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최선열 교수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판을 처음 익힐 때 손에 힘이 들어가  손목이 얼마나 아팠는지 기억할 것이다. 손에 힘이 빠져야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움직여 속도가 나게 되어 있는데 왜 그리 힘 빼기가 힘들었는지….  피아노를  배운 사람들도 초보시절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서 고통스러웠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힘이 빠지고 나야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운동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운동이든 상당기간의 연습으로  손과 팔의 힘을 빼지 않으면 기본적인 기술이 나오지 않는다.

손과 팔에 힘을 빼고 나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작이 풀리는데 왜 힘을 빼는데 그리도 오래 걸리는지. 힘을 빼고 나야  힘을 주어야 할 때는 주고 빼야할 때는 빼는 기본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쓸데없는 힘을 빼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가 여기에 들어있다.

이 명백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의 도처에는 소모적인 힘 겨루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  선거 판에서 벌어지는 야당과 여당의 진흙탕 싸움, 재벌가 형과 아우의 시끄러운 경영권 다툼, 전국 대학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성을 잃은 듯한 등록금 투쟁….

출퇴근에 주로 이용하는 자유로에서 나는 가끔 아슬아슬한 힘 겨루기 운전을 보게 된다.  어떤 차가 추월을 하면, 추월을 당한 차는 곡예 운전을 해서라도 그 차를 추월하고 만다. 그러면 또 그 차는 다시 또 추월한 차를 추월하면서 헐리우드 범죄영화의 추격장면을 연상시키는 지그재그 운전이 펼쳐진다.  이 기막힌 장면을 바라보는 운전자들은 행여 그 광란의 차들과 곡예에 가까운 방어운전을 하면서 공포에 떨게 된다. 이런 무모한 힘 겨루기가 어찌 자유로 에서만 일어나겠는가.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낯뜨거운 힘 겨루기가 우리들을 슬프게 한다. 도대체 배운 사람이건 못 배운 사람이건, 가진 자건 가지지 못한 자건, 나이가 더 먹었건 덜 먹었건  가릴 것도 없이 다 들 "덤벼봐," "해 볼 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막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치 없는 힘 겨루기 끝에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쓸데없는 힘을 빼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는 진리가 우리들의 인간관계에서는 왜 통하지 않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그렇게 무모한 힘 겨루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 그 진리를 깨닫고 자신의 허세를 부끄러워 할지….

이성을 잃은 듯한 힘 겨루기를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이제 우리는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도 구별하기 힘들게 되 버렸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아직 손과 팔에 힘을 빼지 못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지 못하는 초보 연주자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힘이 들어가서는 안될 데에 힘을 넣고 힘이 들어가야 할 데에는 힘을 못 주면서, 제각각 쓸데없는 힘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불협화음이 바로 우리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심각하게 우리가 내는 소리를 들어보자.   대한민국 오케스트라의 앞날은 우리 모두가 쓸데없는 힘을 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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