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편집장


아침마다 신문을 펼치며 얼굴 찌푸리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되었습니다.
읽기가 무섭게 정치,경제,사회 할 것 없이 상처투성이 뿐인 세상이 보입니다. 정치는 여·야의 싸움에 진실을 알기가 어려워 지고, 경기는 가라 앉고 있으며, 이혼율은 날이 갈수록 늘어 납니다. 빅3 신문들의 사설은 하나같이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어투로 정부를 비판합니다. 지식인들도 어느새 좌·우 편을 가르고, 연예인과 방송사도 서로 다툽니다. 이러한 갈등은 이제 단순한 견해차를 넘어선 감정과 이데올로기 싸움으로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모든 것들이 이처럼 엉망진창이 되었는지요. 최근 한국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불안과 혼란, 갈등과 증오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지켜보던 우리들은 그만 지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사실이며 거짓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라도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며칠 전, 점심을 먹다 친구에게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잠깐 고민하는 듯 싶더니 친구는 피식 웃으며 말하더군요.
"야, 솔직히 그런거 일일이 신경쓰는 사람이 어딨냐? 다른 일도 신경쓸게 얼마나 많은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을 목적으로 하는지 순수한 언론 개혁을 위함인지는 그리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것입니다. 지인사회의 대립양샹, 정치권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단순한 사회적 현상인지 사실상 좌·우의 이념적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의 진실여부도 우리들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는 못 합니다.

사람들은 거대담론에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뭔가 크고 특별한 것이 작고 평범한 것보다는 위대해 보이기 때문일까요. 흔히들 컬럼은 깊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좋은 것이고, 사람은 이념과 사상 등을 유식하게 논 할 줄 알아야 훌륭하다고 평가 받습니다. 제 자신도 항상 Cover Story는 취재파일과 같은 무게있는 기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진정 정치, 경제, 사상 등 줄기가 굵직한 것들만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일까요? 친구들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젊은 날의 고민을 나누던 기억, 부모님 결혼 기념일에 큰 리본을 단 자신을 선물해 본 웃지 못할 추억,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한 어느 장애인의 선행.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지만 사랑스런 일들이 실은 세상을 살 맛 나게하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요.

지금 대다수의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는데 급급해 일상에서의 행복함, 작은 것의 소중함을 멀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사랑,우정,믿음 등의 정작 가치있는 것들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당장 소중하지 않다고 여겨 소홀히 한 대가로 말이죠.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쏟아지는 집중호우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고 절망에 빠져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신문 속 혼란스런 세상이 쏟아내는 거대한 이야기들보다 사는 것과 나이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남을 동정하고 사랑하는 방법 등 '사람냄새 솔솔 나는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에 좀 더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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