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최선열 교수                    

우리를 애타게 했던 긴 봄 가뭄과,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후진국형 물난리, 불안한 경제적 상황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저 자연재해로 돌리고 자위할 수 없는 치수관리의 허점이 이번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침체된 경기를 단순히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라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에는 역시 석연치 않은 경제운영의 미숙함이 보인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막말 싸움으로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는 정치인들은 얼마나 뻔뻔한 사람들인가. 정쟁이란 표현을 쓰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수준 낮은 언어폭력으로 서로 마구 물어뜯는 정치인들의 작태를 우리가 어제오늘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최근의 폭언들은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 같다. 새로 개정된 고교 사회 교과서에 정치인들은 늑대로, 정치는 늑대들의 영역싸움으로 비유되었다고 하는데, 새로운 세대의 정치 사회화가 교과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런 상징적 표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원인 제공자인 정치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언론에 대한 혐오감도 권력에 대한 혐오감 못지 않다. 세무조사를 당한 주요일간지들은 자신들을 변호하는데 급급하여 공익을 잊은 채 아까운 지면을 온통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들로 채우고 또 채우는 횡포를 하고 있다. 이해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독자들까지도 이제는 정도를 벗어난 언론의 자기중심성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한 것 같은 균형감각을 잃은 방송사들의 보도행태이다. 권력과 언론, 언론과 언론의 이상한 대결구조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현실에 환멸을 느낀 소외된 국민들이 텔레비전 사극에 빠져 궁중 여인들의 암투를 즐기는 것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현 상황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사회과학도로서 나는 우리사회의 여러 집단들의 문제, 집단간의 갈등의 문제를 집단적 사고(group think)이론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게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집단적 압력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집단적 사고이론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준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교문화권인 우리 사회는 서구사회 보다  훨씬 더 집단적인 사회 문화적 특성을 보여준다.  집단적 사고이론은 서구의 사회심리학자들이 구축한 이론이지만 집단적 사고는 서구 사회보다도 우리사회에 더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집단적 사고는 공동 운명체인 응집력이 강한 집단에서 일치된 집단의견 수렴을 위해 구성원들에 가해지는 심리적 압력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나 대안은 무시되거나 침묵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집단적 사고는 엄청난 실수를 자초할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이론을 토대로 미국의 현대사에서 실책으로 꼽을 수 있는 외교정책의 결정과정을 연구한 결과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바로 집단적 사고가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학자들이 정리해 논 집단적 사고 증후군이 우리나라의 여러 집단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집단적 사고 증후군은 자기집단에 대한 과대평가, 편협한, 폐쇄적 사고, 의견일치에 대한 압력 등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자기집단에 대한 과대평가는 결코 자신들이 실패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환상, 집단의 도덕적 기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표출된다,  편협한, 폐쇄적 사고는 경쟁자나 적대자에 대한 틀에 박힌 정형화, 자신들의 하는 일에 대한 집단적 합리화로 나타난다. 의견일치에 대한 압력은 각자 회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자기 감시, 만장일치에 대한 환상, 정신적 지주를 통한 일체감형성, 이단자에 대해 압력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증후군들은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증후군을 보여주는 집단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정당인데,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들은 그 동안 집단적 사고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언론기관들도 집단적 사고에 갇혀 있음을 보게된다. 기업, 종교집단, 크고 작은 교육기관,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진보 건 보수 건 이념에 관계없이 우리 문화에서 모든 집단들은 집단적 사고의 위험에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문제는 우리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책결정이 이런 집단적 사고를 통해 잘 못 나오게 되고 집단간의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사회를 소모시킨다는 것이다.

가뭄이나 홍수와 마찬가지로  이런 집단적 사고의 위험에 우리사회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집단의 색깔보다는 집단적 사고의 증후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우월감으로 자기 집단을 과대 평가하고 다른 집단을 편견을 가지고 적대시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합리화하는 증후군은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구성원에 대한 집단내의 압력기제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알아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속한 또는 우리주변의 집단들을 진단한다면 집단적 사고의 위험에서 우리를 어느 정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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