감한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땅값이 오르고 살기 팍팍해진 사람이 늘었다는 말이다.

“경제가 위축되면 가장 피해가 큰 게 누군지 아세요? 우리 같은 영세상인, 하루 벌어 하루 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100만 원 벌던 거 50만 원, 30만 원 벌어요.

▲ 오류시장 입구. 일부 점포가 문을 닫았다.
▲ 오류시장 입구. 일부 점포가 문을 닫았다.

골목을 다시 걸었다. 동그란 글씨체의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양장점이다. 문을 열자 주인 김소분 씨(66)가 취재팀을 맞았다.

찾아간 목적을 밝혔더니 김 씨는 할 말이 없다면서도 추우니까 우선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뽑을 후보가 없다며 입을 뗐다. 할 수만 있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한 번 더 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인물이 없어서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고민 끝에 입에서 나온 이름은 윤석열 후보. 꼭 뽑아야 한다면 그를 뽑겠다고 했다. 김 씨 남편은 국민의힘의 열렬한 팬이다. “다른 사람 찍었다간 집 문 안 열어줘.”

김 씨는 시장 상황을 걱정했다. 고양이가 무서워 화장실 가기를 꺼릴 정도로 낡았다고 한다. 오류시장은 1968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전성기는 1970~1980년대. 그 때는 사람들이 ‘발에 챌 만큼’ 많았다고 한다.

김 씨는 50년 동안 오류1동을 지켰다. 시장에서 옷을 팔아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시켰다. 지금 수입으로는 혼자 먹고살기 힘들다고 했다. 시설이 낡고 손님이 거의 없어서다. 친구가 시장에 놀러 온다고 해도 못 오게 한다.

오류1동 옆은 고척동이다. 6월 경이면 여기에 ‘현대아이파크몰’이 들어선다. 대규모 상업시설, 복합행정타운, 공원이 함께 생긴다. 대규모 할인매장 ‘코스트코’도 입점한다. 오류시장 상인의 걱정이 점점 커지는 이유다.

10년이 지나면 오류1동은 어떻게 변할까. 김 씨는 중국인이 우리나라를 살 것이라고 걱정했다. “나라 넘어가는 건 금방이야.” 제주도, 경기 김포, 인천 강화군까지 모두 중국인이 사들인다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작년 5월에 내놓은 자료를 보면, 중국인이 집을 가장 많이 산 곳은 서울 구로구다. 외국인이 사들인 구로구 주택(1079가구)의 93%(1007가구)가 중국인 소유다. 김 씨는 이번 투표가 마지막일지 모른다며 정신 차리고 뽑아야 한다고 했다.

야채를 파는 조진숙 씨(70)도 같은 생각이다. 빨간 담요를 다리에 덮고 뉴스를 보다가 중국인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인에게 연금을 주는 데 불만이다. 국민연금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외국인 가입자는 31만 2308명이다. 중국인이 약 17만 명으로 가장 많다.

▲ 상인 조진숙 씨
▲ 상인 조진숙 씨

조 씨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현금 살포를 많이 해서 문제라고 말했다. “나라가 뭐가 되겠어? 그러면 이다음에 어린 애들이 다 책임져야 돼. 우린 죽으면 그만이지.”

그는 윤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마누라는 이상하지만 사람이 솔직하잖아.” 윤 후보가 된다고 해도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조 씨는 예상한다. “우리나라는 누가 해도 힘들 것 같아. 다 힘들어. 이재명이가 해도 힘들고, 윤석열이가 해도 힘들고….”

취재팀이 만난 상인과 시민의 대부분은 누구를 뽑겠냐는 질문에 머뭇거렸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이랬다. “뽑을 사람이 없어서….” 파란색의 쇼핑 손수레를 끌고 걸어가던 1958년생 남성은 세상이 흉흉해서 이름까진 못 알려주겠다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냐면 다 거기서 거기 같아. 그래서 그냥 하는 거지.” 그의 눈에 정치인은 거기서 거기다. 그는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행정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도 잘한 일이라고 했다.

