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요?"

1분이라도 늦을까봐 여의도 역부터 뛰어온 숨을 고르며 증권업협회 10층의 (주)코스닥 증권시장 사장실에 들어선 시간은 정각 오전 11시 30분. 요즘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인 강정호 사장이 할애한 인터뷰 시간은 점심약속 장소로 출발하기 전까지인 20분 간 이였다. 그런데 기존 인터뷰 자료들을 건네주며 빙긋 웃는 강정호 사장은 오히려 계속되는 일정을 즐기고 있었다. 5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심심해 본적이 없다는 그에게는 남다른 일복이 따르는 걸까.

전산망을 이용해서 경쟁매매방식으로 코스닥시장을 운영하는 (주)코스닥 증권시장은 작년 4월 그가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빠르게 성장해왔다. 코스닥시장이란 규모의 영세성 등으로 증권거래소 시장을 이용하기 어려운 중소, 벤처기업 등 주식거래 활성화를 위한 거래소 밖의 시장이다. 지난해 벤처와 증권투자 열풍을 타고 코스닥시장의 거래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주)코스닥증권이 벌어들인 수수료 수입만도 80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30여명의 사원들이 일하고 있는 작은 회사인 만큼 강정호 사장이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이 많다. 부임 초기부터 그는 일종의 공기업인 코스닥증권을 벤처기업형으로 운영해왔다. 전직원 연봉제와 성과급을 실시하고 결재단계도 반으로 줄여 효율성을 높였다. 물론 의욕이 앞서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설립 초기보다 훨씬 커진 회사를 소신경영하기위해서 노력해온 강사장에 대해서 한 직원은 " 이상적이면서도 벤처 정신이 살아있는 추진력 있는 분"이라고 평한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수첩을 꺼내 보이며 강사장은 일방적으로 대답만 하는 인터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언제나 50대 50으로 주고받는 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그에게 수첩에 적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시간은 20분도 아까운 듯 했다. 평소에도 비효율적인 시간 관리는 상상할 수 없다. 항상 메모를 생활화한다는 그는 운전을 하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을 수 있게 차안에도 부착 식 메모지를 준비해 놓았다. "집에 가도 도처에 메모지예요..24시간 일을 생각한다는 거죠" 부인 최혜순씨도 "사장이 되고 나서는 집에서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지금 코스닥시장은 규모 면에서 이미 세계적이다. 하루 주식거래량은 5조원을 넘어섰고 시가총액에 대한 거래대금비율도 미국 나스닥 시장의 3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강정호 사장은 거래소 시장도 앞지른 지나치게 많은 거래량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아직 코스닥시장은 덩치만 고등학생처럼 큰 초등학생과 같다는 이유다. 따라서 강정호 사장의 목표는 코스닥시장을 질적으로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는 코스닥시장을 생선시장에 비유하며 코스닥증권이 해야할 일은 좋은 생선을 골라내어 손님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투자라는 게 사실 700만이 서로 뜯어먹으려고 덤비는 것 아니겠어요?"라는 강정호 사장의 말처럼 모두가 이윤을 추구하는 증권시장에서 기업과 투자자 양쪽을 모두 보호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차피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우량 기업은 더욱 육성하고 불량 기업은 빨리 도태시키는 일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기업에 대한 정확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가 전제조건이 되어야한다. 강정호사장은 좋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중 하나로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때 필요한 등록 요건의 강화를 들었다. 선발 기준을 까다롭게 하겠다는 것. 물론 코스닥 등록심사의 전문성이나 코스닥지수의 신뢰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도 많다. 이미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어있는 기업의 주가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코스닥의 주가는 현재 그 기업의 실적에 비례하는 실질적인 가치 뿐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본 미래의 가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정호사장은 "사실 기업의 정확한 가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주가는 기본적으로 거품"이라고 모든 주식 투자가 도박성을 띨 수밖에 이유를 설명한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대학생들의 주식투자에 대해서도 '아직은 기초를 탄탄히 할 시기'라는 생각이다.

생존이란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것

자본주의의 꽃 증권시장, 그 중에서도 코스닥시장을 운영하는 코스닥증권의 사장이라는 이름만으로 그는 이미 스타다. 스스로 이름을 걸고 성공한 모든 기업가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을 굳이 제외시키지 않았을 만큼 그는 당당했다. 그런 그에게 콤플렉스는 없을지 궁금하다. "물론 있죠, 보다시피 대머리고(웃음)..박사 학위가 없다는 정도요?" 반면, 자신의 강점으로는 끊임없는 호기심을 꼽는 강사장은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직 젊다. 요즘도 영어 테이프를 들으며 출퇴근하는 그는 젊은이들 못지 않게 의욕적이다. 변화 속도가 빠른 인터넷 비즈니스 환경에 서 학생이든 기업가든 영어와 컴퓨터 실력은 생존을 위한 기본요건이라는 것. "가장 불행한 것은 기회가 왔을 때 준비가 안 돼서 놓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준비한다는 강정호 사장. 그는 태생적으로 공공적인 성격을 띠는 코스닥증권시장 사장의 임기를 마치고 나면 일반 증권회사의 사장이 되어보고 싶다. "언젠가는 정말로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습니다. 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나만한 사람도 잘 없거든요."  자신감 넘치는 그에게서는 콤플렉스를 느낄 수 없었다.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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