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귀신을 본다는 아이들이 있다. 아직 꿈과 현실을 잘 구분 못하는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한 귀로 흘려 들으면서도 순간 오싹해지는 까닭은 뭘까. 언젠가 '계속 울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 '는 엄마의 위협에 울음을 그치던 밤에 자라나기 시작한 공포와 환상이 아직도 무의식의 그늘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탄의 인형>시리즈,  <토이 스토리1, 2>, <식스센스> 처럼 어린이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것도 누구에게나 혼자 화장실도 못 가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고기와 대화를 하고 숲에서 도깨비를 본 뒤 편도선을 앓는 쌍둥이 형제가 등장하는 <그림 속 나의 마을>은 관객들을 각자의 '추억 속 어린 시절'로 이끌어준다. 닮은 꼴 형제끼리 별 것 아닌 일 때문에 사생결단으로 치고 받을 때, 언젠가 동생이랑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무아지경으로 치고 받다가 한 순간 너무 세게 때렸다는 생각과 함께 동생이 죽으면 어떻게 하나 겁이 덜컥 났었는데…. 덫을 놓아 새를 잡던 쌍둥이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장면도 오래 전 기억을 상기시킨다. 어릴 적 소꿉놀이에 쓸 식량으로 산에서 꽃이나 열매를 딸 때면 하나님에게 벌을 받을까봐 조마조마해서 기도를 하곤 했었다.

이 영화에는 유난히 오랫동안 고정된 시선이 많이 쓰인다. 대부분의 영상이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그러나 다음 순간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거리낌 없이 넘나드는 히가시 요이치 감독의 연출은 어차피 완전한 객관이란 없다고 말하는 듯 하다. 언젠가 머리가 굵어지고 찾아간 '어릴 적 살던 마을'도 '기억 속 나의 마을'과는 너무 달랐다. 하루종일 뛰어 놀던 공터는 손바닥만했고 까마득하게 올려다보던 계단은 '성큼성큼' 몇 걸음이면 끝까지 올라갈 수 있는 높이였다. 하지만 데카르트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마귀의 속임수일지 모른다고 가정해 보면 실제로 찾은 마을과 기억 속의 마을 중 무엇이 진실인지 쉽게 단정할 수 없어진다. 그래서 어른이 된 세이지도 어릴 시절을 보낸 그 마을은 이제 그림 속에만 존재한다고 중얼거렸을지 모른다. 유년의 기억은 아름답게 채색되었지만 그 안에는 가난한 맨발 소녀와 떠돌이 소년을 이지메 하던 아이들과 교사의 모습도 분명히 있다.

흥행은 부진했지만 일본영화 상영의 물꼬를 튼 <하나비> 이후, <카게무샤>, <나라야마 부시코>, <러브레터>, <소나티네>, <철도원>, <사무라이 픽션>, <건드레스> 그리고 <그림 속 나의 마을> 등 각종 장르의 일본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다. 일본 영화 개방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던 언론을 비롯한 누구도 이제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물론 우수한 한국영화 여러 편이 흥행에 성공하여 일본 영화의 국내 시장 잠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어느 정도 기우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봉된 일본 영화들은 유명 영화제 수상작들로 제한되어 있었다. 만약 일본 영화 완전 개방된 이후라도 조금이나마 잠식의 기미가 엿보이면, 우리 언론은 다시 '십만영화양병설'을 실천하지 못했음을 개탄하는 특집 기사를 내지 않을까….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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