시장을 걷다가 최선우 군(19)을 만났다. 대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해서 정치 문외한이라며 누구를 뽑을지 확신이 없다고 했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지도 대답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대선의 가장 큰 문제는 후보에 대해 쏟아지는 논란이다. 모든 면에서 논란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상인 대부분은 정권을 교체하자고 했다. 하지만 시장 주변의 행인은 다양한 의견을 나타냈다.

시장 앞에서 오피스텔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는 송현옥 씨(67)는 마음을 일찍 정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진작 정했어요. 이재명이요.”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들고, 180석 여당과 합심해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못한 점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꼽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면서 지금 정부에 대한 관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식이 잘못하면 두들겨 패서 앞으로 잘하라고 해야 한다. 열 가지 잘했는데 한 가지 잘못했다고 정권교체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농협에 들어가려던 오류동 주민(54)은 오류1동에 산 지 2년 됐다고 했다. 억양에서 경남 사투리가 묻어 나왔다. “나 민주당 사랑합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눈물도 흘리고 그렇게 한 사람인데 이번에는 진짜 아니다 이거죠.”

그는 윤 후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야당에 표를 던질 계획이다. 민주당이 적폐 청산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룬 게 없다고 했다. 우선 윤 후보를 뽑아서 정권을 바꾸고, 윤 후보가 못하면 민주당에 다시 기회를 주려고 한다.

시장 골목에서 만난 주민 정재혁 씨(49)는 이재명 후보를 ‘재명 씨’, 윤석열 후보를 ‘윤 아무개’라고 불렀다. 정 씨는 사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뽑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최선이 아닌 차악으로 이 후보를 택하려 한다.

그의 눈에 이 후보는 양당 후보 중에서 가장 능력자다. 경기 성남시장을 하며 칭찬받았기 때문에 행정 능력이 검증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 후보가 대선 토론에서 “이 나라는 위기”라고 짚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윤 후보가 당선된다면 세상이 더 퇴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이 후시딘이라도 발라주면서 그럭저럭 복구해서 다시 이명박 이전 시절로 돌아왔는데. 윤 아무개가 되면 더 퇴보해서 제2의 촛불이 필연적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라 봐요.”

오류1동의 아파트로 이사 왔다는 80대 여성은 안철수가 마음에 들지만, 될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지지율이 높은 후보에 표를 주기로 했다. 기자가 말을 걸자 처음에는 “노인네가 뭘 알아”하며 거절했다가 자기 생각을 즐겁게 얘기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를 뽑자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눈에 띄는 후보는 윤석열이라고 했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안철수 후보를 뽑고 싶다가도, 밀고 가는 힘이 부족해 보여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윤 후보를 밀어주기로 했다.

▲ 주민과 상인들의 이야기
▲ 주민과 상인들의 이야기

취재하는 동안에 기온이 영하 7도로 떨어졌다. 추위를 피해 카페에 들어갔다가 박은지 씨(34)를 만났다. 테이블에는 노트북이 있고 귀에는 이어폰을 꼈다. 오류1동에서 산 지 3년인데 심상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혐오를 가장 큰 문제로 본다. 또 젠더와 세대에서 비롯된 갈등과 동물권에 관심이 많다. 그는 윤 후보를 두고 ‘절망적’이라고 평가했다.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자를 올린 모습을 보고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씨가 생각하는 대통령은 서민에 가까운 사람이다. 윤 후보가 지난해 12월 “앱으로 구직 정보를 얻을 시대가 곧 온다”고 말하자 정치인이 서민의 일상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대통령은 젊은 사람과 ‘보통의 삶’을 아는 사람이다.

시장 골목에서 나와 오류동역의 서쪽으로 가면 경서농협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의 은하수 빌딩 입구에서 지권용 씨(50)를 만났다. 오류1동 옆의 수궁동에 산다. 날이 추우니 빌딩 안에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는 3번(정의당 심상정)과 7번(노동당 이백윤) 후보 중에서 고민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고 지 씨는 말했다. 계속 소수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17대 권영길(민주노동당), 18대 김소연(노동운동가), 19대 심상정(정의당).

그는 공공선(公共善)을 강조한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나 인류를 위한 선(善)이다. 국가가 공공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고 지 씨는 말했다.

이번 선거가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대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이 키우는 아이를 위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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