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 탐욕, 나태, 교만, 정욕, 분노, 시기"

성경에 명시된 일곱 가지의 대죄들이다. 영화「세븐」에서 첫 번째로 살해된 사람은 공교롭  게도 스파게티 소스와 온갖 음식물에 범벅이 된 채 발견된 매우 뚱뚱한 남자다. 누군가가 엄청난 양의 음식을 강제로 먹인 흔적이 있고 피해자는 식도가 막혀 죽은 것이다. 단서라고는 더러운 벽에 케첩으로 갈겨 쓴 "탐식"이라는 단어 뿐. 결국 이 사람은 지나치게 음식을 탐닉했기 때문에 살해당한 것이다.

대개 사람이 음식을 자주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의학적으로 신체에 지방 조직이 과잉 축적된 상태를 비만이라고 한다. 비만은 그 자체가 질병일 뿐만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뚱뚱하면 취업할 때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 최모양이 한 단식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담임 선생님이 너무 뚱뚱하다며 이 상태로 취업하기 힘들다고 하셨어요.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 단지 너무 뚱뚱하다는 이유로 취업도 안되고 멸시받는 것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신체 사이즈를 채용 조건으로 내걸기도한다. 패션의류업체들은 디자이너를 모집할 때 특정 사이즈로 디자인 한 옷을 입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고 한다.  디자이너는 직접 옷을 입어야하는  모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준 사이즈를 초과하면 원하는 직업도 가지지 못한다.

다들 날씬한테 나만 뚱뚱하다는 것 그리고 뚱뚱하면 피해 볼 거라는 두려움이 다이어트 열풍을 몰고 왔다.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겁이 날 정도이다. 거기에다 TV에는 온통 쭉쭉 뻗은 가녀린 몸매의 연기자들이 우글우글하다. 뚱뚱한 연기자는 주로 욕심 많은 시어머니나 게으른 백수같이 악역으로 정형화 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난 날씬해야해', '먹으면 안돼', '참아야 해 '하며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혹사하는 경우도 많다. '뚱뚱한 사람은 남자들(혹은 여자들)한테 인기없어!'하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결국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부작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례도 늘고있다.

1975년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평균 신장은 165센티미터, 평균 몸무게는 51킬로그램이었다. 그런데 1995년에는 평균 신장이 8센티미터나 커진 반면 평균 몸무게는 변함 없이 51킬로그램이었다. 20년 전 후보들의 체질량 지수(body mass index :신장을 제곱한 수치로 체중을 나눈 것)은 18.5로 정확히 정상 범위의 최저치에 해당한다. 그런데 1995년 미스코리아 후보들의 체질량 지수는 16.8로 사실상 거식증 진단기준에 적용되는 저체중 상태이다. 우리 모두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의 몸무게가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저체중 상태인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어 건강을 해치는 상황도 발생한다. 서울에 사는 김모씨(25세)는 110Kg정도 나갔는데 6개월 정도 다이어트와 헬스로 약 40Kg 정도를 감량해서 지금은 70Kg다.

"살 빠진 후에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끼고 살에 대해 굉장히 집착했나봐요. 나중에 폭식증에 거식증으로 고생하다가 얼마 전 정신과 상담도 받았습니다."

「미국 의료협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체중감량을 위해 쏟아 붓는 돈은 연간 3백억 달러에 이른다. 그럼에도 80년부터 91년 사이 미국인들의 평균 체중은 70년대에 비해 8%나 증가했고 특히 비만 어린이의 숫자는 2배 가량 늘어났다. 다이어트를 통해 체중감량에 성공한 사람은 100명 가운데 4명뿐이며 나머지는 다이어트를 실시하기 전보다 되레 체중이 늘어났다. 이모씨(여성. 28세)는 단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며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였다. 하지만 몸에 이상이 오고 과식, 금식을 되풀이하다가 더 뚱뚱해졌다고 한다.

"살이 쪘다고 해서 삶의 재미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다 유리한 조건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때는 마른 아이들을 은근히 부러워하고 시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날씬한 사람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지만 성급하게 자신을 비하하거나 열등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날씬해지려는 노력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걷기라는가 과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등 작은 부분에서 꾸준히 신경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너무 편식한다거나 살찌는 음식을 무조건 거부하면 안됩니다. 못 먹는 한은 겪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특히 먹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을 잘 안하는 사람들은 말이죠."

그녀는 여전히 과체중상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리한 욕심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뚱뚱한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로 자신감을 잃는 것을 우려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세태고 문제지만 뚱뚱한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자기 비하는 결국 자신이 만든다.

온라인 상 뚱뚱한 사람들의 모임인「곰들의 모임」(http://myhome.shinbiro.com/∼goodbear)에는 뚱뚱한 사람들의 자신에 찬 주장이 담겨있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일반인들의 시각에 뚱뚱한 사람을 좋게 보는 사람보다 나쁘게 조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을 외모만 갖고 왜곡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세상에서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는 북한 계순희 선수의 말입니다. 이 말을 염두해 두시고 자신을 보면 자기 자신에게도 감추어진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너무 쪄서 보기 안좋은 것보다는 적당한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체성 있고 강하다면 외적인 것…. 글쎄요, 저라면 날씬하고 머리 텅 빈 사람보다는 뚱뚱하더라도 속이 꽉 찬 사람이 좋을 거 같습니다. "

나아가 이 사이트에는 살찐 사람들의 항변도 담겨있다. "살찐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듣는 말 중에는 상당히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는 말이 많습니다. '저 물살 좀 봐', '그 몸매에 너도 여자라고', '저게 사람이야 돼지야', '그만 좀 먹어라'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 정말 그 사람을 위해서 예를 들어 '어때 나랑 운동이나 같이 하자.' 란 말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사람의 약점을 잡아서 그 사람을 무안하게 함으로서 쾌감을 얻는 최소한 신체만 정상인 사람들밖엔 없습니다."

「포스트모던 다이어트」의 저자 리처드 클라인 미국 코넬대 교수는 "다이어트는 건강식품 제조업체와 의료계가 자신들의 다이어트 상품과 서비스를 팔기 위해 만들어낸 교묘한 「상술」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뚱뚱한 사람은 날씬한 사람에 비해 순발력도 뛰어나며 덜 신경질적이라고 주장했다. 중학교 2학년인데 키 160센티미터, 69kg인 어떤 소녀는 

"뚱뚱한 체격 때문에 좋아하던 남자한테 차였지만 상관없어요. 체격이 좋으니까 운동도 마른 애들보다 잘해요. 제 친구는 말라서 보기엔 좋은데 오래달리기를 잘못해요. 살은 쉽게 뺄 수 있지만 체력은 다시 보충하기 어려워요. 차라리 체격이 좋은 게 좋아요."라며 자신있게 말한다.

세상의 편견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눈치보며 살수도 있고 왕따가 될 수도 있다. 또 소심해져서 내성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이트의 방문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덩치 여러분! 인생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들에 의기소침하지 말고 우리 내부로부터 자신감을 갖고 생활합시다." 이렇게 뚱뚱한 사람들은 좀더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뚱뚱해도 좋다는 사람들은 뚱뚱함이 비정상이 되는 세상에서 용감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뚱뚱하다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날씬한 사람이 미인이라는 서구적 기준이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날씬하다는 것이 자기조절 능력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뚱뚱한 사람들은 잘못된 편견에 맞서고 있다. 결국 뚱뚱함의 미학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졌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의 편견에 맞설 수 있는 의지를 가진 멋진 곰들의 용기다.

서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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