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첫 경험...누가 가르쳐 주나요?"

몇 년 전 대통령 선거 때는 투표권이 없었잖아요. 이번 총선이 태어나서 처음 참여하는 선거여서 그런지 관심이 가요." 평소 정치 문제에 관심이 적은 편이지만 이번 총선에는 꼭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박모양(20, 경기도 일산)은 아직 특별히 지지하는 후보는 없다. 본격적으로 선거 유세를 시작하면 후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거나 지역 신문 등을 활용해서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결정하겠다는 게 박양의 생각이다.

요즘 신세대의 개인주의와 정치에 대한 냉소, 무관심 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번 총선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1978, 79년 출생자와 80년 4월 13일 이전 출생자들에게는 97년 대선 때까지도 투표권이 없었다. 이들 '총선 새내기'의 선거에 대한 관심도와 후보자 지지성향을 살펴보기 위해 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서울,경기 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1978년 1월 1일 이후부터 1980년 4월 13일 이전 출생자 406명을 대상으로  2000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서울시내 9개 지역에서 구두조사) 결과도 신세대의 총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짐작하게 한다.

정치인 혹은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도를 묻는 질문에 '조금있음'과 '거의 없음'이라는 대답은 각각 21%와 34%였으나, '투표에 참여 할 것 같다'는 23.2%,'꼭 할 것이다'는 42.9%의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그러나 '총선 새내기'들의 상당수가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 혹은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평소에 지지하는 정당이 없거나, 피상적으로나마 호감이 있는 정당 혹은 정치인조차 없는 경우가 전체의 42.6% 였다. 각 일간지에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유권자의 30% 내외만이 지지정당이 없다는 답을 한 것을 보면 비교적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총선 새내기'의 '판단기준'은?   
중년층 유권자들은 다분히 출신 지역의 영향을 받아 특정 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선거 유세가 이러한 유권자의 지역 감정을 자극해 각 당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더라도 '총선 새내기'의 부모인 장년층의 정당 선호도에는 출신 지역의 영향이 다분한 것으로 나타났다.(표2 참고)

그러나 이번 조사의 대상인 수도권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총선 새내기'들은 요즘 신문지상에 매일 오르내리는 '지역 감정 발언'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특정 당을 자신의 지지정당으로 지목하는 경우도 많지 않고,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서울, 경기지역출신인 이들에게 지역 감정의 영향은 대단히 적을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국가 중대사'라는 대학 3학년인 주모양(21, 서울 용산구)의 아버지는 해남 출신, 어머니는 이리 출신으로 자신은 이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살기 시작했다. 주양은 아버지로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칭찬하는 말을 자주 들어왔고 아버지 어머니를 '열렬한 민주당 신봉자'라고 부른다. "아빠, 엄마는 출신지 때문에 김대중씨를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출신지로 따지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고, 청년 진보당이 신선한 것 같아서 좋아요."

경남 출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배모군(20, 서울 마포구)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고, 4.13 총선에서도 같은 당 후보에게 투표할 계획이다. 배군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김대중 정권의 타락한 모습에 실망했고, 강력한 야당이 필요하다"는 스스로의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배군은 자신의 정당 호감도에 아버지 어머니의 영향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TV나 신문에서 여야가 대립하고 있는 사안을 접하면 저희 부모님은 스스럼 없이 한나라당 편을 드시거든요. 저희 가족 모두 그런 편이죠. 그러니 영향이 없다면 말이 안되죠."

'집안 분위기'가 정당 선호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심리학에 나오는 학습을 통한 모방 혹은 동조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연한 결과다. 고양시에 거주하는 김모양(21)의 경우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특정 당 혹은 인물을 비난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얼마전 김양은 자신이 특별한 이유 없이 아버지의 지지정당에 동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저는 이유없이 여당이 하는 말이나 정책에 무비판적이었어요. 언론 문건 파문 때는 모든 사실이 불분명한 상태였고 서로 주장이 엇갈렸잔아요. 그런데 전 그 문건은 조작된 것이고 정형근 의원과 문일현 기자만 잘못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죠."

 나도 엄마가 좋아하는 정당이 좋아!
듀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총선 새내기'들이 부모의 지지정당에 상당히 동조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응답자 중 아버지도 같은 당 지지하는 경우는 81.3%,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응답자 중 아버지도 같은 당을 지지하는 경우는 74.6%로 나타났다. 응답자와 아버지가 동시에 자민련을 지지하는 경우도 72.2%나 됐다.(표3 참고)
  < 표3 > 

 

부친지지정당 백분률(%)

민주

한나라

자민련

민주

81.3

14.6

4.2

한나라

18.3

74.6

7.0

자민련

16.7

11.1

72.2

민국

88.9

11.1

0.0

기타(없음)

42.3

43.3

14.4


 어머니의 영향 또한 적지 않아서, 응답자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우 76.8%의 어머니가 민주당을 지지했고,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경우는 79.1%, 자민련을 지지하는 경우는 81.3%로 나타났다. (표4 참고)
<표 4 >

 

모친지지정당 백분률(5%)

민주

한나라

자민련

민주

76.8

13.7

9.5

한나라

16.4

79.1

4.5

자민련

12.5

6.3

81.3

민국

66.7

11.1

22.2

기타(없음)

45.2

41.9

12.9

 이처럼 부모의 지지정당과 자녀의 지지정당이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이는 것은 정치적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시기부터 정치적 이슈 혹은 정치인에 대하여 부모가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총선 새내기'의 지지정당 선택에 부모의 영향이 크다는 것은 '총선 새내기'의 지역 선호도에 부모의 지역 감정이 투영되어 있고, 그것이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쉽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약 43%의 응답자가 아직 지지정당이 없거나, 정당과 상관없이 인물을 보고 투표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보아, 정당에 집착하는 '총선 새내기'는 그리 많지 않다. 또, 이번 총선에는 시민단체들이 대거 참여해 공천자들의 자격여부를 꼼꼼히 따지고 인터넷과 언론에 후보들의 공과를 공개하고 있다. 이것은 무작정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총선 새내기'가 적을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선거철만 되면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는 구모양(21, 서울 성동구)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광주 출신의 아버지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포항 출신의 어머니를 두었지만 자신은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고 말한다. "부모님의 논쟁을 자주 듣고 자랐지만, 전 선거에 관심도 없고, 이번에 투표 안 할 것 같아요. 부모님은 꼭 투표해야 한다고 강요하시는데 만약 하게되면 무소속 후보를 찍을래요. 정당없이 나서는 것만으로도 용기 있잖아요."

어느 집단에서든, 새내기는 그 집단의 기존 인프라가 체화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특권층'이다.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부여받고 구습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구양처럼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의 '입김'을 쐬고 있는지 의식할 수 있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금은 엉뚱하게 4.13 선거를 바라보는 것도 '총선 새내기'의 능력이자 권리다.


 김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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