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 <정사>, <편지>, <은행나무 침대>, <미스터 맘마>, <결혼이야기>. 이 영화들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의 장르를 확장시켜온 영화라는 점이 그 한가지다. 그리고 하나 더 찾으라면 무엇일까? 감독? 주연 배우? 스토리 라인? 아니다. 바로 영화계 마이다스의 손, 오정완(36·영화사 봄 대표이사)씨가 제작진에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다. 87년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88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마케팅 담당으로 영화 일을 시작한 오씨는 2년 전까지 영화사 신씨네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신선한 작품 선정 안목과 탁월한 마케팅술을 인정받았다. 지난 2월 개봉 이후  서울에서만 72만 관객을 모으며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반칙왕>은 그가 신씨네에서 "하산하여"  자신의 영화사를 차리고 처음 내놓은, 제작자로서 데뷔작인 셈이다. 

개봉이후 순풍에 돛 단 듯 관객이 드는 '반칙왕'이지만, 개봉 전 오정완 씨를 바라보는 충무로의 시선은 불안했다. 공식에서 벗어난 영화라는 것이었다. 충무로에서는 3대 징크스 스포츠, 사극, 동물 영화 제작을 꺼린다. 게다가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는 신세대들에게 어두컴컴하고 꾀죄죄한 체육관의 프로레슬링이 먹힐 리가 없다고 했다. 빅 스타 없이 이른바 '안티 스타시스템'으로 조연급이던 배우들을 과감히 기용한 것도 모험이었다.

"안정적인 영화로 성공하는 건 재미없죠. 물론 좀 더 쉽게 돈은 벌겠지만, 저는 새로운 걸 도전하는 것이 더 재밌습니다. 다들 안된다고 하는데 성공했을 때, 결국 내 판단이 옳았다고 결판이 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직도 내가 영화판에 있어도 되겠구나 안심이 되면서 희열을 느껴요".

그가 제작했던 영화들이 그의 이런 실험적인 작업 노선을 증명해 준다. 프로듀서 데뷔작인 <결혼 이야기>는 90년대 초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 붐을 일으켰고, 관객들이 시큰둥해질 즈음 <은행나무 침대>로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늠케 하더니, 90년대 후반에는 <편지>를 흥행시키면서 한국 영화에서 한물 갔다고 하던 멜로 드라마를 다시 유행시켰다. 그는 남들 다하는 건 재미없다는 듯이 언제나 당대 유행에 안주하지 않고 한 발 앞서 새로운 시도를 하며 한국 영화 흐름의 최선두에 서있었다.

<정사>는 그가 신씨네에서 독립하여 영화사를 차리기 전, 프리랜서 프로듀서로 스스로 기획하여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맡기고 감독을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기획 영화였다.  애틋한 동화같은 사랑 이야기인 <편지>로 멜로 드라마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서, 불륜이라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를 통해 사랑의 다른 본질을 보여주는 정통 멜로 드라마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에 기획한 영화였다.  <결혼 이야기>를 보러 극장을 메웠던 관객이 30대에 접어들었고, 영화계의 주요 인력이 거의 30대, 386세대라는 데서 잠재적인 수요 가능성을 점쳤고, 결과는 맞아 떨어졌다. '정사'라는 제목이나 불륜의 관계, 적나라한 촬영이 대중적 정서에 반한다는 주위의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영화계에선 <정사>의 성공을 오씨의 기획력과 이재용 감독의 연출력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라고 말하는 데 이견이 없다. 

<정사>에 연이어 <반칙왕>으로 굳히기 한 판에 성공하면서 한국 최고의 제작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을 한 그이지만, 영화사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대학 시절 그는 영화 일은 자신같은 범인이 아닌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한 선배의 권유로 잘 다니던 멀쩡한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어 노가다부터 시작하였다. 영화 프로듀서라는 직업의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일이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물론 당시 한국 영화 산업이란 것이 그렇게 재미만 생각하고 직업으로 삼기엔 너무나 열악했지만요. 원래 성격이 앞뒤 재어보고 하는 편이 아닙니다. 가볍게 시작했죠. 발전 가능성도 있다 생각했어요". 그의 선견지명이 옳았다. 당시 광고회사에서 영화사로 직장을 옮긴 그에게 친구나 후배들은 혀를 찼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오히려 즐겁게 자기 일을 하는 오씨를 부러워한다.

처음 그가 영화를 시작했을 때는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여자가 거의 없었다. 여배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영화 산업의 특이한 성비 때문에 소외도 당하고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감성적 특성을 존중하고, 여성을 배려해줄 줄 아는 신철(영화사 신씨네 대표)씨를 만나 같이 일하게 된 것은 운이 좋았다.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신철씨다. 4년 동안 그로부터 "사사받은 후", 1992년 <결혼 이야기>로  우리 나라 최초의 '영화 프로듀서'로 프로필에 정식 직함을 붙이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 때까지 기획자는 이름조차 없이 온갖 잡일을 도맡아하는 사람쯤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게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실이었다.  그 후 10여 년만에 영화 프로듀서의 수는 급증했고, 기획력이 영화 성공에 있어 또 하나의 열쇠로 인식되게 되었다. 영화사 봄도 철저한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운영하겠다는 게 그의 영화사 경영 철학이다. 여성의 진출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 대부분이 마케팅실에 편중되어 있어 여전히 남성적인 영화 산업 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여성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함은 영화 작업에서 큰 장점이 될 수 있죠. 저도 그렇게 여성으로서 나만의 감각을 특화, 최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영화판이 거칠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근본적으로 남성 중심적 구조의 사회와 조직 성격상 남녀 차별이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 테지만, 철저한 프로의 세계인 영화 산업은 그나마 남녀 차별이 덜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하고 싶은 사람은 주저하지 말고 한 번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성(性)이 우선이 아니라 무조선 능력이 최우선이죠".

그렇다면 오정완씨를 이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게 한 그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특별한 작품 선정 비결은 없어요. 감이죠. 많은 영화와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감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어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느낌이 오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것도 있구요." 이렇게 겸손해 하면서도 작업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에너지를 끌고 갈 수 있는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노하우를 조심스럽게 공개한다. 자신감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사람을 관리하고, 돈을 관리하고, 관객을 관리하는 일이죠.  실제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프로듀서의 자질 두 가지도 작품 선정 안목과 현장 관리 능력이다. 

오정완 씨는 작년 2월 영화사 봄을 시작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으로 뛰어다니던 현장에서 영화사 사장의 명함이 놓인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고 보니 프로듀서가 얼마나 적성에 맞는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프로듀서일 때는 온전히 작품 생각만 하며 뒷감당은 생각지도 않고 새로운 영화에 대한 음모를 꾸밀 수 있었는데, 제작자가 되고 보니 작품보다 돈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속상하다. 솔직히 90%는 돈 생각이다. 투자자를 유치하는 문제를 고려하다보니 프로듀서로서 즐길 수 있었던 실험도 조심스러워지고, 제작자로서 절충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다. 프로듀서 시스템을 확고히 하여 그들이 가능성 있는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탄탄한 배경을 만들어 주는 게 지금 그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반칙왕>은 그에게 있어 지난 영화로 돌아서고 있다. 벌써 그는 새 작품에 몰입해 가고 있었다. 10대들의 이야기, <눈물>이란 영화다. 이번에도 이전까지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영화라고만 귀띔을 한다. 배우들도 역시 신인들이다. 또 하나의 모험인 것이다. <정사>가 20대 위주의 한국 영화 관객층을 30, 40대로 넓혔듯이 계속해서 잠재 관객층을 찾아내어 극장으로 끌어내고 싶은 욕심이다. 그녀의 모험은 이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좁은 한국 시장에서 안주하지 않고 해외 시장까지 정복하고 싶은, 벅찬 도전이 남아있다. 물론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에 동참했던 그가 한국 영화 시장을 지키는 문제를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해외 시장으로 달려 나가기 앞서 한국 시장부터 지켜내는 게 우선 과제라고 말한다. 스크린 쿼터제가 없었더라면 한국 영화가 이만큼 발전하게 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 더 발전한다 하더라도 한국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라는 게 그의 이유다. 그리고 그는 다부지게 그의 영화 철학을 이렇게 말한다.

"영화는 문화입니다. 영화를 단순한 상품이나 연예, 오락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임정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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